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이주민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진정한 다문화 사회 이룰 수 없다

단일민족의 신화가 만들어낸 배타성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주민 차별과 혐오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습관처럼 되뇌는 논리가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단일민족 국가를 유지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나 문화에 배타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언뜻 이 말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어서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같은 민족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다. 재외동포 이주민은 우리와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핏줄을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여기고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우리의 오랜 신화는 외국인만 혐오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도 타자로 만들어 낸다.

재외동포의 역사는 우리 민족 역시 이주민이었음을 상기시킨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선조들은 구한말의 빈곤과 불안정한 정세를 피해 해외 이주를 시작했다. 당시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의 하와이와 멕시코, 그리고 멀리 쿠바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은 생존을 위해 조선의 국경을 넘었다. 하와이만 해도 사탕수수 경작을 위한 노동자로 7000명이 넘는 한인 노동자가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제 강점기는 한인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이주를 한 시기였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와 토지 및 식량 약탈을 견디지 못한 한인들은 만주와 일본, 중국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방 전 만주에 거주하던 한인은 적어도 150만 명 이상이었고, 일본도 200만 명이 넘는 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해방으로 많은 한국인이 귀환했지만 상당수는 만주와 일본에 남았다. 그뿐인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고아와 혼혈인, 미군의 배우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독일의 간호사와 광부를 필두로 한인들이 북미와 유럽, 그리고 남미로 떠나갔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세기 한국인 5명 중 1명은 이주민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한국인, 그들이 한국에 온 이유

한 세기에 걸친 해외 이주의 결과로 세계 각국에 터를 잡고 세대를 이어가는 한인의 수는 2021년 현재 700만 명을 넘는다. 이들은 우리와 핏줄을 공유하는 한민족이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어와 문화를 지켜가면서 한국계로서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말까지도 재외동포는 같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은 철저하게 국경 안에서만 통용되었다. 재외동포는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경계와 배제의 대상으로 존재했다. 1960-70년대 권위주의 정권은 재일동포, 특히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반기기는커녕 수백 차례 간첩으로 의심하고, 체포, 구금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재외동포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일원으로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를 위한 도구적인 목적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표방하면서 세계화를 위한 협력과 공존의 대상으로 재외동포를 내세웠다. 정부는 재외동포를 같은 ‘한민족’으로 정의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모국과 동포사회의 상호 협력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로 김대중 정부는 재외동포법을 제정하면서 재외동포들이 보다 자유롭게 한국에 입국하여 사회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었다. 이렇게 재외동포 귀환 이주민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 외교부)
(이미지 출처 = 외교부)

그렇지만 모든 재외동포가 한민족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최초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동포의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한정하여 대한민국 설립 이전에 이주했던 중국 및 구소련 거주 동포를 제외했다. 이 규정은 정부가 해외동포를 국적에 따라 차별대우하겠다는 의도를 은밀히 드러내주었다. 서구의 재외동포만이 세계화의 동반자로서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정되었고, 중국 및 구소련 출신 재외동포에 비해 자유로운 출입국과 체류활동 범위가 허용되었다. 비록 2004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중국 및 구소련 동포들은 재외동포에 포함되었지만 출신국에 따른 차별은 지속되었다.

귀국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 극복은 진정한 다문화 사회 열기 위한 시작이다

1990년대 초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정상화로 중국과 구소련의 재외동포들, 그 가운데에서도 다수의 중국동포들은 재외동포법 제정 이전부터 노동력이 부족한 단순노무 분야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정부는 중국과 제3세계 출신 재외동포를 세계화 시대의 민족적 동반자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값싼 해외 노동인력으로 간주했다. 기존 재외동포법은 단순노무 직종의 취업을 불허했지만,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정부는 2007년 중국 및 구소련 출신 재외동포에게 단순노무 업종의 취업을 허용하는 방문취업제를 시행한다. 이 제도는 겉으로는 비서구권 재외동포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목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중국 및 구소련 출신 재외동포를 노동력으로 계속해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주민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부분 민족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상상하지만, 사실 국내 거주 이주민의 3분의 1은 재외동포 귀환 이주민이다. 이들 중 약 80퍼센트는 중국 출신이지만, 구소련(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출신이 9퍼센트, 미국 출신도 5퍼센트에 이른다. 중국과 구소련 출신 재외동포는 국내에서 사실상 같은 민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정부와 시민에게 이들은 그저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다. 게다가 중국 동포는 때때로 외국인보다 못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서구 출신 재외동포는 국내에서 이들보다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도 항상 우리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때로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때로는 백인보다 못한 동양인으로 취급받는다.

같은 한민족으로서의 재외동포는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도구적으로 만들어 낸 관념일 뿐이다.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외국 출신의 이주민을 차별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안의 동포를 차별해왔다. 민족과 문화는 차별의 원인이 아니라 차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모두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꿈꾸기 위해서는 신화에 불과한 한민족이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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