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추계 세미나
성가정 담론 비판적 성찰, 1인 가구 목소리 경청부터
2020년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1.7퍼센트가 1인 가구로 이는 664만 가구에 해당한다.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지금, 교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에 대해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이 2일 서울 청담동 성당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사회 전반에서 1인 가구에 대해 정책 지원을 비롯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교회에서는 아직 본격 논의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1인 가구의 현실과 교회의 성가정 담론을 돌아보고 1인 가구에 대한 사목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개회사에서 김민수 신부(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는 “교회는 예수-마리아-요셉 성가정의 모범을 바탕으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형태를 권고해 왔지만 더는 기존 가정상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1인 가구가 대세이기에 가정에 대한 강론에도 그 상황이 반영돼야 하고, 부부 중심의 사목 프로그램만으로는 가정 사목을 실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신부는 “교회가 1인 가구에 대한 사목 정책 수립과 실행에 박차를 가하지 않고 기존 사목의 틀에 머문다면 더 빠르게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면서 “이번 세미나가 1인 가구 시대를 사는 교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유경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행복한 1인 가구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1인 가구는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같이 비참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은 노숙인을 비롯해 쪽방촌이나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기초 생활 수급자인데, 1인 가구의 증가와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가 맞닿아 있는 점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BTS와 '오징어 게임'으로 상징되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치솟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고독과 가난으로 힘겹게 사는 1인 가구도 함께 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면서 “제도교회가 먼저 고민하지 못한 1인 가구의 현실에 대해, 앞서 자리를 마련해 준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에 감사하고 이 자리가 교회 대응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첫 주제인 ‘1인 가구 현황과 사회적 함의’는 변미리 교수(서울시립대,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두 번째 주제인 ‘1인 가구 증가와 가톨릭교회의 사목 방향’은 경동현 연구실장(우리신학연구소)이 발표했으며, 이에 대해 박문수 박사(팍스크리스티코리아 연구이사)와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가 각각 토론에 나섰다.
성가정 담론, 새로운 유형의 가족, 가구 포괄할 수 있나?
빈곤과 고립에 놓인 1인 가구, 교회가 동반해야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를 맞았고, 가족구조도 4인 가구에서 1, 2인 가구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왜 1인 가구 문제를 고민해야 할까.
이에 대해 변미리 교수는 “교회에 가면 어디에 소속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만으로는 39살이지만 청년부에 들어가기 머뭇거려진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니 소공동체에 들어가기도 좀 거리감이 있다”는 1인 가구 신자의 토로와 계속되는 청년 1인 가구의 고독사 문제 등을 언급했다. 이런 사례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성가정 담론이 중심이 되는 교회의 가족 가구 중심의 시각”만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나 가구를 포괄하지 못하거나 그 구성원들이 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교회는 소수자와 약한 자들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혼자 사는 청년들의 고독사 문제나 중장년 1인 가구를 관통하는 공동의 문제는 빈곤과 고립”이며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사목적으로 대응하면서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는 1인 가구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서울시 1인 가구 지표를 중심으로 1인 가구의 삶의 질을 설명했다.
서울시가 매년 실시하는 대규모 도시사회정책지표 조사인 서울 서베이 2020년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로 살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아프거나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힘들다는 응답이 전체 38.2퍼센트, 식사 해결이 어렵다는 응답은 19.7퍼센트에 이른다. 변 교수는 특히 식사의 어려움은 30대 이하 1인 가구에서 높게 나타나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1인 가구의 과반수는 소득이 200만 원 미만으로 300-600만 원 미만에 과반수가 분포하는 다인 가구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재정 상태, 인간관계, 가정생활, 사회생활 등을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조사한 행복도 역시 다인 가구는 6.73점, 1인 가구는 5.67점으로 1인 가구가 낮다.
종교별 행복감과 사회적 지원망에 대해서는 가톨릭 신자 1인 가구의 경우, 행복감이 다인 가구보다 1점 낮은데, 이는 다른 종교 내 격차보다 크다.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는가와 몸이 아플 때 보살펴 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가톨릭 신자 1인 가구와 다인 가구의 차이는 다른 종교보다 크게 나타났다. 변 교수는 다른 종교보다 가톨릭 1인 가구 신자들이 다인 가구에 비해 좀 더 열악하다는 것이 이를 통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변 교수는 한국 사회 3가구 가운데 1가구가 1인 가구일 만큼 급증하고 있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외부 조건으로 1인 가구가 된 경우들인데도 “여전히 혼자 사는 사람들을 향한 비정상성에 대한 시선이 존재한다”면서 “사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나와 다른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혼자 산다는 이유로 삶의 질이 열악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1인 가구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세대별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청년 1인 가구는 주거 문제 해결, 경제 상황과 공동체 연결성이 약한 중장년 1인 가구는 지역 중심의 연결망, 낮은 경제 지위, 고립감, 배우자의 죽음을 경험하며 삶의 마무리 단계로 나아가는 고령 1인 가구는 일상 개선 프로그램과, 죽음을 준비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또 1인 가구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확장하는 교육, 고립 예방과 상호 돌봄 등과 같은 현재 서울시 1인 가구 정책 방향도 참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문수 박사(팍스크리스티코리아 연구이사)는 가톨릭교회의 성가정 담론이 새로운 유형의 가족구조를 포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변 교수의 지적에 동의한다면서 “실제로 이 점이 1990년대 이후 청년층, 교회의 적응 지체와 교조주의에 실망한 식자층의 교회 이탈 원인 가운데 하나이자 진입 장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 전체 혼인 경험 인구 20명 가운데 1명꼴이 된 이혼 경험자들 역시 ‘성가정’ 담론이 압도하는 천주교회에 진입을 꺼리고 있고, 다른 소수자들은 더 어려움을 느끼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을 주저하는 우리 모습이 이 추세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1인 가구 문제도 교회의 관심이나 절박감이 부족한 편이라면서 성사 사목에 치중된 상황을 비판하고, 팬데믹으로 교회 이탈이 가속화된 위기에서 이제부터라도 관심과 중장기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 중심적 사목 구조 넘어서서
1인 가구 이야기 경청부터
지역 사회, 일상의 삶과 연계된 사목으로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사목의 길을 걸어야 할까.
