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연중 제4주일) 신명 18,15-20; 1코린 7,32-35; 마르 1,21ㄴ-28
어느 문명을 막론하고 절대자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호기심인 동시에 두려움이었습니다. (이 절대자는 물리적 의미의 왕과 같은 지배자와 신앙적 의미의 신을 모두 포함합니다.)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지만 그 절대자에게서 나오는 영향력이 내 삶에 너무나 치명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일 말씀 외에 가장 적절한 예로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주님의 변모 사건입니다. 그분의 면모 모습을 마주한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이후 들리는 하늘의 목소리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6,6)에 대한 복음의 증언은 이러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마태 17,6) 자기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방법을 통하여 주님에 대한 정체성이 드러나니 그들의 호기심은 바로 두려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실 이 두려움은 죽음과도 직결됩니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모세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9) 이번 주일 제시되는 독서에서도 그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신명 18,16) 그분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두려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분의 알아간다는 것은 무척 신중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주님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하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를 만납니다. 바로 더러운 영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마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41) 주님께서는 이들이 당신을 안다고 해서 회개시키거나 하는 등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으십니다. 더러운 영은 쫓아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고 그들이 제대로 주님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오늘 말씀들을 통해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분을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이 더러운 영의, 마귀의 유혹일 수 있음도 깨닫게 됩니다. 너무 섣불리 주님을 안다고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잘못된 방향의 열망이 때로는 나를 죽이고 사회를 망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종교집회가 제한적으로 허가됨에 따라 미사도 재개되었습니다. 주님의 몸을 다시 모실 수 있게 된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사리 돌아온 이 시간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길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자칭’ 주님의 뜻을 전한다며,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며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분들에게 오늘 독서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신명 18,20) 주님을 알아가고 전하되, 끊임없이 그분이 지혜를 청하며 함께할 수 있는 신앙을 키워 나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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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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