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마르코 16, 8)

2024년 겨울을 표현할 언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원고를 쓰기 시작했던 주님 성탄 대축일 전날, 나는 남태령의 경찰차 벽을 뚫은 트랙터와 응원봉 소식을 들으며 감격하고 있었다. 해방과 환희의 시공간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원고를 마무리하려던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했다.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쓰던 원고를 폐기했다. 마침 마르코 복음을 묵상하고 있었다.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복음을 마무리해야 했던 마르코 복음사가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마르코 복음의 초기 사본은 16장 8절에서 마무리된다.) 전쟁과 박해의 피바람 속, 죽음이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마르코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할 언어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국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그분이 죽음을 통해 나누어 주신 생명이 결국 남은 자들을 살릴 것을 믿었으나 이를 표현할 말을 끝내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처럼 나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이 겨울날, 빛이 새어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며, 다만 목격자의 심정으로 글을 쓴다.

2024년 12월 3일–22일: 국회 앞에서 남태령으로, “망각과 천둥의 시간” 

그 날은 밤이었지만 이곳에선 아침이었다. 오전 강의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휴대폰에서 “Declaration of martial law in South Korea(한국에 계엄령 선포)”란 문자를 보았다. 질 나쁜 가짜 뉴스인 줄 알았으나 사실이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한국어 뉴스와 영상을 찾았다. 미국과 한국, 반나절 차이의 시간과 공간이 타임슬립(시간여행) 하듯 사라져 버리고 나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익숙한 느낌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그랬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지독한 슬픔과 지극한 소망이 혼재하는 이상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분노와 열정, 공포와 기쁨, 기대와 절망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우리는, 일신의 영달과 이익밖에는 관심이 없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기어이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국회를 장악하려 했던 장면을 함께 보았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그 위기의 현장에서 평범한 ‘우리’들이 역사를 일으켜 세우던 순간에 함께했다. 어둠이 자폭하여 깨진 틈새로 빛이 들어왔다. 응원봉을 든 젊은 여성들이 선두에 서서 형형색색 빛 물결의 물꼬를 열었고, 그 물결이 닿는 곳마다 ‘다시 만난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선결제로 후원한 떡과 빵과 커피와 핫팩이 얼어붙은 광장을 덥혔다. 성소수자 무지개 깃발과 노동조합 깃발, 그리고 각자의 바람과 생각을 새긴 흥겹고 재치 있는 다양한 깃발들이 하늘 높이 펄럭였다. “저는 소위 술집 여자입니다”라며 마이크를 잡은 여성이 그 어느 정치인보다 명료한 언어로 고통의 현실을 토로하고, 그 연설을 들은 이들이 손가락질 대신 공감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빛 물결은 전국으로 이어지고 국경조차 넘어 세계 각국으로 넘쳐 흐르다 남태령에 올라, 경찰차 벽에 막힌 농민들의 트랙터 앞에서 가장 뜨겁고 아름답게 흐드러졌다. 언제나 뒤로 밀려났던 여성,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맨 앞에 서서 기만과 무시를 당해 왔던 농민들을 일으키고 트랙터의 길을 열었다.

2024년 12월 21일 밤, 남태령에서 경찰이 차 벽으로 트랙터로 상경하고 있던 농민들을 막자 젊은이들이 달려와 함께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2024년 12월 21일 밤, 남태령에서 경찰이 차 벽으로 트랙터로 상경하고 있던 농민들을 막자 젊은이들이 달려와 함께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TV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참으로 천둥처럼 열리던 은총의 시간이었다. 비천하다 여겨졌던 목숨들이 돌아와 그토록 두터웠던 혐오와 배제의 더께를 한순간에 거두어 버렸다. 그 시공간 안에서는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함께 깨어 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고통을 경쟁하지 않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아 서로를 지탱했다. 서로의 아픔과 열망을 이해하며, 서로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서로를 향해 서로를 위해 ‘나’를 열던 순간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계시의 순간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인 해방구였다.

