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박홍기

다들 떠나가는 11월에

-박춘식


유서를 남기고

떠나자


허물이 저지른

온갖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많은 은인들에게 감사 감사드리고

물지게 잠자리 옹기굴 미루나무에게

마실 앞 냇물에게 잊지 않겠다고

뒤뜰 다람쥐에게

예쁜 식탁을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고

숨이 빠져나간 껍질 위에 시집(詩集)을 덮어

마지막 뜨거운 번제를 올리고 싶다고

그리고 하늘 어머니께

저 못난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일곱 번 기도해 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떠나자

다들 떠나가는 11월에는

 

 <출처> 나모 박춘식 미발표 신작 시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텅빈 들판을 봅니다. 그렇게 넘치던 이파리들이 멀리 다 떠났습니다. 이미 이승을 떠난 조상들, 가족들을 위하여 합장합니다. 늘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듯이, 저승의 영(靈)들에게도 사랑 넉넉하게 베풀어 주십사고 빕니다.
 

 
 
나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