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안에서 경청과 공동 식별

이 글은 <가톨릭평론> 50호(2025년 겨울,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덜컥 본당 주임이 되어 보니

교구 사제 생활의 꽃은 ‘본당 신부’라는 이야기를 신학생 시절부터 참 많이 들었다. 그때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서품 후 사목지들에서 본 ‘본당 신부’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 고민 많은 자리였다. 부주임인 나야 한정된 사목 대상과 단체만 상대하며 고민하면 되지만, 주임은 모든 것을 다 살피고 어루만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선배들에겐 “곁에서 보니 본당 주임은 할 게 못 되는 것 같다.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너희들도 당해 보라는 거 아니냐?”며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당장 이듬해에 주임을 나가야 할 6년 차가 되어서는, ‘저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한 본당만 더 부주임으로 사목하고 주임을 나가겠습니다’라고 주교님께 말씀드릴까 고민도 했던 게 사실이다.

3년 전 본당 신부가 되었다. 아직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것이 더 많은데 덜컥 ‘주임 신부’가 되어 버리니 참으로 난감했다. 아직 덜렁거리고 실수하기 일쑤인데, 서류 속 내용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제는 물어볼 같이 사는 선배도 없이 결제 칸 맨 마지막 칸에 서명하고... 첫 3개월은 정말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냈다. 모르는 건 몰래 메모해 놨다가 가까운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지구 사제 회의 때 연륜 있는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는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식사하면서 꼬치꼬치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며 어느덧 본당 신부 3년 차, 이제는 어느 정도 숨은 쉬고 살 형편이 되었다.

선배들만큼이나, 아니 어떤 경우에는 그 이상으로 도움이 된 것은 바로 수녀님들과 본당 가족들이다. 나보다 1년 먼저 본당에 부임해 신자들을 만나 온 수녀님들은 당신들이 아는 신자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고, 덕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정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30, 40년씩 이웃으로 살아온 신자들 역시 “누구 할머니가 아파서 집에 누워 있다”며 병자성사를 가자고 하고, “누구 형제네 집에 경사가 있다”며 데려와 안수를 해 달라 하는 등, 꼭 구역장이나 단체장이 아니더라도 서로서로 아끼고 챙기며 내 시야를 넓게 늘려 주었다.

전임 신부가 구성한 사목회 역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부임 당시 결성된 지 이미 1년이 넘은 시점이라 다들 연말쯤엔 내가 새 사목회를 구성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함께 지내 보니 이분들이라면 앞으로 2년이 아니라 내가 떠날 때까지 함께해도 좋겠다 생각할 만큼 참 좋았다. 토의나 토론을 할 때는 ‘다시는 안 볼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치열하게 치고받지만 끝나고 나면 맥주 한잔하면서 서로 사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모습을 보며, ‘건강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름쯤, “올해까지 임기는 전임 신부님과의 것이니, 내년부터는 저랑 같이 2년 임기 새로 시작하시는 겁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다행히 모두 흔쾌히 그러겠노라 말해 주었다.

“본당의 주인공은 여러분”

3년 차까지는 이렇게 버텨 왔는데, 어느새 새로운 사목회를 구성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봄이 여름에 자리를 내어 주던 때, 원장 수녀님이 물으셨다. “신부님, 다음 사목회장은 누구 뽑으실 거예요? 누구 생각하신 사람 있으세요?” 내가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생각 안 해 봤는데요. 그냥 이분들과 끝까지 갈까 봐요.” 수녀님이 반문하셨다. “글쎄요, 벌써 3, 4년씩 했는데 더 하려고 할까요?” 이렇게 나의 길고 긴 고민은 시작되었다.

