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충남연합 사무처장 신지연 씨

지난해 12월 22일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가 시민들과 함께 남태령을 넘었다. 농민들은 “쌀값 안정, 농업 예산 확보, 농민과 대화를 통한 공정한 유통구조 마련” 등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지만, 서울을 눈앞에 두고 경찰차 벽에 길이 막혔다.

거의 일주일 간 남쪽부터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을 경찰이 막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늦은 밤부터 남태령으로 몰려들었고, 경찰은 28시간 만에 차 벽을 치웠다. 농민들은 전봉준 장군이 넘지 못한 길을 130년 만에 넘었다며 감격했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농민과 연대한 시민들을 향해 벅찬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다양한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진 남태령 그 자리에는 ‘여성 농민’ 신지연 사무처장(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충남연합)이 있었다. 그는 트랙터를 몰지 않았지만, 당당한 농민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 여성 농민으로서 고유한 몫을 살아가는 “여성 농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수십, 수백만 시민 집회에서는 농민을 비롯한 장애인, 성소수자, 제도 교육 밖 청소년, 노동자 등 제도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40여 일째 외치는 ‘윤석열 탄핵’은 탄핵 자체가 아니라 탄핵 너머 상식적 삶을 요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삶과 생명을 위한 최전선을 지키면서도 가장 주변, 나중으로 밀려난 여성 농민들이 있다. 전여농 신지연 사무처장의 이야기를 지면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수많은 시민과 농민이 이뤄 낸 '남태령 대첩'의 트랙터에는 "농민헌법 쟁취"라는 구호가 뚜렷했다. ⓒ정현진 기자<br>
수많은 시민과 농민이 이뤄 낸 '남태령 대첩'의 트랙터에는 "농민헌법 쟁취"라는 구호가 뚜렷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이하 지금여기) : 남태령에서 이틀은 농민에게도, 농민과 연대해 온 이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이 신지연 사무처장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신지연 : 조건 없는 연대의 마음을 분에 넘치게 받은 시간입니다. 사실 농민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늘 폭력이라, 2000년대 이후 경찰 폭력에 사망한 농민이 2명이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수없이 다쳤고, 지난해 7월 4일 농기계 반납 시위에서도 청년 농민은 구속되고 저는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는데, 오히려 '집시법 위반'이라는 통보를 받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농민은 의제에서도, 경찰 폭력에서도 고립되어 있었는데, 그날은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된 시간이었습니다. 해방의 공간이자, 차별받아 온 모든 사람이 서로의 차별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떤 참가자는 “남태령 농활”이라고 표현하던데, 그 표현이 참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여기> :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 농민의 입장을 말씀하셨습니다. 농업과 농민 자체에 대한 이해도 그렇지만, 그에 더해 여성 농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여성 농민들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신지연 : 여성 농민들은 스스로를 ‘홍길동’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농민인데도 농민이라 부르지 못하는 여성 농민의 법적 지위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농가 단위로 농업 정책이 펼쳐지기에 농가를 대표하는 1인은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 농민은 보조자 또는 종사자라는 법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를 갖습니다. 농업 정책의 대상도 아니고 법적 지위가 그렇다 보니 사회적 지위도 당연히 낮습니다. 여성들의 처지가 그렇듯 여성 농민도 농업 노동이라는 자기 일과 직업이 있는데도 가사 노동, 육아까지 이른바 ‘독박 노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촌에서 여성에게 부과하는 노동은 마을과 지역 사회에서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식 진행되는 관의 행사에서도 여성 농민을 무급 노동에 가져다 씁니다. 각종 음식 준비 등이 그렇습니다. 또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마을 노인을 돌보는 일 등, 가족 내 노동이 마을 노동으로, 지역 사회 노동으로 넓혀지고 있지만, 그런 노동들이 정당하게 평가 받거나 인정 받기보단 당연한 무급 노동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낮은 법적, 사회적 지위와 농촌의 가부장성이 여성 농민의 노동을 더욱 그림자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죠.

논농사는 대부분 기계화 되어 있지만, 밭농사는 기계화율이 낮습니다. 밭농사는 대부분 여성 농민이 담당하고 있어 여성 농민의 노동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몸으로 일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으로 트랙터와 호미라는 상징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1억이 넘는 트랙터와 5000원짜리 호미.... 여성 농민들이 농담으로 우린 아직까지도 철기 시대에 만들어진 호미가 주 농기구라는 것에 쓴웃음을 짓습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농업 소득이 매우 낮다 보니(평균 농가 연소득 약 1000만 원) 여성 농민이 농외 소득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21퍼센트)이 늘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농민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받던 여성 농민 행복바우처 같은 지원을 못 받는 것이죠. 경영주의 경우 농외 소득이 연 3700만 원 이하면 그 자격이 유지되는데, 공동 경영주는 조금이라도 소득이 잡히면 그 자격이 박탈되거든요. 게다가 구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농외 소득 활동에서조차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새는 대부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요양보호사 활동을 많이 합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남태령에서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씨와 함께. 오른쪽이 신지연 사무처장이다. (사진 제공 = 신지연)

<지금여기> : 앞서 말씀하신 전여농의 ‘언니네 텃밭’을 비롯한 여성 농민들의 활동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여성 농민들이 하고자 하는 역할과 소명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연대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지연 : 먼저 ‘언니네 텃밭’을 소개하자면,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언니네 텃밭’의 모토인데요. 텃밭이라는 이름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밭이지만, 여성 농민이 농사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논이나 규모가 큰 밭은 소유에서 심는 작물을 결정하는 권리, 농사짓는 방법(유기농 또는 관행) 그리고 수확물을 판매하는 과정까지 모든 의사결정에서 여성 농민의 의사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텃밭에서는 무엇을 심을지부터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팔 것인지 그리고 그 경제권도 여성 농민에게 있습니다.

