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는 이주민에게 훨씬 더 가혹하다
3년여 간 끈질기게 지속되었던 코로나19 유행이 마침내 종식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 공급망의 혼란, 그리고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금융시장 불안정은 1997년과 2008년에 뒤이어 전 세계를 다시금 경제 위기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그 원인과 양상은 상이했지만 전 세계적 경제 위기의 파급은 항상 불평등했다. 산업화된 국가보다는 저개발 국가,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 백인보다는 유색인종, 그리고 내국인보다는 이주민이 고통받아야 했다. 만약 지금 다시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도래한다면 한국 사회의 어떤 계층이 불이익을 받게 될까? 코로나19 유행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저소득층과 여성, 그리고 소수자 집단이 또다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다민족 사회로 향해 가는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피해자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주민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30여 년간 이미 수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경험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와 미국에서 시작된 2008년 금융 위기가 대표적이다. 경제 위기의 영향은 각국의 모든 사회경제 분야를 망라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결과로 실업의 증가와 대량해고의 발생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내국인의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시장은 다수의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경제 위기로 인한 노동시장의 충격은 이주 노동자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다. 내국인에 앞서 이주 노동자는 가장 손쉬운 해고 대상이다. 이들은 내국인에 비해 법적 보호나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정치적 현상은 실업과 대량해고를 이주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 전가다. 경제 위기의 시기 내국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이주 노동자가 뺏어갔다고 간주하고 이들을 향한 분노와 반감을 높이기 쉽다. 실제로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약 10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추방했다. 2008년 금융 위기에는 영국 링컨셔(Lincolnshire)의 한 공사 현장에서 영국 노동자들이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노동자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면서 파업을 벌인 사례가 있다. 이들은 자국 노동자에 대한 우대를 요구하면서 이주 노동자를 향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경제 위기와 반이민 정서
경제 위기는 이주 노동자를 향한 공격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반이민 정서를 폭발시킨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러시아에서는 실업과 임금 삭감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인종주의를 자극해 이민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2008년 한 해에만 러시아에서는 428건의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가 발생했고 97명이 사망했다. 또한 경제 위기가 도래하고 있던 2007년 유럽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40퍼센트가 넘는 응답자들이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표하는 등 반이민 정서가 경제 위기와 함께 증가했다.
이러한 대량 실업에 처한 노동자들의 자민족중심주의적 분노에 각국 정부는 이주 노동자 보호에 나서기는커녕 내국인 노동자의 분노를 이용해 왔다. 국가는 내국인의 혐오 감정을 이용해 정부의 책임을 이주 노동자에게 전가시켜 왔다. 이는 서구 선진국의 오래된 전략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주 억제와 이주민 귀환 정책을 펴면서 대중의 분노에 화답했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미국은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이 내국인 노동자를 최근에 해고했을 경우 외국인 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제한하는 법을 시행하는 등 이주 노동자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스페인은 연간 이주 노동자의 지역 제한을 강화해 2007년 입국자가 2만 명에서 2009년 1만 6000명으로 줄었다. 이탈리아 역시 EU 출신이 아닌 이주민의 상한을 2007년 17만 명에서 2008년 15만 명으로 축소했다.
반이주민 정책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한국 사회를 휩쓸 당시 이명박 정부는 높아지는 실업률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이주 노동자의 일자리 대체 탓으로 돌리면서 일련의 내국인 노동자 ‘보호’ 정책을 실시했다. 외국인 노동자 도입 규모를 2008년 10만 명이었던 것을 2009년에는 3만 4000명, 2010년에는 다시 2만 4000명으로 축소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이주 노동자 고용을 내국인으로 교체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이주 노동자의 임금을 사실상 깎는 정책을 추진하고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이주 노동자 도입 제한 및 귀환 정책은 위기의 본질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 위기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화된 국가에서 이주 노동자가 차지하는 일자리는 내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저임금, 고위험, 고강도의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경제 위기의 시기에도 이주 노동자가 빠진 노동시장에 내국인은 여전히 진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는 이민 규제나 이주민 귀환 정책이 내국인 노동자에게 이로운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반이민 정책은 사회의 반이민 정서에 편승해 위기를 이주민에게 전가함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위장막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는 항상 위기의 희생양이었다.
지금 다시 한국 사회에 경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만약 다시 경제 위기가 우리를 덮친다면 현 정부와 사회의 일부는 또다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 대상은 이주민과 같은 사회의 약자일 것이다. 다민족 국가로 변모하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의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한다. 내국인 내신 이주민이 위험하고 열악한 일을 대신하는 현실에서 이들에 대한 포용은 성숙한 시민의 의무일 것이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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