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과 사회복지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민청 설치를 논의하는 이유, 하지만
윤석열 정권의 법무부장관 한동훈은 올해 5월 취임식에서 “이민청 설립 검토를 포함해 이민정책을 수준 높게 추진해 나갈 체제를 갖춰 나가자”라고 발언하면서 이민청 추진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한동훈은 같은 달 세계인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와 지역 경제에 동력이 될 수 있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적재적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외국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최우선 정책 과제로 이민청 설립을 내세우는 목적이 심각한 저출산 현상과 이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대한 대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정부만의 생각은 아니다. 최근 열린 이민청 설립에 관한 토론회에서 국내 유일의 이민정책 연구기관인 이민정책연구원의 원장은 “인구절벽이라는 엄중한 현실”에 대응해 이민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민청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학계를 대표하는 한국이민정책학회 학회장 역시 이민청 설립이 시급한 이유로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를 꼽았다.
저출산과 생산인력 감소라는 한국 사회의 중대한 위기에 맞서 정부와 학계가 한목소리로 이민청 신설을 외치고 있다. 마치 만능 치트키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렇지만 이민청 설립을 둘러싼 논의는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민청 설립에 찬성 혹은 반대를 하기 전에 우리가 앞서서 던져야 할 질문이 몇 가지가 있다.
이민 확대만으로는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지 못한다
먼저 과연 이민 확대가 저출산의 해결책일까? 아마 이민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도 이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저출산 위기의 해결책으로 이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주민이 많이 들어와서 인구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와 다르게 자녀를 많이 낳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생각은 주로 동남아시아 등 저소득 국가에서 이주하는 이주민이 출신국의 출산율을 따라갈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주민은 이주한 국가의 출산 경향을 따라간다. 국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일련의 연구는 거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국인의 출산율에 가까워진다고 결론 내린다. 이 같은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이민 확대가 저출산의 해법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기적으로 이민 확대는 인구수를 늘리기는 하겠지만 사회 불평등, 여성 차별, 주택 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는 내국인은 물론 이주민에게 똑같이 영향을 미쳐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저출산의 해법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지 이민 확대는 단기간의 처방에 불과하다.
둘째로, 그래도 이민 확대는 곧 다가올 미래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을까? 여기에도 함정이 존재한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초래될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무엇보다 청년인구가 줄어들고 이들이 종사하는 산업의 일자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내국인 청년인구가 종사하는 산업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숙련도가 높은 일자리다. 즉 학력이 높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직종이다. 반면 현재 이주노동자가 종사하는 산업은 내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낮은 임금의 저숙련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많은 연구는 현재의 이민정책으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일자리 수급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고학력, 고숙련의 해외 인력의 이민을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수 인재의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수 인재의 해외 유치는 사실상 실패했다. 고학력의 고숙련 인력에게 한국은 결코 매력적인 정착지가 아니다.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장시간 노동이 일상적이며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한국보다 이들은 노동조건이 좋은 여타 선진국을 택한다. 이러한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이민정책만으로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역설적으로 이민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 저출산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도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을 맞이할 준비로
게다가 단순히 행정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이민청을 설립하자는 주장은 기존의 차별적이고 비인권적인 이민정책에 대한 반성을 외면하고 있다. 국내 이민정책은 임금이 낮고 노동환경이 열악한 직종의 일자리 부족을 메꾸기 위해 제3세계 인력을 단기적으로 순환시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마치 1회용품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기응변식의 인력수급정책은 해당 산업이 계속해서 저렴한 저숙련 인력에만 의존하도록 만들어서 산업의 발전을 오히려 막을 수 있다. 이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산업의 쇠퇴를 야기할 뿐이다. 제3세계 노동자가 지금처럼 계속 한국을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세계 경제 상황이 변화하면 이들은 보다 나은 체류 조건과 노동 조건을 찾아 다른 국가를 찾을 것이다. 현재 이민정책은 생산인력 부족을 단기적으로 해결할 뿐 지속가능한 대안은 아니다.
결국 법무부장관이 “쏘아올린” 이민청 설립 주장은 저출산과 생산인력 감소라는 한국 사회의 위기에 결코 대처할 수 없다. 현재 시민들의 불안함을 잠시 잠재우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건, 악화되어 가는 빈부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후진적인 노동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민정책이 아닌 국내 노동시장과 사회복지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의 차별적 이민정책에 대한 반성 없이 이민 확대만을 추진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우수 인재 유치, 저숙련 인력의 지속가능한 유지와 인권보호에 실패한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다가오는 한국 사회의 위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답이 이민청은 아니다.
오늘로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 연재를 마칩니다. 14회에 걸쳐 우리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 난민, 다문화 등이 겪는 소외와 차별 문제를 다루어 주신 손인서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