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다
“‘참 소중한...’은 공동체 미사를 아직 하지 않았다. 미사 공지를 하면 지역 신자나 봉사자 중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거 중장년이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이 되도록 운영하려고 한다. 미사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주인임을 확인하는 미사가 되었으면 한다.”
이영우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대학동 고시촌 담당)는 “전례 중심이 아닌 삶을 중심”으로 ‘참 소중한...’ 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전까지 빈민사목위원회는 선교본당을 중심으로 사목을 해왔으나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서 더는 선교본당에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아졌다. 가난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들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으로 흩어졌다." 빈민사목위원회는 새로운 사목 방향을 고민했고, 직접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결과가 ‘참 소중한...’ 센터다.
‘참 소중한...’ 센터는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 사는 독거 중장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센터를 맡고 있는 이영우 신부는 봉천3동 선교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같은 관악구에 있는 대학동 고시촌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 신부는 무료급식, 상담 등을 하는 천주교 사회복지 공동체 '해피인'을 통해 이 지역의 독거 중장년층과 만나고, 이들을 위한 사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빈민사목위원회는 지난해 7-8월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대학동 고시촌 거주가구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시촌에 사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조사 대상은 고시원에 사는 105명이었다. 이 가운데 일상에 지장을 주는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62.9퍼센트에 달한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연구원은 “오랫동안 고시를 준비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취직이 어려워진 ‘고시 낭인’과 일용직 노동자 수급가구 등 취약 계층이 밀집해 있지만, 고립된 저소득 중장년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또 “대학동 고시원은 서울의 다른 쪽방 밀집 지역처럼 열악하지만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독거 중장년의 실태를 파악해 지원 방안을 찾고자 조사했다”고 연구의 취지를 설명했다.
원래 대학동 고시촌에는 고시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2017년 사법고시가 없어진 뒤 혼자 사는 40-60대 중장년 인구가 많다. 관악구는 서울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고, 고시원이 밀집한 곳인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관악구 주거빈곤율은 31.3퍼센트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시원에 사는 주된 이유는 임대료가 저렴해서(56.2퍼센트)다. 평균 세는 23.5만 원이고, 경사가 높은 위쪽으로 갈수록 임대료가 싸다. 대학동은 다른 지역보다 고시원 임대료와 물가가 낮은 편이지만, 주거비 부담(31.4퍼센트)으로 어렵고, 식비가 없어서(24.8퍼센트) 식사를 거르는 이들이 많다. 소득이 없거나, 의료비를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월세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지금 벌이가 없으니까 다달이 주거비를 내려면 부담스럽죠. 고혈압이 있고, 간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니까 의료비 많이 들고요. 보통 한 번 가면 2-3만 원 정도 쓰니까요.”(남, 48살, 무직)
또한 합판으로 쪼개 놓은 고시원이 많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소음 문제를 겪고 있으며, 공용 화장실도 불편하다.
“이어폰 꽂고 자는 거죠. 소리에 민감해요. 문을 쾅쾅 닫고, 슬리퍼 신고 가도 잘 들려요. 사람 사는 데가 아니에요. 화장실 들어가 있으면 누가 문을 쾅 쳐요, 그럼 나도 안에서 쾅 쳐요. 샤워하고 있으면 또 쳐요. 내 공간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야 하고, 아무 생각 안 해야 돼요.”(남, 54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이들도 29.5퍼센트다. “고시 준비를 이유로 스스로 연을 끊거나 가족과 소원해져서 주기적으로 연락할 사람이 없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도 적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가난은 점점 더 고시원 밖으로 나오지 않게 만든다.
김준희 연구원은 조사 결과 열악한 환경에 장기간 사는 가구가 대부분이며, 더 나은 거처로 이주하도록 관악구 안에 공공임대주택 확보가 필요하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부엌이 없는 고시원이 많아, 공용 부엌 등 생활 편의를 위한 지원과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영우 신부는 이번 실태조사로 대학동에서 사목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됐고, 올해 2월 공식적으로 대학동 고시촌 담당 사제가 됐다. 3월 22일 ‘참 소중한...’의 축복식에서 그는 해피인, 관악주거복지상담소 등 단체들의 독거 중장년을 위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민들이 편히 쉬고 만날 커뮤니티 공간이 더 절실해져 ‘참 소중한...’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신부는 이 공간을 고시촌 거주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때 와서 맘껏 쉴 수 있는 곳으로 열어 두고 싶다. 그는 “결정한 것은 없다. 일단 쉬고 먹고 나누고 함께하면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이다. 프로그램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도 “주민이 주인이라는 모토와 함께 가난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빈민사목의 원칙에 따라 무엇을 할지 함께 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주민이 주체가 되길 바라는 이영우 신부의 바람이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센터가 열리자마자 고시촌 에 사는 10여 명이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김 아무개 씨(60살)는 “청년과 아이를 위한 공간은 많아도 장년층을 위한 곳이 없었는데, 이곳이 우리들에게 이름 그대로 참 소중한 곳이 될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씨는 앞으로 이곳에서 모임을 계속하면서, 취업, 사회적 기업 등에 관해 정보를 나누고 공부하며, 채소 가꾸기, 영화 보기 등 프로그램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시촌에 주방이 없어서 식생활 해결이 큰 문제인데, 그런 어려움을 알고 이곳에 주방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센터에는 싱크대와 전기레인지가 있어 가볍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축복식이 끝나고 봉사자들은 후원받은 라면, 즉석 밥 등을 선반에 채웠다.
‘참 소중한...’ 센터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려 있다. 물품 등을 후원하거나 센터에서 봉사자로도 함께할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