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보편화된 인종주의와 이주민 구금
국회의 이상한 법안 합의 통과
2024년 12월 윤석열의 내란 시도 이후 내란 세력의 저항에 온 나라가 지금까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국에 돌연 국회는 지난 2월 27일 조용히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그것도 여야 합의로 말이다.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은 본회의 재적 의원 274명 중 찬성 268명, 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의결되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리고 여타 대부분 소수 정당은 모처럼 한뜻으로 손을 맞잡았다. 기이한 일은 법안 통과 직후 진보당과 사회민주당이 자신들의 찬성 표결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들은 추후 재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씁쓸한 뒤끝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통과된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은 2023년 헌법재판소가 강제 퇴거 대상인 이주민을 외국인 보호소에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한 출입국 관리법 제63조에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로 마련된 법안이다. 그러나, 가결된 개정안에 대해 시민 사회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판정 취지에 반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개정안은 구금 기간의 상한을 9개월로 정하면서 강제 퇴거 명령 집행에 필요한 기간을 초과하여 구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난민 신청(소송) 중에는 최대 20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해 난민 신청한 이주민에 불이익의 소지가 있다. 게다가 독립적 기관이 이주민의 인신 구속을 통제해야 하지만, 법무부 산하 외국인보호위원회가 통제를 맡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의 인종주의 이민 정책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의 통과 과정을 살펴보면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개정안의 골격을 설계한 법무부(정부) 외에도 국회의 방조 등 정치권의 일관된 인식이 낳은 결과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이민 정책의 사실상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강제 퇴거 대상인 이주민의 장기 구금과 자의적 구금 심사를 법제화하면서,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밝혔듯이 일관되게 이주 노동자를 ‘국민 경제’와 ‘인력 수급’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단기)인력으로 이주 노동자를 관리하기 위한 필수 정책이 외국인 보호소와 불법 체류자 단속이다. 외국인 보호소는 체류 기간이 초과한 이주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대표적 기관이다. 불법 체류자 단속은 ‘장기’ 체류하거나 사업장을 ‘이탈’한 이주 노동자를 범죄자로 ‘체포’하는 것이라면, 외국인 보호소는 체포된 이주민을 ‘처벌’하는 장소다. 이 과정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장기간 정착하는 이주 노동자는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따라서 체류 기간 초과가 범죄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해 온 국제 기구의 취지에 어긋나고, 헌법 위반 소지가 분명한데도 법무부가 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사실 명백하다. 외국인 보호소가 이주 노동자를 범죄자화하지 못한다면 국내 이민 정책의 기조는 그 사회적 정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동조
범죄자화의 상징적 도구로 활용되는 외국인 보호소의 예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출입국 관리법 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던 2월4일 <한국일보>는 '살인 전과자도 있는 외국인보호소, '계엄 정국'에 일괄 석방 우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외국인 보호소에는 “고의로 출국을 거부”하는 이주민은 물론 전과자도 상당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기사는 출입국 관리법의 개정을 서둘러서 ‘범죄자’ 외국인을 계속 구금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비슷한 취지로 4월 9일 <아시아경제>는 '외국인 전과자 13명, 추방해도 안 가고 버틴다'는 제하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 언론의 기사는 이주민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며,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구금이 가능해야 한다는 법무부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행정부와 언론이 공유하고 있는 인종주의 인식은 정치권에서 보편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월 통과된 출입국 관리법 개정안에 보수와 진보가 동의한 결정을 놓고, 국회의원들이 비인권적 외국인 보호소의 현실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에 단순히 ‘무지’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들이 무지했다는 것, 혹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이주 노동자를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도구’ 내지 ‘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외국인 보호소의 인권 침해적 구금 관행도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민의힘은 제외하더라도 민주당이 개정안 통과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에 특별한 논평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진보당 및 사회민주당마저도 의결 당시에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것은 정치권 전반의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윤석열의 내란 시도로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민의 높은 열망과 염원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얼마 전 남태령에서 소외되어 있던 소수자 시민들이 일으켜 세웠던 민주주의를 보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국회는 이주민의 인권을 제외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 멀었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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