2024년 12월 29일: 또다시 죽음의 일상, 애도

다른 세상을 열 것만 같았던 그 잠시의 시간은 제주항공 참사 비보로 다시 죽음의 일상 안으로 흡수되었다. 사고가 수습되면서 가슴 저리게 아픈 사연들이 들려온다. 아버지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해 첫 해외 가족여행을 떠난 일가족 9명이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부부는 아이와 함께 첫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태국인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학생은 어머니만 홀로 공항에 남겨 두게 되었다. 그토록 정겹고 친밀한 삶들이 사라진 자리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 잔해만 남았다. 공항에 모여 사랑하는 이들의 생존 소식을 간절히 염원하던 가족들은 실신했다.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단어들이 폐허의 현장에서 무한 반복된다. ‘안전시설 미비와 오류’, ‘노동 여건 문제’, ‘책임 소재 불분명’, ‘재난보도 준칙을 무시하는 언론’. 이 모든 것이 끔찍하게도 익숙하다. 2014년, 2022년, 그 많은 생명을 잃고서도 죽음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남태령의 해방구와 무안의 슬픔 사이, 가늠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나는 애도한다. 그러나 이 애도는, 소위 “애도 기간”을 설정하여 애도 형태를 “중립”에 가두고 기한이 끝나면 “이제 잊자” 하는, 국가와 정치 권력자들의 애도가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의 입에서 나온 “애통하고 참담한 애도의 마음”은 차라리 모욕이다. 어제 응원봉을 들고 오늘은 추모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들에게, 또 지금 이순간 눈 내리는 한남동 관저 앞에서 보온 비닐을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 “키세스”들에게, 국가와 정치 권력은 감히 애도를 하라 마라 할 자격이 없다.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광장 중심에 선 세대는 애도 속에서 자랐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세상이 나아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을 그럼에도 살아 있게 한 힘은 애도다. 생명을 경시하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친구를 잃고, 십대의 화창한 날들을 잃고,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가슴에 품은 채, 이들은 살아 돌아와 남은 자들을 깨웠다.

애도는 이렇듯,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것뿐 아니라 죽음의 일상에 배태되어 있는 폭력 구조를 반성케 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자라게 하는 저항 행위다. 드러나야 할 것을 드러내고, 숨기려는 자들을 막아내며, 참사가 반복되는 일상에 책임을 져야 할 분열과 파괴 세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는 연대의 구호다. 남태령을 밝힌 응원봉의 빛과 무안공항 희생자들과 유족을 위로하는 촛불은 그러므로 다르지 않다. 그 빛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것을,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애도를 통해서만 살아남은 우리는 연결될 수 있으며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지난 5일 눈 내린 아침, 전날부터 '윤석열 체포' 시위를 벌인 시민들이 '키세스'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비상 은박 담요 덮으며 밤을 지새웠다. (사진 출처 =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지난 5일 눈 내린 아침, 전날부터 '윤석열 체포' 시위를 벌인 시민들이 '키세스'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비상 은박 담요 덮으며 밤을 지새웠다. (사진 출처 =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애도의 공동체로서 교회

도무지 맞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남태령의 해방구와 무안의 슬픔이 이렇게 애도의 시공간 속에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시공간은 복음 사가 마르코의 시공간 또한 하나로 잇는다. 하느님나라를 함께 꿈꾸던 동료들을 잃고, 살아남은 자로서 감당해야 할 죄책감과 미안함 속에 절망하던 마르코를 일으켜 세운 힘 또한 애도였을 것이다. 마르코는 모욕과 매질 속에서 죽어 간 그분을,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했던 그분의 말을 차마 잊을 수 없어서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코는, 그분을 기억하는 것을 범죄로 간주하는 폭압의 시대 한가운데서, 끝내 할말을 찾지 못하고 미완으로 남길지언정, 복음을 기록해야 했을 것이다.

마르코가 남긴 복음을 통해 그분을 기억하는 교회는, 그러므로 애도의 공동체다. 그분이 당신의 몸을 쪼개어 나누어 주신 빵을 성사 때마다 함께 먹으며 이천 년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해 온 집요하고 끈질긴 애도의 공동체다. 매 끼니 밥상과 같은 성사는 그분을 잃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수치스러웠던 시간을 되살려, 살아 있는 우리들이 그분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성사는 또 한편, 그분이 우리에게,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기도 한다. 슬픔과 분노와 수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를 통해 우리의 약함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분이 죽음과 바꾼 생명의 빵을 함께 나누며 그분의 상처를, 우리 모두의 상처를, 또 우리의 상처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몸과 마음에 새긴다. 그분의 부재뿐 아니라 그분의 현존에 함께하며, 죽음을 넘어 생명을 만난다.

나는, 남태령과 무안 사이 애도의 시공간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그분이 남긴 생명의 빵을 본다. 죽음의 일상 속 숱한 참사들을 통해 그처럼 아프게 경험했듯, 무안의 시간 또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몸부림칠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 시작된 무안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억하듯 떠나간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생명을 경시하며 경쟁과 갈등과 폭력을 부추기는 죽임의 무리들에 의해 희생당하고 배제된 많은 이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연약한 살과 뜨거운 피를 가진 모든 인간을 깨울 것이다. 떠난 이가 남긴 빈자리와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을, 지독한 슬픔과 지극한 소망을, 하나로 묶을 것이다. 회복과 생명으로 모두를 초대하여 부활의 공동체를 세울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남태령의 응원봉처럼 빛나는 서로의 얼굴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할 것이다. 

조민아

신학자.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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