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과제

2013년 3월 13일 세상 끝에서 불려 왔다면서 전통적 첫 강복 전에 고개 숙여 먼저 백성의 기도를 청하던 파격적 인물이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등장했다. 이후 바티칸 누리집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며 그의 모든 말을 집어삼킬 듯 사냥하던 날들이 있었다. 12년 한 달 뒤 홀연히 그가 떠나자 지인들이 전화하여 위로해 줄 때도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기도할 때도 감정과 생각을 추스르기 힘든 날들을 보냈다. 부모님을 보내고 느꼈던 상실감과 허전함이었다. 이제야 감정과 생각을 좀 비워 내고 그와 함께한 날들에 체험한 섭리를 추려 본다.

신바람의 체험

어떤 때는 주무시는 듯 보여 애를 태우기도 하시는 성령께서 가톨릭교회 안에, 아니 교회를 통해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며 기꺼이 그 돌풍 안으로 휘말려 들어간 12년이었다. 거의 매일 그의 말을 번역하여 전하고,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매달 ‘프란치스코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리플릿(홍보지)를 제작하여 후원자들과 지인들에게 보냈다. 2년간 광주 평화 방송에서 매주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주교회의 사목연구소의 요청으로 그의 강론을 번역하다가 <바티칸 뉴스> 한국어판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자, 그 번역팀에 합류하여 계속 바빴던 몇 년이었다.(결국 바빠서 중단했다) 그야말로 신바람이었다. 교회에 불어온 신(神)바람(風), 성령의 바람. '복음의 기쁨'이 나왔을 때는 깜짝 새로움보다는 그때까지의 평일 미사 강론과 여러 기회에 반복하던 말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 같아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첫해인 2013년 8월에 3일간에 걸쳐 이루어진 첫 대담의 결과물로 2014년 7월 방한 직전 나온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이후 자비의 해 특별 희년 대담집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2016), 3년간의 평일 미사 강론집(2013-15), "진리는 만남입니다"(2016), 축성 생활에 관한 말씀을 모은 "미래를 비추십시오"(2015), 대담집 "부르심의 힘"(2021), 축성생활자와 사제들에게 하신 말씀을 모은 "만남의 신비학을 살아가세요 I"(2024)를 번역하여 냈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수업이나 강의에서 교종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812년 만의 수도자 출신 교종

2015년의 세계 축성 생활의 해에 남녀 수도회 장상연합회가 주최한 순회 심포지엄(참여 토론회)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교종 프란치스코가 가르치는 축성생활’을 주제로 발표했다. 까말돌리 수도원 출신의 그레고리오 16세 이후 812년 만에 나온 수도자 교종으로서, 그는 축성 생활에 대해서도 신선한 정도가 아니라 개혁적인 수준의 새로운 가르침을 연속적으로 내놓았다.

우선 첫해인 2013년에 신앙의 해를 지내면서 만나는 신자들에게 “시류를 거슬러 가라”, “복음적 철저성”(evangelical radicalism)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임무로 설파하는 것을 들으며 은근히 불안해졌다. 그때까지 교회 안에서 전통적으로 축성생활자들의 고유한 임무이자 특권처럼 여겨지던 이 두 표현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넘겨 버린 그에게 묻고 싶었다. “그럼 무엇이 축성생활자들의 우선적 사명입니까?” 고맙게도 예수회 잡지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이 그의 첫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에서, 그리고 수도회 장상들 모임에서 어떤 장상이 정확히 그 질문을 해 주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축성생활자들의 특수한 자리는 무엇이냐고. “축성생활자는 예언자”요 “우선적 사명은 예언적 사명”이라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물론 이것도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축성생활자에게는 우선적 사명이라는 보충 설명과 함께.

