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했을 때, 무겁게 밀려오는 슬픔 속에서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못을 박는 그런 울타리’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절반이 눈물인 잔을 매일 마시는 ‘가장 외로운 사람, 아버지’로 여겨졌기 때문일까. 더 긴 버전의 ‘아버지의 마음’에는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어린것들의 앞날을 염려한다’는 대목이 나오지만, 딱히 그런 영상에 몰입된 것도 아니었다. 사실 ‘고독의 시인’으로 알려진 그의 시풍이나 삶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고독감에 지쳐 ‘단독자’로 하느님 앞에 설 때조차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의 그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트럼프가 찾아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프란치스코의 표정은 준엄함을 넘어 어떤 결기마저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걸 누가 알 수 있으랴. 어쩌면 김현승의 아버지가 교황과 오버랩된 것은 그 아버지에 나를 이입시킨 때문은 아니었는지. 바람같이 살았던 내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안에 자리를 틀고 뭔가를 만들 때, 그 등 뒤에서 기다리며 심부름하던 마음을 나는 설렘으로 기억한다. 마치 드라마 '카지노'에서 어린 최민식이 제 엄마를 패기 일쑤요 또 마약과 폭력으로 감방을 제집 드나들 듯하던, ‘원수 같던’ 아버지에게서조차 가갸 거겨 글을 배울 때 좋아라 했던, 아버지-아들 사이에만 통하는 어떤 감정이 있다면 그런 것이었을까. 괜히 든든하고 억지로 믿으라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닌 존재로서 믿음이 가는.... 어쨌든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처음으로 교황을 아버지로, 아버지에 대한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한, 내게는 ‘때늦은 깨달음’을 선사했다.

2014년 10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Flickr)
2014년 10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Flickr)

‘무무소유’(無無所有)와 종교, 종교인

지난 10여 년 가까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제목으로 이 칼럼을 써 왔고, 교회 개혁에 대해, 교황과 그의 언행에 대해 찬사와 비판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해 왔다. 그가 있었기에, 아니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더 이상 보탤 말은 없다. 다만 아버지 등 뒤에서 연장을 집어 주며 시중들던, 심부름하는 아이처럼 교황의 그늘에서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어서 너무도 감사하다는 고백만이 남았을 뿐. 그가 세상을 등지자 세인들은 그가 얼마나 소박한 삶을 살았는지 앞다투어 말한다. 50달러짜리 십자가를 평생 목에 걸었고, 사제복도 값싼 천으로 만들도록 하여 입었고, 선종한 뒤 전 재산이 100달러밖에 안 되고, 죽은 뒤 관도 전통을 뒤집고 나무관 하나로만 짓고 바티칸이 아닌 ‘변방’에 묻도록 유언을 남겼다고....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정말 그는 배고팠고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했을까.

불교계에서 ‘무소유’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종교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감화를 주어 이제 귀에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니, 그렇게 보자면 프란치스코 교황도 무소유적 삶을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그 ‘불필요함’의 정의가 개인마다 다른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에 그 기준 역시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종교인들이 즐겨 말하는 청빈이나 무소유가 ‘풀(full)소유’로 노출되고 폭로되는 상황이고 보면, 그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무소유를 더욱 강조하게 되는 풍경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종교인들은 누가 더 적게 가지려 했는가라는 정도의 차이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진정성 있게, 더 적극적으로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정말 가난한 이들이 가난에 대해 말하기 힘들어 하듯이,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무소유를 이해할 수 없듯이, 청빈과 무소유는 가진 자의 언어다. 하여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말한다. ‘무소유를 비우라’(無無所有)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空)으로, 케노시스의 보편화라는 하느님의 눈으로, 상도(常道)의 자리에서 보지 않고 영웅 만들기에만 급급하다면, 이는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그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종교적 영웅을 만들고 곧 잊는 것은 기존 제도 종교를 광내기 위한 고약한 습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교황님, 고마웠습니다. 그 큰 공덕에 힘입어 당신이 가고자 하신 길을 끝까지 가 보렵니다. 아울러 이 설익은, 때로는 통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써 내려간 이 칼럼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주제, 다른 지면에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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