우익 결집 위한 혐중 언어
2024년 12월 3일 당시 대통령이던 윤석열이 일으킨 쿠데타 내란은 수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더디게만 느껴지고, 행정부와 집권 여당은 일말 반성 없이 국정의 파행을 지속하며 윤석열의 복귀를 획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윤석열과 그의 내란 세력들은 ‘혐중’이라는 수사로 극우 세력을 결집시키고 내란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2024년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석열은 아무런 근거 없이 중국인이 군사 시설을 촬영하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전국의 삼림을 지배할 것이라 주장하며, 중국의 위협와 야당의 동조를 계엄 시행의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여기에 덧붙여 윤석열의 변호사는 야당이 압도적으로 이긴 2024년 총선의 (조작) 배후로 중국을 단정적으로 지목했다. 2025년 1월 16일 극우 매체인 <스카이데일리>는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하여 주일 미군기지로 압송했다는 허위 보도를 했고, 내란 및 내란 동조 세력은 이 기사를 적극 인용하면서 쿠데타 내란을 옹호했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서, 윤석열과 내란 일당은 더욱 노골적으로 중국의 국내 정치 및 경제 개입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는 분명하게 지지층을 동원하고 결집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였다. 그리고 효과는 확실했다. 윤석열과 내란 세력,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일부 우익 국민은 야당과 헌법재판소,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을 중국인, 화교, 간첩 등으로 매도했다.
혐중 이데올로기에 관한 잘못된 진단
내란 세력이 동원하고 있는 ‘혐중’의 수사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정치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정작 여러 수사 가운데 왜 혐중을 동원하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효과적이었는지 언론은 물론, 학자들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은 민족주의 정서로서 혐중에 주목한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과 역사적, 지리적, 이데올로기적(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적대 관계였던 한국민에게 반중 정서는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내면화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내란 세력이 이러한 오래된 잠재의식을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족주의 정서는 대개 외부의 적을 상정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즉, 내부의) 결속을 강화한다. 자민족중심주의로서 반중 혹은 혐중 정서는 중국 국민을 위협하고, 소수 중국인 간첩에 저항하는 공동체로서 한민족 이익을 강조한다. 국민 절반을 간첩(외국인)으로 내모는 지금의 혐중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내란 세력이 동원하는 혐중의 수사는 야당과 탄핵 찬성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고 본다. 진보 세력의 시민은 사실 비시민이며, 계엄은 우익인 진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우익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비시민이지만 시민 행세를 해 온 사람들은 이주민이다. 그중에서도 다수 ‘중국인’을 겨냥하는 건 매우 합리적인 공격이다. 현재 국내 이주민 집단 가운데 다수는 중국 동포이고, 해방 이후 계속 살고 있던 (중국계) 이주민은 화교였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 우익들이 탄핵 반대 시민들을 중국인으로 몰아세우고 화교와 조선족으로 매도해 버리는 광경은 지금 거리에서 흔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사회 안에서 시민과 비시민을 갈라놓는 이데올로기는 지극히 인종주의적이다. 민족주의적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흔히 인종주의는 우월과 열등으로 구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인과 흑인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종주의의 또 다른 한 축은 시민과 비시민 구분이다. ‘외국인’으로 매도하면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한 인종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대륙횡단철도와 금광 개발로 중국인 노동자를 대규모 고용했다. 그렇지만 임금 경쟁에 위협을 느낀 백인들은 같은 이민자이지만 중국인 노동자를 외국인으로 낙인찍었다. 백인들은 마침 아시아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던 서구 국가들의 아시아를 향한 공포, 즉 황화론(黃禍論, Yellow Fever)를 이용해 중국인 이민자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 결과로 백인들은 1882년 중국인 입국을 영구히 금지시키는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다.
인종주의로 분열 노리는 내란 세력
미국의 중국인 배척 역사가 보여 주는 건 사회 내 구성원들을 구별하고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데 인종주의가 대단히 유용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내란 세력과 그 추종 세력들이 탄핵 반대 시민을 중국인으로 몰아버리는 건 단순히 중국을 혐오하는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같은 시민들끼리 구별짓고 나와 다른 생각은 가진 시민을 ‘타자’로 몰기 위해서다. 외국인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다른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비난하기 위해서다. 이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기 위해 내란 세력은 기존의 조선족 혐오를 적극 활용했다. 사실 윤석열은 이미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에서 중국인의 건강보험 ‘먹튀’를 주장하며 민주당의 매국 행위를 비난했다. 여기에서 중국인은 진짜 중국인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언론이 자주 보도했듯이 실제로는 중국 동포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아이로니컬하게도 중국 동포에 대한 건강보험 적자는 정부의 통계 오류에서 비롯된 허구란 게 언론에서 밝혀졌다.
따라서 내란 추종 세력의 혐중 수사가 우익 국민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던 이유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어 온 인종주의 때문이다. 중국 동포를 필두로 이주민을 향한 인종주의의 진전이, 이주민을 사실상 배제해 온 국내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씁쓸한 결론이다. 불과 며칠 전 여당과 야당 모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 외국인보호소 불법구금 관행을 다시 용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잘못된 관행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대책은 궁극적 해결을 가져오지 않는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