또 전통적으로 수도 생활에 대해서 말하던 주제들, 곧 세 가지 복음 권고에 이어지는 공동생활이라는 순서를 뒤집어, 그는 먼저 공동생활을 강조하고 다음에 복음 권고를 말하곤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친교의 교회론과 삼위일체 신학에 토대를 둔 접근 방식이다. 복잡한 건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평범한 신부인 자신은 쉽게 말한다고 내숭을 떨면서, 실은 튼튼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녹여낸 사목적 내공에서 나온 쉽고 명확한 설명에 늘 감탄하곤 했다. 아무튼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표방한 두 가지 복음적 가치―가난과 창조 질서 회복―가 때마침 시대의 징표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적 가난’을 회복하는 ‘공동체적 친교’와 ‘생태 영성’을 우선적 가치로 삼고, 새로 시작한 우리 공동체의 은사적 방향을 확인해 준 것이 개인적으로 큰 섭리 체험이었다.

또한 축성생활자가 가난을 살지 못할 때 자신보다 하느님 백성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 그의 큰 염려였는데, 이는 서원 생활의 우선적 목적이 자신의 성덕으로 인식되던 전통적 관념을 훌쩍 넘어서는 사목적 관점이었다. 수도자 출신이면서 교종이라는 직무에서 전형적인 사목자였던 그에게는 성직자도 축성생활자도 모두 백성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 적어도 늘 백성의 선익을 향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원칙이었다. 실제로 그가 즐겨 쓰는 명사는 ‘백성’, ‘공동체’, ‘만남’, ‘관계’, ‘친교’, ‘연대’, ‘가까움’, ‘자비’, ‘다정한 사랑’ 등이다. 그렇게 그는 관계어들을 특별히 선호했다. 사실 그 자신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의 성사, 자비의 성사’였다고 말하고 싶다.

2013년 3월 16일 프란치스코 교종. (사진 출처 = Flickr)
2013년 3월 16일 프란치스코 교종. (사진 출처 = Flickr)

2015년 심포지엄 때부터 축성생활자들(과 성직자들)에게 한 모든 말씀을 모아 엮으려는 의도로 준비했던 "만남의 신비학을 살아가세요 I"을 작년 ‘한국 교회 축성 생활의 해’가 결정된 후 축성생활 신학회에서 출간했다. 양이 방대하여 두 권으로 나누기로 하고, 2017년까지의 말씀을 모아 제I권을 내면서 마지막 말씀을 포함하게 될 제II권은 내년쯤에 내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올해 내게 되리라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가 축성 생활에 관한 본격적인 문헌을 낼 기회는 없었지만, 2015년의 세계 축성 생활의 해를 준비하면서 2014년에 '모든 축성생활자에게 보내는 서한'은 공식 수신자를 가톨릭교회 축성생활자로 하면서도, 내용에서는 평신도는 물론 유사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종교의 신자들까지도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스펙트럼(빛띠)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축성 생활이라는 주제에 있어 신학적·영적·사도적 깊이와 새로움에서 전례가 없다.

행동하는 사랑, 움직이는 사목자

어떤 인터뷰에서 번역자로서 그의 언어적 특징에 대해 질문 받은 적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어법은 대중적이고 서민적일 뿐 아니라 준비한 원고를 제쳐두고 즉석에서 눈 앞의 사람을 마주보며 문답식으로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창의적인 표현이 많고, 특히 강론이나 일반 알현은 물론 공식 문헌에서도 신조어와 속어까지 쓴다. 예를 들자면 하느님께서 늘 우리를 앞서가시고 미리 배려하신다는 말을 하고자 부정적 의미로 ‘선수 치다’라는 뜻의 아르헨티나 속어 primerear를 쓰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라틴어 분사 misericordiando(자비를 보이시며)를 만들어 쓰는 경우 같은 것들이다.

