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 아침:
어젯밤에 눈 좀 붙이셨습니까?
우리 집 머리 위로 국회로 날아가는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는 놀래서 잠이 깼지요. 그리고 밤새 뜬눈으로 새웠지요. 계엄이라니요?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다행히 투입된 군인들이 소풍 온 듯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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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5일 아침:
어젯밤에 제대로 주무셨습니까?
아니요! 자다가, 깨다가, 핸드폰을 켜서 뉴스를 보다가.... 그렇게 날이 샜지요.
경호처 사람들이 어제 저녁에 휴가 받아서 나가는 모습 보면서, 혹시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그렇게 많은 이가 사순 시기와 맞먹는 43일 동안 낮에는 할 일 제쳐 두고 텔레비전 앞에서, 밤에는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지내 왔다.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소화불량이라는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일을 치렀다. 현직 대통령 체포!
대한민국은 두 개의 깊은 골이 파진 진영으로 나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보수 대 진보 ? 진실 대 거짓 ?
체포된 대통령과 보수당인 국민의힘, 태극기 부대는 헌정 질서가 와해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헌법 따르려는 한국 국민의 노력에 감사”하며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고 한국 정부와의 협력 방침을 재확인했다.
2025년 1월 16일 아침:
어젯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네! 간만에 좀 푹 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무반주 첼로 곡을 들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이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노벨상을 받은 작가 한강이 해 왔듯이 작금의 기억토막들을 반복해서 성찰하며 소화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독자들께 이 지난한 작업에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온 겨우내 이 상황을 녹여내고, 생각을 녹여내고, 다름을 인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이번 겨울은 다행히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장황한 서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봄을 맞는 싹이 우리 안에 이미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2024년 12월 4일 밤, 국회의사당 앞에서 고하나 리디아 씨는 잠시나마 계엄을 겪으며 경악했던 많은 이에게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예수의 데레사의 기도를 노래하여 지극한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2024년 12월 21일, 계엄에 동원되었던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태령 고개에서는 그 어두움과 추위를 녹여내는 연대가 이루어졌다. 조민아 교수는 이에 관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남태령에 올라, 경찰차 벽에 막힌 농민들의 트랙터 앞에서 가장 뜨겁고 아름답게 흐드러졌다. 언제나 뒤로 밀려났던 여성,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맨 앞에 서서 기만과 무시를 당해 왔던 농민들을 일으키고 트랙터의 길을 열었다”고 썼다.
2025년 1월 15일 아침 10시 33분, '일개 대통령' 윤석열은 체포되었다.
경호차에 실려가는 그의 사진과 함께 그보다 앞서 체포되었던 대통령들의 사진이 뉴스에 올라왔다.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그리고 마침내 윤석열.
윤석열은 검사 시절 “5년 임기의 일개 대통령”이란 표현을 내뱉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나 보다. 기억을 잊어버리면 이렇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은 참 쉽지 않은 나라”인 것이 분명하다.
나랏님?이 되어서 제 맘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대가를 꼭 치르게 하는 법이 살아 있는 나라, 그 법에 따라 억울하기만 할 것 같았던 국민이 헌법 1조를 노래하며 환호할 수 있는 나라.
그렇다.
이렇게 역동적인 대한민국 ! 아~ 아~ 우리 조국!을 21세기의 감각으로 성찰하며 되살려 보자.
현재 진행형으로 세계를 향해 긴급 뉴스를 날리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각 변동은 그 아래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사회적 지각 변동을 동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패러다임 급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했는데, 시민들은 그 군인들을 맨몸으로 막아섰고, 생각하는 군인들은 그에 동조해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지 않았다.
봉쇄 작전으로 스스로 성을 만들어 들어앉은 탄핵된 대통령은 경호원들이 무장해제한 것을 알게 된 뒤에 유혈사태를 걱정해서 자진 출두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체포되었다. 그제야 아무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보도되는 사건 진행과 법률가들의 해석들 들으며 특별 수업 받듯 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이 생각하지도 않던 법망 속에서 어떻게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광화문으로, 남태령으로, 헌법 재판소 앞으로, 한남동으로 시간을 쪼개어 달려가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아침, 인간 키세스가 되어서 도로 위에 앉아 있는 MZ 여성들의 모습은 새로운 모습의 생각하는 인간상이었다.
가톨릭 미술계 원로 작가 최종태 요셉은 여성을 주제로 평생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창조한 '생각하는 사람'은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에 기반하는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구원을 향한 인간, 진리를 향해 타협하지 않고 살아내는 사람, 그렇게 작가는 생각하는 여성에게서 인간의 전형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인간 키세스가 된 여성들에게서 작가 최종태가 보여 준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한다.