사실 사목회와 함께 3년을 보내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본당의 주인공은 여러분”이라는 점이었다. 자주 이렇게 말했다. “저나 수녀님은 이 본당에 왔다 가는 사람들이다. 수녀들은 3년마다, 신부들도 짧게는 3년 길어야 5년마다 들고 난다. 하지만 제가 오기 전에도 이곳에 있었고, 지금 저와 함께 있으며, 제가 간 뒤에도 이곳에 있을 분들은 여러분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저한테 맞출 게 아니라 제가 이 본당에, 여러분에게 맞춰야 한다. 전례, 성사, 교리교육처럼 교회가 정한 규정에 따라 제가 감독해야 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재정을 비롯한 본당의 모든 일은 여러분이 숙고하고 식별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나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신학교 입학 전, 청소년 주일학교 교사로 만 7년 가까이 봉사했다. 열정 넘치는 새 신부님들과 함께한 교사 생활은 특히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신부님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도 함께 바뀌어 꽤 힘들었다. 때로 본당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할 때면 ‘아, 이건 우리 본당에는 안 맞는 건데, 왜 이걸 자꾸 고집하시는 거지?’ 하는 불만이 마음속에 쌓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제서품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가서 1년은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자. 전례랑 교리 틀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자. 그리고 수정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은 잘 적어 두었다가 합당한 근거와 함께 전해 주자.’ 때로 다짐을 깨 버릴까 흔들리는 순간이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부주임으로 있던 6년 동안은 나름 다짐을 잘 지켰다고 믿고 싶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의미 있었던 사목회장 선거

이런 3년의 시간을 바탕으로 남은 2년 임기를 함께 보낼 사목회를 어떻게 구성할지, 특히 사목회장을 누구로 뽑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사목회장을 선거로 선출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지 사목회가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당시엔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 무위로 돌았던 계획이었는데, 우리 본당처럼 신자들끼리 관계가 좋은 본당에서는 한 번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전임지 사목회에서 선거를 준비하셨던 분들에게 연락해 자료를 요청했다. 당시에도 자료 조사가 참 충실하다 싶었는데, 막상 받아 보니 기억보다도 훨씬 더 좋은 자료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이미 선거로 사목회장을 선출했던 본당들의 교계 신문 기사들과, 몇 군데에 직접 연락해 적어 둔 상세한 정보 그리고 그중 한 본당은 직접 방문까지 해 전후 상황과 후일담까지 들으며 여러 상황을 예측해 보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띄었다. 자료들을 읽으면서, ‘아, 우리 본당에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원장 수녀님에게 먼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수녀님, 이번에 사목회장은 선거를 해 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수녀님이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선거요? 괜찮을까요? 과정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렇긴 하죠. 근데 시도했던 본당들이 있고, 거기에서 받은 자료들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준비해 보면 어떨까 해요. 일단 상임위 때 얘기 꺼내고 상임위원들 반응을 좀 보고 결정할게요.” 상임위원들의 반응 역시 수녀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긴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아닐까요?” 성령께서 이들을 설득해 주시길 청하며 어렵게 입을 뗐다. “괜찮을 때, 좋은 때라는 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는 것 같아요. 제가 자주 말씀드렸죠? 본당의 일을 숙고하고 식별하는 주체는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라고요. 사목회야말로 본당 일을 숙고하고 식별하는 일을 전담하는데, 회장을 여러분이 직접 뽑는다면, 회장과 사목위원들이 한마음 한 몸으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상임위를 설득하고 사목회의 선거 준비가 시작되었다. 막상 시작해 보니 막막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 듣는 “사목회장 선거”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신자들도 적지 않았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는 신자들도 있었다. 대부분 신자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분위기도 컸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선거를 진행했지만, 무거운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후보 추천 역시 난항을 겪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분은 그간 감추어 왔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으며 고사하기도 하고, 또 다른 분은 처음엔 수락했지만 가족의 반대가 너무 심해 결국 고사하기도 했다. 다행히 두 분이 흔쾌히 후보 수락을 해서 선거는 예정대로 치를 수 있었다.

