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남편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 시간이었다. 바쁜 우리와는 달리 아이들은 느긋하다. 안 보인다 싶으면 소파 위 마른 빨래더미 틈에서 수건 한 장을 빼서 덮고 누워 있는 로, 옷 입다 말고 방바닥 한 점을 응시하며 멍 때리는 욜라, 세수도 안 한 채 독서나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메리는 유치원이고 학교고 어디 갈 데가 없는 애들 같다.
아이들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느릿느릿한데 나는 2배속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각자 다른 시간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유치원 차를 놓치면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거나 지각을 해도 큰 지각변동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의 오산이다. 나는 유치원 차를 뒤쫓아 그 다음다음 정거장에 먼저 도착할 것이며, 지각하는 걸 못 참는 원칙주의자 선생님한테 혼쭐이 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디 한번 후회하게 놔둘까. 까짓거 나도 함께 지각이다.
아침마다 하는 생각을 또 하고 있는 그때 식탁 위에 갓 완성된 아침식사가 탁 소리를 내며 놓였다. 파기름향이 나는 닭가슴살 볶음밥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이런 휼륭한 요리가 말이 되는가. 볶음밥은 갈색의 불그름한 소스가 눌러 붙은 모양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마법의 가루가 뿌려졌을 것이다. 마법의 가루는 손쉽게 떡볶이 양념을 만들거나 여러 요리에 첨가해 맛을 상승시키는 용도의 양념 가루인데 라면스프 비슷한 거다. 패키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마법의 가루. 요리에 자신 없는 주부들에게 희소식. 모든 요리에 활용 가능. 쉿! 남편에겐 비밀이에요’ 패키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가루를 사자마자 그 정체를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이 가루를 활용한 요리로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남편의 요리 실력에 의구심을 거두지 않던 친구는 요리하는 내내 ‘차라리 나가서 짜장면을 먹자’고 하였다는데, 완성된 요리-마법볶음면-을 한 입 맛본 뒤에는 ‘아, 역시.... 아이 아빠라.... 먹을 만한 걸 만들어 내는구나!’ 하며 놀라워했단다.
마법의 힘인지.... ‘늦더라도 밥은 먹고 가자’라고 생각을 전환한 나는 자리에 선 채로 볶음밥을 먹었다. 마법요리 장본인인 남편은 물론이고 메리도, 욜라도 볶음밥을 최대한 즐기는 모습이었다. 로만 먹지 않고 식탁 의자 주위를 뱅그르 돌았다.
“로, 왜 안 먹어? 맛있어. 먹어 봐.”
“양말이 없어.”
“양말?”
양말 찾기는 우리집 아침의 최대 난제다.
하지만 소파 위의 듬직한 동산-빨래한 뒤 아직 개지 않은 옷더미-를 돌아본 나는 자신이 있었다. 빨래동산이 높을수록 양말 한 짝이 들어 있을 확률도 높다.
나는 그 동산을 기어오르며 “엄마가 찾아볼게! 항상 양말은 있었잖아? 지금까지 양말 안 신고 유치원 간 적도 없었고”라며 양말을 찾았다. 그렇게 양말 일고여덟 짝을 발굴했는데, 놀랍게도 다 짝짝이였다. 잃어버린 양말 한 짝이 모여 사는 왕국이 있다면 우리 집 출신 양말이 꽤 될 것이다. 그 왕국으로 가버렸거나 세탁기 틈이나 소파 밑에 들어간 짝을 기다리는 짝짝이 양말통까지 뒤지고서야 핑크색 양말 한 켤레를 조합할 수 있었다. 로는 꼼꼼하게 양말을 신느라 마법 볶음밥은 먹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유치원 버스 타는 곳인 어머니댁 아파트 정문까지는 내 차로 15분이 걸린다. 매일 아침마다 우리집에서 5분이면 도착하는 유치원을 지나쳐 할머니집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갔다가, 유치원을 마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할머니집으로 왔다가 저녁에 엄마 차나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생활 어언 3년 차인 로다. 나는 유치원 가는 길가에 핀 꽃들이나 나무, 벌레를 보는 일과 밝을 때 집에 와서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노는걸 좋아하는 ‘걷기 좋은 시골 가정생활’ 추종자지만 아직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해 오늘도 밥도 먹지 않은 아이를 차에 태우고 유치원 버스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올린다. 그래도 차 안에선 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끝말잇기, 수수께기, 베스킨라빈스 게임을 할 때도 있고,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 모양을 감상하기도 한다. 물론 차 속도계와 과속카메라 등 전방을 주시하면서 말이다. 특히 구름 모양 감상은 어릴 때 시장 갔다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항상 즐긴 놀이인데 로도 나를 닮아 구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뿔이 있고 날개까지 달린 괴물 구름을 찾고 난 욜라가 말했다.
“아.... 오늘은 유치원 가기 싫다!”
