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세례명은 암브로시오다. 대학 때 세례를 받고 잠시 성당에 다녔단다. 어릴 때는 예배당에 다니고, 검사가 되고 나서는 절에 다니더니, 요즘은 무속과 주술에 심취해 있는 듯하다. 이를 두고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는 종교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종교계와 원활한 소통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려는 행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삶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어찌 됐든 천주교 신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하게도 하필 윤석열은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성 암브로시오는 4세기경 밀라노 주교로서 탁월한 행정가이자 위대한 신학자이며 성 아우구스티노의 스승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라면 자신의 세례명이 가리키는 인물을 주보 성인으로 삼아 하느님의 보호를 청하며 성인의 숭고한 삶을 본받으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은 암브로시오 성인을 본받기는커녕 정반대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암브로시오’의 어원은 ‘불멸’이라는 뜻이다. 성인의 이름이 가리키듯이 세상의 허물어질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불멸하는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선택하면 좋았을 것을, 불행하게도 윤석열은 ‘불멸의 권력’이라는 망상을 좇아 ‘영구 집권’을 꿈꾸다 결국 ‘영구 투옥’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다.

아무리 탐욕에 찌들어 평생을 살았다 해도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친위쿠데타가 웬 말인가! 더구나 하나둘씩 드러나는 내란 음모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기겁할 내용들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요소를 전부 제거하겠다는 무지막지한 실행 계획들은 이 땅을 ‘킬링필드’로 만들려는 대량 학살 시나리오였다. 또한 비상계엄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려 했던 시도들은 자칫 전쟁으로 번져 이 땅을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2시간 반만에 불법 비상계엄이 극적으로 해제되어 윤석열의 영구 집권 음모는 다행히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소름 끼치는 이 일을 가능케 한 세력들은 지금도 온갖 선동과 소요와 폭동을 일삼으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의 영구 집권을 위한 음모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를 탄생시킨 온갖 적폐 세력들의 영구 집권 음모는 더욱 끈질기게 작용하고 있다. 탄핵을 통해 윤석열이라는 썩은 열매를 도려내도 그 썩은 열매를 만들어 낸 나쁜 나무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썩은 열매를 만들어 내려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하늘이 막아 주신 이번 내란은 또한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둘도 없는 기회다. 2년 반 만에 나라를 망가뜨린 무도한 정권에 대해 ‘탄핵’이라는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는 어찌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번 내란은 ‘셀프 탄핵’으로 가는 ‘자폭 행위’가 되었다. 이번 내란이 아니었다면 윤석열은 꾸역꾸역 임기를 다 채우면서 이 나라를 더 철저히 망가뜨리고 무너뜨렸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 보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한편, 이번 내란은 그동안 ‘보수’나 ‘우익’ 혹은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며 다양성이라는 형태로 암약했던 수많은 적폐가 광장으로 기어 나와 자신의 실체가 ‘반민주, 반헌법, 몰상식, 몰염치’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자백’의 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는 대단히 혼란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보다 더 단순하고 선명해진 상태다. 그동안은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종북 빨갱이, 자유민주주의 등등 다양한 가치관이 난립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민주와 독재, 합법과 불법, 상식과 몰상식, 양심과 몰염치라는 두 세력의 대결 구도였다는 사실이 이번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상계엄으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려 했다는 윤석열의 헛소리를 뒤집어 다시 표현하자면, 이번 내란 사태는 우리가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불법 독재 세력을 일거에 척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과연 이번 내란 사태는 반드시 전화위복의 기회여야만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또다시 제2, 제3의 윤석열과 김건희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이번 12.3 내란은 갑자기 튀어나온 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들이 표면으로 드러난 또 하나의 현상이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 실패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 독재의 잔재가 미군정과 군부 독재, 정경 유착에 의한 자본 독재, 그리고 오늘날의 검찰 독재로 이어져 오면서 수많은 참사와 비극을 일으키다가, 결국에는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전제 왕권을 꿈꾸는 미치광이의 친위쿠데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를 발목 잡아 독재가 독재를 낳고, 폐단이 폐단을 낳았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전화위복을 이루려면 내란 사태로 선명하게 드러난 이 땅의 온갖 적폐 청산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

지난 2월 20일 자신의 탄핵 심판 10차 변론일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출처 = JT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2월 20일 자신의 탄핵 심판 10차 변론일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출처 = JT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우리는 지금 사회 대개혁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이 대개혁 여정은 혁명의 길과 다름없다. 혁명을 뜻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은 라틴어 ‘레볼루티오revolutio’에서 유래했다. 이는 ‘다시’라는 뜻의 ‘레re’와 ‘회전하다’라는 뜻의 ‘볼루토voluto’가 결합된 말로서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결국 ‘혁명’이란 ‘회복’과도 같은 것이다. 이전과 다르기만 하다고 혁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 하느님을 닮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만 비로소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회복이란 것이 저절로 될 리가 없다. 40주야 홍수 없이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지 않고, 40년이라는 광야 여정 없이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없고, 십자가 수난과 죽음 없이 부활에 이를 수 없는 것처럼, 회복이란 비우고 허무는 과정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혁명과도 같은 우리의 사회 대개혁은 반드시 청산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과연 회복하는 구원의 새로움은 적당히 바꾸고 고쳐서 될 일이 아니다. 온전히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한다. 비워지지 않으면 허물어 버리고 다시 세운 다음 새롭게 채워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특별히 기울여야 할 노력이란 온갖 불법과 부정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다. 비우고 허물어 그간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은 의식 개혁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몰상식과 몰염치와 불의가 만들어 낸 온갖 불법과 부정을 단호히 처벌해야 가능해진다. 어설픈 관용은 소독 없이 상처를 싸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덧나 병세가 더 악화된다. 과연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까뮈의 말대로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전두환을 사면한 것이 오늘날의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을 만들어 낸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처벌이란 온전히 합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 법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 옛날 동학혁명 때처럼 죽창을 들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내란을 지지하면서 서부지법을 습격하고 헌법을 유린한 폭도들과는 달리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대다수 민주 시민은 합법적 절차를 통해 역사의 죄인들에게 마땅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 물론 이 합법적 처벌 과정은 지난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법을 어기는 불의한 자들이 더 신속하고 영리해 보이고 법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들이 더 느리고 둔해 보인다. 더구나 법치 국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자들이 검찰 아닌가! ‘검찰 제국’이라 불린 윤석열 정권을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다는 것은 범죄 공모자가 범죄 주동자를 심판하는 꼴이다. 그러니 합법적 처벌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검찰을 심판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이 분명히 있다. 국회가 있고 특검이 있고 공수처가 있고 탄핵도 있다. 또한 검찰의 지지 기반이 되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선거도 있다. 우리가 오랜 기간 독재를 겪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쟁취해 낸 법과 제도로써 검찰과 윤석열을 비롯한 역사의 죄인들을 충분히 심판할 수 있다. 그러니 더디고 불안해 보여도 조급해 하지 말고 우리는 끝까지 정도를 걸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한 줌도 안 되는 반란 세력의 꼼수가 통할 것 같지만, 결국은 바르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준법 시민의 무거운 발걸음이 저들을 반드시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 위에 세우고야 말 것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같은 내란 수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회 대개혁의 과제를 혁명적으로 성공해 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더 비참한 반역의 세월을 맞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병들고 시들다 못해 회복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개혁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다. 수술은 가장 아픈 곳에 칼을 들이대는 행위다. 그러니 당장은 두렵고 아프고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비록 아프고 힘들고 답답하고 불안해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그리면서 참고 견뎌야 한다. 혁명가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김용태 신부(마태오)

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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