대망의 선거일. 그날은 선거 외에도 어린이 첫영성체와 전례 담당 수녀님의 축일 축하식도 예정되어 있어 상당히 복잡했다. 좀 더 세밀하게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지 못한 탓에, 축일 축하식은 무난하게 넘어갔지만 미사 후 첫영성체 아이들 축하 사진을 찍는 동안 자리를 이탈하는 신자들이 생겨났다. 사진 찍으면서 마이크에 대고 “지금 선거 시작합니다. 자리에 다시 앉아 주세요!”라고 외치고 부랴부랴 선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던 신자들도 곧 차례대로 줄을 서서 투표 용지를 받고 기표소에서 기표한 뒤 투표함에 용지를 넣고 자리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별도로 마련된 개표소에서 상임위원들이 개표한 뒤 선거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1차에 투표가 끝나지 않을 것을 대비해 묵주기도가 끝나면 2차 투표를 시작할 준비도 동시에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선거 결과. 1차 투표에서 곧바로 당선자가 나 왔고, 당선자가 제대 앞에서 나와 문답을 하여 당선 수락과 선서를 한 뒤, 신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열심히 하겠다”는 짧고 굵은 한마디로 당선 소감을 밝혔는데,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오고 더 감사했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그림 생성 = 챗지피티)

경청과 공동 식별로 이끌어 가는 본당 공동체

선거와 별도로 본당 경청 모임도 진행했다. 2029년이면 본당 70주년을 맞이하는데, 앞으로 100주년까지 내다보면서, 지역 사회와 본당이 처한 상황(고령화와 인구 감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우리 공동체’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지, 그것을 지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 식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식별 작업은 주임 신부나 소수의 사목위원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당 공동체 전체가 함께할 때만 가능한 일이기에, 이 점을 강조하며 경청 모임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4주 동안 구역 및 여러 단체 회합을 경청 모임으로 대체하고, 함께 가감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신부와 수녀는 모임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4주의 경청 모임 후 결과지를 받아 보니, 초반에 나와 원장 수녀님이 참석했던 단체 및 구역에서 나온 이야기에 비해 그렇지 않은 단체 및 구역에서 나온 이야기의 차원이 달랐다.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대안까지도 제시한 단체 및 구역도 꽤 많았다. 이 결과지를 문서로만 보는 게 아쉬워, 이번 달에 있을 사목회 총회에서는 기존에 해 오던 분과별/단체별 보고는 영상물로 대체하고, 대부분 시간을 경청 모임으로 대체해 다시 한번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적어도 내년과 내후년의 사목회 총회 또한 경청 모임 위주의 총회로 운영할 예정이기도 하다.

선거로 사목회장을 뽑으면서, 사목회와 함께 세운 큰 틀은 사목회는 사목회장을 중심으로 본당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 그룹’이라는 것이 었다. 따라서 신임 사목위원도 주임 신부가 물색하는 게 아니라 신임 회장이 본인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들로 지명하면 내가 적극적으로 함께 설득해서 이 그룹에 합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고, 이 글을 적고 있는 현재 80퍼센트 정도는 선임이 끝났다. 신임 회장은 설득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볼 동지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고 했는데, 그 수고가 보상을 받은 듯하다.

사실 우리가 합의한 큰 틀은 전통적이고 교회법적인 형태(교회법상 본당 사목평의회는 본당 사목구 주임을 의장으로 하며 건의 투표권만 가짐)에서는 조금 벗어난다. 아마 어떤 신부들은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구 사제단 또한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교구의 현실을 볼 때, 앞으로는 더 적은 신부가 더 많은 본당을 맡게 되어 이 본당 저 본당 바삐 돌며 전례와 성사 집전을 하기에도 벅찰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사제의 고유 직무인 전례와 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은 공동체가 스스로 식별하고 결정하게 될 텐데, 지금부터 그럴 힘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느꼈고, 사목회도 그 필요성에 동감한 것이었다.

오는 주일, 새 사목회가 임명장을 받고 2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우리 공동체의 모험이 어디를 향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생각한 것보다 더 풍성할 수도 있고(그러길 바랄 뿐!), 생각한 것보다 더 참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멀리 내다보며 함께 걸어갈 길을 결정했다는 것, 가끔 비틀거리고 넘어지더라도 서로 일으켜 주며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리라는 것, 이 두 가지만은 분명하기에 성령께서 우리의 발을 당신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믿으며 걸음을 시작한다.

이종원

의정부교구 사제.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지식은 일천해 매우 슬픈, 그럼에도 마음만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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