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획 1] 노동과 인권 - 불평등과 생명안전,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20대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각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 부적절한 발언, 유권자 편 가르기 등이 이어지면서 이번 선거가 구체 정책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시급한 목소리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각 분야 대표 활동가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한국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번 대선과 차기 정부가 꼭 챙겨야 할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기후위기와 농업, 노동과 인권, 주거 안정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들어봤습니다.

인간 존엄성을 말하는 후보는 누구?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물론 부당 해고와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권을 보장받기 힘든 플랫폼 노동이 크게 늘었다.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중대 재해도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노동 공약 없는 대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간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제도와 문화를 거듭 비판하면서, 해고 노동자와 연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양질의 노동과 기본소득, 안전한 노동 환경을 강조해 온 가톨릭교회 활동가들은 먼저 이번 대선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양성일 신부(인천교구 노동사목부 부국장)는 “그동안 우리가 치렀던 대선과 비교할 때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각 후보에 대한 고발과 폭로가 가득한 모습에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면서, “대선 국면이 두 명 후보에 집중돼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대해서도 국민을 이해시킬 정책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양 신부는 인간을 생산의 도구로 여기며 인간 존엄을 무시하는 산업 구조와 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 노동자의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과 노조 간 대립 구조에서 특히 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은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존엄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특별히 코로나가 아니라도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은 부당 해고와 불평등한 대우로 늘 불안함 속에서 지내고, 피라미드식 하청 구조는 수많은 노동자를 산업재해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규모 건설 현장. “무고한 죽음을 막고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 ⓒ김수나 기자
서울의 한 대규모 건설 현장. “무고한 죽음을 막고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 ⓒ김수나 기자

또 이번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5인 미만 작업장 노동자들과 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등 “미완성의 법안”이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2퍼센트도 안 된다. 전체 사업장의 80퍼센트에 이르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98퍼센트에 달하는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미만 공사장은 2년 뒤부터 적용되는 등 입법 과정에서 이미 ‘누더기’ 법률이 됐다.

산재 사망도 계속되고 법률 자체에 구멍이 많은 만큼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임에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직접 언급 대신 경제 규제 완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양성일 신부는 대선 후보들의 노동 정책과 방향을 짚어볼 때는 “전체적으로 인간의 존엄함을 확인할 수 있는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인가”, “무고한 죽음을 막고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인가”를 중심에 두자고 제안했다.

그는 사람이 노동으로 존엄성을 드러내고, 자기완성을 이루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대선 후보들의 말과 공약이 약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준비된 공약과 정책인지, 반대로 기업 중심인지에 귀를 귀울이자”고 말했다.

한편 양 신부는 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 앞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때인데도 “대선 후보들의 행보는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코앞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문제를 해결할 정책과 공약이 준비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 고 정순규 씨가 일하던 비계. 추락을 막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내부 난간대, 보호망 등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사진 제공 = 정석채)<br>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 고 정순규 씨가 일하던 비계. 추락을 막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내부 난간대, 보호망 등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사진 제공 = 정석채)

“대통령 누가 돼도 기득권 편, 희망보단 두렵다”
기업의 악행은 왜 계속되는가

2019년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떨어져 숨진 경동건설 하청노동자 정순규 씨(미카엘)의 아들 정석채 씨(비오)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정책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석채 씨는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기득권 앞에 또다시 기업 편을 들어줄 것이 빤하다”면서 “수많은 유가족의 피눈물과 단식 농성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특정 유력 후보들은 이 법이 투자 의욕을 없앤다고 폐지를 거론하고 있어, 사실 유족으로서 희망적이기보다 두렵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노동부와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기업 편에 서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안전관리 감독을 전혀 하지 않고, 산재사망이 일어나면 건설사가 제출한 ‘산업재해조사표’만으로 조사를 끝내기 때문에 원청, 하청 가해자들과 똑같은 공범”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재사망은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건설 현장에서의 죽음도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데도, “광주 아이파크 참사처럼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단계 하청과 최소의 장비를 쓰고 줄어든 공사비만큼 위험은 늘고, 기업은 이윤을 남긴다”면서 “그 결과 누군가의 가족들이 계속 죽고, 유가족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산다”고 말했다.

이어 “거짓이더라도 한국전력은 66일 만에 사죄하고, 현대산업개발은 반성하며 대표가 물러났는데, 경동건설은 또다시 안전을 지키지 않고 보란 듯 여기저기 공사하고 있다”면서, “현대 아이파크 붕괴 참사 즈음 해운대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거푸집이 터져 쏟아진 콘크리트로 시민이 크게 다치는 등 악행이 계속되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명을 앗아가는 참사의 반복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하는 이유다.

그는 산재 발생 전 5년간 안전보건 의무를 경영 책임자가 위반한 경우가 있다면 그 책임을 먼저 묻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과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담당 공무원 처벌 조항이 꼭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11일 위층들이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모습. ⓒ이상선
지난 1월 11일 일부가 무너져 내린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모습. ⓒ이상선

누가 평등의 편에 서겠다 선언하는가?
차별금지법, 정권의 인권 감수성 지표
죽지 않고 일할 권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관심은 크지 않고 정책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분위기다. 동성애 옹호법으로 오인돼 그리스도교계 일부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가톨릭도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조항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생명윤리 관련 위원회들이 반대 입장을 공식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노동, 외모, 혼인 여부, 임신과 출산, 가족 상황, 병력이나 건강 상태, 공공서비스 등 생활과 밀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영역에서 비합리적 혐오와 차별을 막고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말 그대로 차별을 막는 법안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여론과 교계의 반대에서 혼란이 있는 가운데, 대선 이슈로 챙겨야 할 점은 무엇일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장예정 씨(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대선에서 종교계라 자임하며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이들의 패악에 누가 귀를 기울이는가 ▲누가 그 패악에 맞서 평등의 편에 서겠다 선언하는가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자고 권했다.

그는 먼저 이번 대선이 “정책이 실종된 대선”이고, 인권정책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이 각 후보자가 만들고자 하는 정권의 인권 감수성을 평가할 거의 유일한 지표”라는 것이다.

장예정 씨는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 해도, 실제로는 차별금지법이 입법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입법이나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사실상 후보들이 차별금지법을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성소수자 이슈 때문이므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이 후보자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반인권적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에 걸린 팻말. ⓒ배선영 기자<br>
지난해 11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장에 걸린 팻말. ⓒ배선영 기자

또 장예정 씨는 차별금지법이 자유라는 이슈와 함께 언급되기도 하는데, “기업에서 노동자를 차별할 권리, 차별적 노동 환경에서 참고 일하라는 압박을 자유라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며, “차별금지법은 노동자들이 성희롱당하지 않고 차별적 괴롭힘을 당하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이 사회에서 확인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작은 걸음을 뗐다”면서 “이제 모든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등의 기준 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확인했다면 이제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 역시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이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 역시 모두와 동등한 인권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국가의 선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시민이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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