으응?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나도 “엄마는 사무실에 더 가기 싫어! 으윽.... 으웩. 으아아악!”라거나
“ 사무실보다는 유치원가는게 낫지 않아? 넌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되잖아. 엄만 돈을 벌어야 된다고!”라고 말할 뻔했지만, 자중하고.
로에게 유치원에 가기 싫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로는 양말을 가리키며 “핑크색이잖아” 했다.
색과 성별을 연결짓는 고정관념에 대해 지적하려다가, 또 양말을 벗겨 맨발로 보낼까 하다가, 핑크색 양말을 신고 당당하게 유치원에 가는 게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거 핑크색 아닌데? 그건 바로 인디언핑크색이야! 핑크색이랑은 다르지~ 달라.”
“그게 뭔데?”
“인디언 알지? 인디언! 용맹스러운.... 으왕! 어흥! 어흥!” 인디언이 호랑이까지 때려 잡았지만 로는 만족한 얼굴이 아니다.
유치원에 오늘따라 가기 싫은 이유는 양말 때문이 아님에 분명하다. 항상 양말은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욜라가 학교 갈 때 양말 모서리가 돌아갔다고 트집을 잡는 것처럼. 로의 그 다음 말에 주목했다.
“오늘 한글놀이 한다고 했거든. 선생님은 재밌을 거라고 했지만....”
그런 거였다. 한글을 깨치지 못한 로는 유치원에서 하기로 한 한글놀이가 걱정돼서 아침부터 입맛도 없었고, 괜히 양말에 집착했던 것이다. 모든 의문이 풀리자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도 ‘영재발굴단’에 나온 아이큐 165의 다섯 살 아이가 일차방정식을 풀고 시를 짓는 것에 감격해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 천재를 매우 좋아하지만, 우리 아이는 천재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로 아이들이 바보가 아닌 것에 만족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우리 아이가 혹시 천재?’라는 생각보다 ‘혹시 바보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왜냐면 천재는 세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드러나서 세상에 천재성을 알아서 펼칠 테지만, 바보 아이는 되도록 빨리 엄마가 살펴봐 주고 도와 줘야 하기 때문이다. 살펴봐서 아이가 바보가 아닌 걸로 판정(자체 판정) 나면 나는 모든 고민을 뒤로하고 아이를 내버려 둔다.
남들보다 잘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글이나 숫자, 영어도, 중국어도, 나라 이름도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눈뜨자마자 내게 방적식의 원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아이라면 말이 다르지만, 바보가 아닌 아이를 가르치는 건 귀찮기도 하고 나도 바빠서 그렇게는 못한다. 아무튼 그렇게 내버려 뒀더니 메리와 욜라는 스스로 한글을 깨치고 수도 알아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로는 아직 한글을 못 읽고 있다. 로를 보는 시어머니는 생각보다 애가 똑똑하지 않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 능숙한 로의 다섯 살 육촌 형제와 왠지 똑똑하게 보이는 아파트 10층 아이와 자꾸 비교하며 걱정이 태산이지만, 나는 글자도 모르는 로가 너무 귀엽기만 하다. 앞서 말했듯 예전에 바보가 아닌걸로 자체 판단을 마쳤기에 한글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걱정할 게 많은데 어차피 알게 될 걸 지금 모른다고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
로가 한글도 모르고 이렇게 된 데는 가르치기에 소홀한 엄마뿐 아니라, 유치원 때문이기도 하다. 로가 다니는 유치원은 전국에서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 중에 최고다. 당연한 말이지만 숙제 같은 건 절대 없고, 한글을 따로 가르치지 않으니 더 이상 고차원적인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그냥 놀면서 알아서 배우는 거지. 넓은 유치원 교실과 마당에서. 그뿐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로에게 한글놀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바빠서 안 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머, 다행이다!” 로랑 기쁨의 포옹을 하고 말했다.
“로! 엄마한테 편지 써 줘. 엄마가 편지를 너무 받고 싶어.”
로의 편지는 하트모양 그림이 주를 이룬다. 주로 색종이나 자투리 종이에 그려서 봉투처럼 접고 테이프까지 붙여 주는 데 정성이 느껴진다.
나는 이런 편지를 고이고이 받아서 기쁨에 겨워한다. 글자는 자기 이름 석자뿐이지만 글자를 모르는 지금이기에 받을 수 있는 편지니까 소중하고 애틋하다.
로의 배를 마구 간질이니까 깔깔깔 넘어가게 웃으며 나의 요청에 대답한다.
“써 줄게. 대신 딱지 한판만 치면.”
아, 로의 하트편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싶다. 모든 편지가 최고로 좋고, 설레는 맘으로 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 본다. 로 몰래 버리기도 하지만, 몇 장은 성하게 보관도 할 생각이다.
그날 저녁에 나는 편지를 받기 위해 시시한 딱지놀이를 시작했고, 딱지를 넘기기 위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딱지를 쳤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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