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준비 없이 진행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

이주 가사 도우미를 둘러싼 끊이지 않는 말썽

서울시와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올해 처음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은 육아로 인한 여성의 가사 부담과 경력 단절에 대응하기 위해 가사노동을 분담할 이주 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 8월 필리핀 인력 100명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여 가사 도우미로 고용되었다.

사업은 2023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대책의 하나로 도입을 검토하라는 지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이주 가사 도우미 도입을 통해 출생률을 제고하는 본래 취지보다 비용 문제에만 초점이 맞추어 진행되었다. 2023년 초 국민의힘(전 시대전환) 국회의원 조정훈과 서울시장 오세훈은 최저임금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이주 가사 도우미 제도를 주장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이주 가사 노동자 제도를 인용하면서 최저임금제 차등 적용으로 비용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은 물론, 최저임금제 미적용 논란은 묻어 둔 채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일단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시범사업을 무작정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공론화나 사회적 논의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시작된 시범 사업은 시작부터 말썽이었다. 8월에는 교육수당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시작부터 임금 체불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중개 업체가 밤 10시 이후 출입을 통제하고 연휴 기간 외박을 금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권 침해 논란까지 불거졌다. 결국 9월에는 가사 노동자 2명이 숙소에서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입국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이들은 부산 지역에서 불법 취업 중 단속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취업 기간이 7개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기이한 동조자들

왜 정부와 일부 정치권은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걸까? 그것도 비용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돌봄 서비스, 가사 노동, 그리고 이주 노동의 특성이나 수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먼저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이주 가사 노동자에 관한 인식을 들여다봐야 한다.

예를 들어, 2023년 8월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정책학 교수 김현철은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지 않는 홍콩식 이주 가사 노동자 제도의 장점을 주장했다. 낮은 임금은 때에 따라서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으며, 고용주의 부담을 줄여 저출생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김 교수는 미국과 홍콩에서 가사 노동자를 고용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주장을 했다. 관련 연구를 했다고 하지만, 이주 노동의 비전문가인 김 교수는 여러 매체에 자진해서 출연했고, 그 내용이 여러 신문 기사에 인용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해외 거주 고소득 직업인의 특별한 사례일 뿐, 한국 사회의 맥락과 이주 노동자의 취약한 노동 조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비슷하게 2024년 3월 한국은행 조사국은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국내 돌봄 서비스의 인력난과 고비용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거나 차등 적용을 전제로 저임금 이주 노동자 활용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주 가사 도우미와 출생률의 상관관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취약한 지위의 이주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순하게 비용 문제로 치환한다. 앞의 예와 비슷하게 이민 혹은 노동 정책 전문 연구자(기관)자 아닌 기관 혹은 연구자가 보고서를 발간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두 예는 저임금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 정책이 고학력의 전문직 연구자 집단, 혹은 고소득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산물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실제로 시범 사업은 고소득 계층에게만 관심을 끌었다. 시범 사업에 신청한 서울시 가구는 총 731가구였고 이 중 157가구가 선정되었다. 신청자의 약 43퍼센트가 강남 3구 주민이었고 이 지역 가구 선정률은 약 34퍼센트에 달한다. 일부 언론은 '영어 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 ‘주 5회 필요’ 강남권 부모 호응 높았다'라는 제하로 기사를 내보내며 고소득 가정의 호응을 보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연일지는 몰라도 시범 사업으로 입국한 가사 노동자의 숙소는 강남구에 있다.

시범 사업이 추진하는 민간 돌봄 서비스는 모든 계층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21년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절반에 달하는 응답자(50.8퍼센트)는 가장 희망하는 돌봄 서비스로 국공립, 직장, 민간 어린이집을 꼽고 있으며, 민간 돌봄 서비스는 0.7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리고 시중 가사 도우미 비용보다는 저렴하지만 주 5일에 일 8시간 이용 금액은 약 240만 원에 달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결국 이주 가사 노동자 도입은 소수의 고소득 계층을 위한 정책인 셈이다.

외국인 가사 관리사 시범 사업은 면밀한 검토 없이 일부 계층의 수요만을 반영한 정책이다. 사업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던 것도 추진 과정을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는 단순히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객관성을 결여한 채 특정 계층의 의견을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언론이나, 소수 정치인의 사견을 무분별하게 반복하는 공공기관의 관행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맞서 시민들은 취약 계층의 수요와 욕구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는지,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의 혼란에 주의를 잃으면 안 되는 이유다. 저출생 위기에 중요한 건 서민 가정을 위한 공공 돌봄 서비스 확충이지, 이주 가사 노동자가 아니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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