얼굴 있는 생산자는 내가 어떻게 땅을 만들었는지(퇴비, 땅심 높이기 위한 활동), 무엇을 심고 어떻게 가꾸는지를 소비자와 소통하고, 그 수입금은 여성 농민의 통장으로 입금되지요. 농사에 대한 여성 농민의 결정권, 판매물에 대한 책임, 그리고 경제 부분 자립으로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먹거리로 소비자와 연대하는 한편, 전여농에서 하는 식량주권 운동, 토종씨앗 지키기, 농생태학 실천도 기후재난의 대안으로 일상적 실천이 되도록 홍보하고 연대합니다.

‘식량주권’은 농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생산자는 농민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농사 지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 것, 그것이 식량주권이기에 식량주권이 무너지면 결국 농민도, 소비자도 모두 피해자가 됩니다.

여성 농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농정에 맞써 싸우고, 농민 쟁점만이 아니라 차별받고 있는 모든 사람, 노동자, 빈민, 여성 문제와도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항공 참사가 났을 때 국가 지휘 체계가 마련되기도 전, 무안의 여성 농민들은 누구보다 먼저 밥을 지어 연대했고, 어렵고 소외된 국민 모두가 우리의 연대 대상입니다.

'언니네 텃밭' 남해 지역 회원 '언니들'. (사진 제공 = 언니네 텃밭)<br>
'언니네 텃밭' 남해 지역 회원 '언니들'. (사진 제공 = 언니네 텃밭)

<지금여기> : 일반 농업 문제에 대한 질문도 드립니다. ‘양곡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 대상이자, 마지막 거부권 법안이기도 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도 많습니다. 양곡법 개정이 왜 필요하고,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신지연 :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쌀값을 정하는 데 농사짓는 농민이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공정 가격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현재 밥 한 공기 쌀값은 230원 정도 되는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값은 300원입니다. 생산비도 보장되고, 식량 자급에서 쌀 자급은 100퍼센트를 이루어야 하고, 쌀이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적어도 쌀 자급은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여기> : “쌀값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농업 정책에 그 주체인 농민이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다”는 목소리가 이 싸움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농민에게 ‘쌀값’은 기본권과 다르지 않은데, ‘농민 헌법 쟁취’라는 구호는 어떤 의미일까요.

신지연 : 박근혜 퇴진 때 1700만 촛불 항쟁의 결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개헌 추진을 했고, 농민들은 농민헌법운동본부(45개 농민 단체와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농민의 권리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실현을 위한 헌법개정 농민헌법운동본부' 출범)를 구성하고, 농민헌법연구팀에서 농민헌법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새 헌법에 들어가야 할 핵심 내용을 농민 권리, 농업 가치, 먹거리 기본권으로 정리하고, 농민헌법 범국민 서명에 1150여만 명이 참여했는데도 개헌은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 파면만이 아닌 사회 대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 절실하고, 그 내용의 하나로 ‘농민헌법’을 요구한 것입니다.

‘농민 헌법’ 핵심 내용

1. 농민 권리
- 농산물 가격은 농민 노동의 대가다.
- 가격 결정 과정에서 농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 국가는 농산물 가격에 대한 최저 가격을 보장함으로써 농민이 농업 활동을 지속하게 해야 한다.

2. 농업의 가치
-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함과 동시에 다양한 가치(다원적, 공익적 가치)를 생산한다.

3. 먹거리 기본권
-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며, 이 중에서 국민들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 안정적 식량 공급은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육성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며, 어떤 세력도 간섭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다.

여성 농민들의 연대는 어렵고 힘든 일을 겪는 이들 곁에 언제나 어디서든 이어 왔다. 제주항공 사고 뒤, 무안 지역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을 지어 공항으로 날랐다. 남태령에서 받은 고마움을 갚는다는 마음이었다. (사진 제공 = 전여농)
여성 농민들의 연대는 어렵고 힘든 일을 겪는 이들 곁에 언제나 어디서든 이어 왔다. 제주항공 사고 뒤, 무안 지역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을 지어 공항으로 날랐다. 남태령에서 받은 고마움을 갚는다는 마음이었다. (사진 제공 = 전여농)

<지금여기> : 마지막으로, 일상적인 농산물 생산과 소비 측면, 상생에서도 도시와 농촌의 거리 좁히기와 이해, 연대는 절박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신지연 : 이른바 ‘남태령 대첩’은 많은 성과와 함께 많은 과제를 남겼습니다. 농민과 시민들이 접촉할 수 있는 면을 많이 만들어 농업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를 접하기 어려운 시민들의 상황 처지도 함께 나누며, 그 대안을 함께 주장해야 합니다. 먹거리 기본권이 바로 국민의 기본권이 되어야겠지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이런 자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루어졌습니다. 남태령을 기억하는 이들과 토론회, 거리 집회, 작은 좌담회 등, 많은 자리를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 속에 함께 대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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