이어진 발제에서 경동현 연구실장(우리신학연구소)은 우리신학연구소가 2020년 5월, 2021년 9월 두 차례 팬데믹 시대의 가톨릭교회를 진단한 조사(이하 팬데믹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인 가구에 대한 사목 방향을 제안했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신자들이 이탈하고, 교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줄고, 주일미사 참석 의무감이 약해지는 등의 상황에서 1인 가구에 대한 적극적 사목 계획은 부재한 상황이다. 그는 빈민 사목이나 청년 사목에서 드물게 1인 가구에 대한 사목 정책이 실행되고 있지만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이 교회 사목 전반에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고 있다고 봤다.
팬데믹 조사에서 신자들이 가장 기대한 사목활동은 ‘본당의 새로운 역할 모색과 탐구’, ‘전례 중심에서 일상생활 중심의 신앙생활로 전환’이다. 또 진행 중인 세계 주교시노드에서 교회 구성원의 목소리에 대한 경청과 참여가 강조되는 만큼 그는 “교회가 본당의 새로운 역할을 찾고, 신자들의 일상으로 한 걸음 다가서려면 변방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1인 가구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팬데믹 조사에서 90퍼센트가 넘는 신자들이 지역 사회에서 본당이 공적 역할을 할 것을 지지했다. 이에 관해 그는 빈곤율이 심화되는 1인 가구에 대해 사회복지나 자선과 같은 전통적 돌봄 방식을 넘어 복음화의 사명을 실현하는 방식을 더 다양하게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교회의 가족 중심적 사목구조는 1인 가구가 소외감을 느끼는 원인이 될 수 있고, 1인 가구 급증이 가족 중심 사목에 다소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면서, 1인 가구가 된 다양한 동기와 필요를 고려할 때 새로운 방식의 사목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봤다.
가족 중심적 사목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 그는 2005년부터 시행된 건강가정기본법을 둘러싼 정상과 비정상 가정에 대한 논란이 교회의 성가정 담론과 연결된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가족의 양육과 복지를 국가의 기본 책임으로 표방하며 자녀를 낳아 기르고 이혼하지 않은 가족을 건강 가정으로 규정하고 이외 다른 가족 유형을 정책적 교정 대상으로 본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교회의 성가정 담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외짝 교우’, ‘혼인 장애’, ‘미신자 장애’와 같은 성가정의 기준에 맞지 않는 가정을 규정하는 교회 용어들에서 드러나듯 성가정이 아닌 가족이 성당에서 겪는 소외감과 주눅 드는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데도 교회는 신자인 부모와 신자인 자녀로 이뤄진 신자 가정을 이른바 성가정으로 전제하고 이에 맞지 않는 가정은 문제가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러한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그는 “가정 사목에서는 사회의 정상 가족 담론과 교회의 성가정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인식의 확대가 전제돼야 하고, 성가정 중심에서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1인 가구를 비롯한 한부모가족, 조손가정, 입양 가족, 재혼 가족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과 중장년 사목에서는 주거와 사회 관계망 형성을 지원하는 사례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사회주택 ‘함께꾸는 꿈(CUM)’과 ‘참 소중한...’ 센터를 들었다. 노인 사목은 지역사회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고 노인의 삶의 지혜를 존중하는 장치가 요구된다. 이러한 사목 방향은 지역 사회와 본당과 연계돼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는 교회가 1인 가구나 한부모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문제에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1인 가구의 대표 그룹인 여성, 노인 사목과 미혼모 가정 등에 대한 지원은 교회가 오래 관심을 집중해 온 사목 분야라고 설명했다.
또 청년층 등의 교회 이탈은 1인 가구 문제가 떠오르기 전부터 있었던 문제로, 이들이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교회가 이들을 배제한 것이 아니며, 이에 대해 본당 사목자들은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 왔지만 가치관과 경제사회적 환경의 변화 등 사목자나 본당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신부는 교회의 성가정 담론이 사회의 정상 가족 담론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는 의견과 건강가정기본법이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규정하고 있어 차별적이라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나 부모의 심각한 갈등으로 큰 고통을 받는 자녀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재혼 가정의 계모나 계부에 의한 학대, 친부모의 학대와 방임 등으로 상처 입고 방황하거나 범죄에 빠지는 청소년의 실태를 보면 분명히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건강 가정을 지향하는 사회정책은 중요하다”고 봤다.
또 박 신부는 “교회는 남녀가 평생을 건 충실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서약으로 이루어진 혼인을 본래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천명한다”면서 “이런 하느님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혼인과 가정의 본질적 의미를 살아가도록 촉구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단죄하는 것이 교회 가르침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과 동반하며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고 온전한 신앙생활로 이끌어 주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며, 성가정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청년 1인 가구의 경우 생애주기에서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과정으로 보고 1인 가구 다수가 겪는 고립감과 주거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되, “이들이 다시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인 가정 공동체로 돌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1인 가구를 위해 지역이나 본당을 중심으로 구체적 사목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와 그에 따른 교회의 현실적 어려움, 1인 가구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과 지역 거점 활용 방안 등을 나눴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은 이번 세미나를 시작으로 1인 가구 문제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후속 세미나를 계속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세미나는 청담동 성당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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