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진실 규명과 엄중한 법 적용 주문

경동건설 하청노동자 정순규 씨(미카엘) 산재 사망의 진실을 가릴 2심 재판이 18일 시작됐다.

2021년 6월 16일 1심 재판부가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측 피고 전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지 307일 만이다.

18일 첫 공판에서는 고 정순규 씨 배우자인 김영희 씨가 진술했다.

김 씨는 “사고 당시 119신고 기록을 보면 최초 신고자는 1미터라고 했다가 2미터라고 하며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서, “처음 발견한 회사 직원은 저희 유족에게 남편을 벽 안쪽에서 끄집어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직원은 지금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검찰이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 최초 발견자를 재조사, 보강조사 하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전난간대 하나 없는 허술한 비계, 비계와 벽이 45센티미터나 떨어져 있어 사람이 안쪽으로 떨어질 위험한 현장”이었다면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가족을 위해 일해야 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했다. 11월 3일 가족들이 다시 현장을 찾았을 땐 경동건설이 안전난간대, 보호망을 설치하고 비계를 벽 쪽으로 밀어 놨다. 누가 봐도 사고 현장을 은폐하고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동건설은 남편이 술을 먹고 일했다고 모욕하고, 관련 기사를 낸 언론사에 전화해 기사를 내리라고 협박하고, 관리감독지정서 서명을 위조하는 등 양심이란 찾아볼 수 없는데도, 노동자 편에 서야 할 노동부는 경동건설 편이었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재판부가 가해자 중심 판결이 아닌 피해자 중심에서 공정하고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기업의 이윤을 먼저 챙기기보다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근본적인 생각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18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경동건설 산재사망 정순규 씨 2심 재판 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정석채)
18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경동건설 산재사망 정순규 씨 2심 재판 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 정석채)

재판에 앞서 정순규 씨 유족, 중대재해 없는 부산운동본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은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고인과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실 규명과 법 적용으로 책임자를 강력 처벌해 책임을 다하라”고 재판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현장 CCTV나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고라 사법부가 사건의 원인을 낱낱이 밝힐 것이라 기대했지만, 1심 재판부는 부실하게 조사된 부산지방고용노동부의 결과와 목격자도 아닌 하청업체 관계자의 진술을 바탕으로만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판결은 3년 동안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자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안기는 결과였다”면서, “여전히 의심의 불씨를 남겨둔 채 2심 재판을 진행하게 된 지금 사법부가 더 이상 고인의 죽음을 모욕하는 결과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정순규 씨 아들 정석채(비오) 씨는 “경동건설과 하청이 고인을 욕되게 하고 수없이 재살인하고 명예훼손하고 사고를 은폐, 조작했다"며, "형사재판에서 강력한 처벌로 선례를 남기고 관련자들이 추가로 기소돼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이루는 것이 가족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확인한 경동건설 측 항소이유서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경동건설측은 항소이유서에 고인이 작업했던 아파트 옹벽 공사는 아파트 공사와는 별개이며, 하도급 계약 시 안전관리 비용을 이미 지급했고, 원청이 안전관리 감독 의무가 있다 해도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는 고인이라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썼다. 또 고인이 작업대를 연결해 주는 수직 사다리를 불안정한 행동으로 이용하다 실족한,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였다는 취지로 기술돼 있다.

이에 대해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 수직 사다리부터가 불법이다. 경동건설은 아버지가 안전을 잘 지키고 우수하다며 표창장까지 줬으면서 이제 와서 고인을 이리도 욕되게 하나”라면서, “전적으로 하청의 책임이니 경동건설은 잘못이 없다는 책임 전가가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치가 떨리도록 분노스럽다. 경동건설은 중대재해법이 무색하게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부실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동건설 엄벌촉구 릴레이 챌린지 참가자들. (사진 제공 = 정석채)