노트북을 들고 나와서 시험 공부를 하다가 야광봉을 흔들며 시위에 참석하는 어린 여성들을 보면서 놀란 사람들이 많았단다. 촛불이 야광봉으로 바뀌고 시위 때면 부르던 운동가요가 따라 부르기 힘든 요즘 노래로 바뀐 배경에는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 가는 재기 발랄한 시위 현장은 해외 언론들이 앞다투어 콘서트장 같다고 소개하는 장면이 되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빛깔이 다양해진 증거가 되었다. 다름을 넘어서, 세대를 넘어서, 평화로운 민주 사회를 향한 희망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형성되었다.
생각하는 시민들, 생각하는 군인들, 생각하는 대통령실 경호원들, 생각하는 어른들, 특별히 그 중심에는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 그들이 바뀌고 있는 세상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역사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젊은 여성들을 찾아보자. 마태오 복음 1장 예수의 족보에는 여성 4명이 등장한다. 모두 구약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이다.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 아무도 그들의 삶을 지켜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를 짜내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지켜낸 여성들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다인 전체를 아우르는 그 계보의 끝에 등장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젊은 여성의 기개를 드러내는 끝판 왕,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로마의 첫 번째 마리아 성당에서 만나는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시온의 딸, 나자렛의 마리아는 제단에 올라앉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니, 온 세상 교회의 제단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무릎을 대신하는 것이다. 마리아가 교회이며 교회의 어머니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화는 마리아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 준다. 그녀를 중심으로 일곱 가지 촛대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은 십자가와 성작과 성체로 전환되었다. 즉, 마리아는 그녀를 이끄는 비둘기 같은 성령과 함께 유다교의 율법과 전례를 통한 구원을 넘어서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와 성체를 통한 구원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이 한 폭의 작품은 마리아가 그리스도 사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강생 사건을 가능하게 한 것과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일어난 역사적이고 신앙적, 신학적인 사건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생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빛이 들어오는 성당에서 세상을 향해 나가며 마주하는 이 성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오래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에는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하게 된 그 나자렛의 마리아와 함께 예수의 제자이며, 부활을 처음 목격한 막달라의 마리아, 교회의 시작에 물질적 기초를 제공했던 유니아와 사목자로 활동했던 페페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여성들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빼고는 구원의 진실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예수의 조상이 된 여성들은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 온몸을 던진 여성들이었다. 그저 순종적이고 온순한 여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성들이었다. "저는 술집 여성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시위에 참여한 여성은 민주화 현장에 참여한 다양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바로 오늘 우리의 라합이며 마리아라고 할 수 있다.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농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온 밤을 함께 지새운 젊은 여성들은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 그래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세월호에서 수장을 당한 세대, 강남역에서 살해된 세대, 이태원에서 희생된 세대, 그리고 국가가 지켜 주지 않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나설 수밖에 없는 세대.
그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이 상황을 멈추게 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인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눈 오는 밤을 남산과 한강이 만나는 대로에 앉아서 버텨 낸 것이다.
나는 이 여성들이 바로 우리가 품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싹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미래의 꿈이 아니라, 미래를 현재로 앞당기며 일상 안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그들이 가는 곳마다 발끝에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손끝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온갖 거짓을 쌓아서 자신을 꾸며 내는 한국판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해서 프랑스 혁명을 이끌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들은 진리의 목소리를 높이며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명을 상징하는 바다의 별, “마리아”의 의미다. 성경은 이렇게 지울 수 없는 여성들의 흔적을 곳곳에 화석처럼 품고 있는 신비한 생명의 책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한국의 촛불혁명은 혁명에서 피의 냄새를 빼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겨울, 한국에서 진행되는 혁명은 어떤 무력과 불법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성숙한 시민들의 사랑의 혁명으로 전파되고 있다.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나누며 배우는 이 혁명은 하느님이 앞장서시고 성숙을 향한 인간이 함께하는 거대한 물결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조용한 밀물로 밀려드는 바닷물을 한 뼘 둑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겨울 추위를 아래에서 녹여 내는 시냇물처럼 멈추지 않는 이 혁명은 “순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겨울은 결코 봄을 막을 수 없다는 순리에 따르는 혁명!
그렇다, 2024년 12월 3일은 제대로 곪고 있던 거대한 악의 고름이 스스로 터진 날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난한 치유의 겨울을 보내며 인간이 따르고 살아야 하는 순리를 회복하는 철저함으로 살아 보자. 이것이 회개다. 제대로 회개하며 치유해 보자.
그리고 봄을 만들어 내는 젊디젊은 이 땅의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맡겨 보기로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낼 평화의 푸른 여름을 꿈꾸며....
최우혁(미리암)
신학과 종교학을 함께 공부했다. 여전히 늦깎이 공부를 하며 연로하신 어머니를 돌보느라 시위에 전혀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성찰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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