또한 특별히 이동(移動) 동사를 많이 쓰고 강조한다. ‘길을 가다’, ‘걸어가다’, ‘나가다’, ‘다가가다’ 등인데 이는 그의 전형적 사목 방식을 드러내 준다. 스스로 변두리를 찾아 나서는 사도적 순방에서 드러나듯 행동하는 사랑으로 대상자를 향해 먼저 다가가고 움직이는 사목자인 것이다. 교종 선출 직후 첫 미사(추기경들과 드리는) 강론에서부터 ‘움직임’에 대한 강조가 드러난다. “이 세 독서에서 저는 세 가지 공통된 점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움직임’입니다. 첫째 독서에서 길을 걸어가는 여정의 움직임이, 둘째 독서에서는 교회 건설의 움직임이, 세 번째로 복음에서는 고백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난 부활 대축일의 마지막 강론에서도 이 행동하는 사랑은 드러난다. 여기서는 아예 ‘달려가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우리 이웃의 얼굴 속에서, 일상적인 일 속에서, 무덤이 아닌 모든 곳에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안락한 ‘종교적 위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은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막달레나와 제자들처럼 달려가도록 우리를 재촉합니다.”

그의 잔소리를 기억하기

실은 제16차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무리 혹은 완성이라는 생각으로 그가 시노드 후속 문헌까지 내고 가길 간절히 바랐기에 허탈함과 상실감이 더했다. 그런 감정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드는 생각은 우리가 교회 개혁을 너무 그에게만 의지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탁월하게 잘하고 있으니까 감탄하고 손뼉 치고 기뻐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은 첫 교종이면서도 어떤 전임자보다 적극적으로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그는 결정적으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를 교회의 구성 요소로서 “교회의 존재 방식이자 활동 방식”으로 내세우면서, 자문기관으로서의 주교 시노드의 한계를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공의회의 마지막 작업을 수행한 셈이다. 교종이 원탁에 평신도, 여성, 사제, 주교와 함께 앉아 경청하는 모습의 감동과 신선함이라니!

사실 교종이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교종청 개혁으로,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제16차 시노드로, 그 가난과 겸손과 자비와 인간미 넘치는 모범과 삶의 증언으로, 존재 자체로 개혁을 이루어 냈다. 요한 23세의 개혁적 마인드와 단호함, 자비와 유머를 ‘하느님의 미소’라 불리던 요한 바오로 1세의 다정함과 온화함과 결단성을 합해 놓은 듯한 프란치스코 교종을 천국에서 그 두 전임자가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반겼을 것 같다. “우릴 닮은 당신, 환영하오!” 하면서.

그가 위로부터의, 머리로부터의 개혁(reformatio a capite)을 실천했다면 이제 아래로부터의, 지체로부터의 개혁(reformatio a membris)으로 우리가 응답할 단계다. 우리 각자가 삶 안에서 그의 잔소리를 기억하는 것도 쇄신의 실천일 수 있겠다. 그동안 잔소리 깨나 해 대지 않았던가? 세 마디 말, 곧 "미안해요", "감사해요", "해도 될까요?"를 일상적으로 하라고, 밖으로 나가라고, 변두리로, 실존적 변두리라 나가라고, 험담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고, 성직주의와 영적 세속성을 벗어나라고 등등.

그렇게 가까이서 자상하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말로 잔소리를 해 대던 사랑스러운 아버지, 내 일상의 축성 생활에, 영적 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개입하던 영적 지도자, 그가 떠났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말을, 그의 글을 번역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달래며 그가 남긴 말들을 곱씹고 실천하리라 다짐한다. 이제 내 삶의 갈릴래아에서 그를 만날 시간이다. 로마가 아닌 이곳 내 삶의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난 2013년 3월 13일의 평범함과 다르지 않은 일상의 빛과 그늘에서, 그렇고 그런 관계들 안에서 부활한 그의 친근하고 유쾌한 잔소리를 기꺼이 들으리라. “감사합니다, 교종님! 12년간 우리 가운데 머물러 주셔서, 친교와 자비의 성사로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한 가지는 그에게 갚아 주고 싶다. 모든 만남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로 마무리하던 그에게 당부한다.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저희는 당신의 기도와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천국에서도 지속적인 교회 개혁을 도와주시고 당신을 꼭 닮은 후임자를 보내 주세요.”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삼의 딸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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