이 자리에서 김미숙 씨(김용균재단 이사장)는 “우리 나라 산재사망은 수십 년 동안 후진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제도가 재계와 권력층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면서, “시민들이 이제는 산재는 살인임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적 흐름을 재판부는 잊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족들은 재판부가 사망사고에 대한 경동건설의 책임을 인정했음에도 제대로 된 처벌은 안 하겠다는 부당한 판결에 억울해 미칠 지경”이라면서, “현행법을 적용한들 부당하게 자식 잃고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겠나. 항소에서 제대로 처벌돼야 재발을 막고, 고인은 명예회복과 안식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2심 재판부에 제출된 탄원에는 산재 피해자 가족, 시민사회, 노동계, 종교계 등 각계에서 2781명, 경동건설 엄벌촉구 릴레이 챌린지에는 400여 명과 건설 노동자 192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반복되는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엄중하게 법을 적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구조를 바꿔 나가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회 한국관구, 부산교구 가톨릭노동상담소와 정의평화위원회, 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과 김해 성당,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해운대 성당,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빈민사목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인천교구 노동사목부 등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번 2심 재판부에 제출된 자필 탄원서들. (자료 제공 = 정석채)
이번 2심 재판부에 제출된 자필 탄원서들. (자료 제공 = 정석채)

<탄원서에서>

“저희 아들 사건 재판에서 비일비재 일어나는 추락사가 언론에 관심을 끌 만큼의 사건이냐라고 유가족이 있는 자리에서 기자에게 물어보시던 판사님을 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사비를 줄이려고 하청에 하청에게 도급을 주는 원청에게 중대한 처벌이 있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제 아들 태규 또한 잘 다녀오겠다 출근했는데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제가 제 자식을 가슴에 묻으리라는 것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건설 일용직 산재 사망 김태규 씨 어머니 신현숙 씨

“그동안 공사현장의 사고들은 거의 본인 부주의로 처리돼 왔고,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으니 거듭되는 사고와 억울한 죽음들로 이어져 왔습니다. 어린 딸과 가족들이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상실감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성실하게 가족들을 위해 일하셨던 아빠를 향한 사측의 모욕과 불명예일 것입니다.... 고 정순규 님은 본인이 부주의해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닙니다. 안전설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사고는 줄어듭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원청에 책임을 물어야 억울한 죽음들이 줄어듭니다.”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 김진숙 씨

“저는 특히 사고 이후의 경동건설의 사건 해결을 위한 방식에 주시해 주시기를 탄원합니다, 자신들의 사업 현장에서 산재 사고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후 없던 그물망을 부랴부랴 설치하고 서류를 조작해 고인의 사망을 본인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라 주장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라면 산재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것과 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금호1가동 성당)

“매일 6-7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공사장과 공장, 거리 등에서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이 노동자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산재사망 사고는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안전을 무시한 기업의 무리한 공정률 강요와 실행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것은 기업이 법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었지만 돈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은 노동자는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공정에 의한 판결은 유가족들에게는 작은 위로가 됩니다. -이영훈 신부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장)

경동건설 하청노동자인 고 정순규 씨는 2019년 10월 30일 부산 문현동 경동 리인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숨졌다. 당시 고인의 작업장인 옹벽의 비계(작업대)에는 추락 방지 안전망과 난간대 등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고 당시 목격자, 주변 CCTV 등이 없고, 부산지방경찰청,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진단한 사고 원인도 각각 달라 정확한 사고 원인이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2021년 6월 16일 1심 재판부인 부산지방법원(서근찬 부장판사)은 사측이 노동자들이 작업을 위해 편의상 내부 계단이 아닌 안전 장치가 없는 사다리로 이동하도록 방치한 점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사고 발생 경위에 대한 목격자가 없다면서도 일부 피해자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1심 재판부는 원청인 경동건설 현장소장, 하청인 JM건설 이사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원청과 하청업체 법인에는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결심공판 구형량에 못 미치고, 사측의 관리감독자 지정서 위조와 비계 안쪽 추락 가능성 등 주요 사실이 공소사실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즉각 항소를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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