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이런 교황을 만나다니"
어제(4월 22일) 친한 수녀님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이 각별하게 생각하던 교황님이 선종하셔서 어떡해요? 교황님으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으셨는데…" 그랬다. 교황님은 나를 알지 못하셨지만 나는 그분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분이 교황으로 계시는 동안 나는 든든하였고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특히 지도자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나지만 그분께만은 기대가 있었다. 신뢰도 있었다. 한두 번 뜻을 달리한 경우가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경우 그분의 생각과 말에 동의했다. 그만큼 그분의 선종은 수녀님 걱정대로 내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분이 교황에 선출되고 교황좌에 오르실 즈음 교회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굳이 이런 곳에 몸을 담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좌절감이 컸다. 이제 ‘조용히 떠나야겠구나’ 마음먹고 있을 때 그분이 교황좌에 올랐다. 즉위 처음에는 역대 다른 교황과 다르다는 느낌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분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조금 더 남아 있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만나면서 활짝 열렸고, 교회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살아서 이런 교황을 만나다니!”라는 감탄사를 입에 달고 다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들과 다르게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하였다. 알다시피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 안에서 ‘절대적 청빈’과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가 이 성인의 이름을 선택하였다는 자체가 교회 안팎에 큰 메시지였다. 교황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보여 주는 상징적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교황명을 이리 정했다 해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리 큰 호응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이름에 맞갖게 살려 노력했다. 이 모습에 일관성이 있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는 교황은 물론 성인 자격이 충분하다.
사실 내가 이 교황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제도로서의 교회를 수호하는 일에는 관심이 적고 복음에 충실하게 살려 애쓴 모습 때문이다. 그는 ‘복음 정신에 맞지 않으면 제도, 전통, 교리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적어도 내가 공부한 범위 안에서 이런 주장을 한 교황은 없었다. 이 세 가지를 수호하는 것이 교황의 임무일진대 그는 이를 뛰어넘으려 했다. 그의 이런 주장과 행위는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운명’처럼 되기 딱 알맞은 것이었다. 다행히 세간의 염려와 달리 많은 신자가 그의 이 예언자적 선포에 환호했다. 이 시대에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려 애썼던 신자들이 그의 글, 말과 행동에 위로와 힘을 얻었다. 나도 프란치스코 교황 덕에 큰 위로를 받았고 다시 희망을 품게 되었다. 많은 신자에게 준 이 위로와 용기만으로도 그는 이미 성인 자격이 충분하다.
나중에 그의 정신적 유산(legacy)에 대해 기고를 할 예정이어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아마 이 교황을 존경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는 평소 가난한 이를 가까이 한 사람이었다. 많은 이가 그의 모습에 감동한 이유는 그의 가난한 이, 약자를 대하는 몸짓이 가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 보이는 가식적 모습과 차원이 달랐다. 종교 지도자들도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표정과 몸짓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그는 고통받는 이, 가난한 이, 사회적 약자를 만날 때 그들에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실했다. 연출이 아니었다. 이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흉내를 내려도 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이런 표정과 몸짓은 그 어떤 말보다 종교를 뛰어넘는 강력한 종교적 메시지였다. 이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힘을 가졌고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었다.
문자를 보낸 수녀님에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수녀님 전 괜찮습니다. 저는 그분이 교황으로 계시는 동안 보여 주신 모습으로 충분히 위로를 받았고 용기도 얻었습니다. 이제 그 힘으로 기쁘게 살아가렵니다." 아쉽고 슬프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큰 고통을 당하시지 않고 마지막까지 목자의 본분을 다하다 선종하신 점’이다. 이 교황의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선종’이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 남은 삶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이 교황은 내게는 이 시대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마음속 교황이자 성인이십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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