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요구안에 “입장 없다” 일관
가족 및 시민사회단체들 본사 앞 노숙 농성 시작

고 이동우 씨(38살)는 동국제강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지난 3월 21일 오전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천정크레인에 올라 보수 작업을 하던 중, 천정크레인과 케이블릴(크레인 위 회전체)이 갑자기 작동되면서 그에 연결된 안전벨트에 압박되는 사고를 당했고 병원으로 가던 중 숨졌다.

이동우 씨가 숨진 지 30일이 지난 오늘까지 동국제강은 사고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유가족의 요구안에도 입장이 없다는 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동우 씨 가족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19일 서울 동국제강 본사 앞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유족과 연대 단체들은 ▲동국제강 경영책임자인 장세욱 대표이사의 공개 사과 ▲고 이동우 씨 사망의 구조적 원인 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그 내용을 유족에 공개 ▲고용노동부, 검찰 등 수사 당국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 위반 사항 철저 수사 및 엄정 처벌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따른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19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숙 농성 시작을 알리며 요구안에 대한 사측의 답변을 촉구했다.

이날 유족 등은 “임신 3개월이 된 고인의 아내와 부모는 믿기지 않는 고인의 죽음에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동국제강의 책임 있는 답변과 해결책을 기다렸지만, 동국제강은 변호사를 앞세워 턱없이 부족한 보상액과 회사와 임직원들의 면책만을 앞세운 합의 초안을 보내온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또 유족 요구안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밝혀 달라는 거듭된 요구와 “(이를) 대표이사에게 전달하고 검토할 시간을 주었음에도 기껏 유족의 입장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나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회사 협의대표들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과 크레인 보수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창우이엠씨는 사고 뒤 7일이 지나도록 유족에게 정식 협의나 합의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유족과 연대 단체들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공개사과와 해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동국제강 고 이동우 씨 유족, 연대단체들)
지난 13일 유족과 연대 단체들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공개사과와 해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동국제강 고 이동우 씨 유족, 연대단체들)

이에 고 이동우 씨 어머니가 대구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관리과에 항의했고, 그다음 날이자 사고 8일 만인 3월 29일 동국제강 공동 대표이사인 김연극 사장이 장례식장을 찾아와 유족이 사측 변호사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측이 변호사를 통해 유족에게 전달한 합의안에는 유족이 요구하는 사항이 들어 있지 않았다. 이에 유족은 거듭 요구안을 전달하며 회사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으나 응답이 없자 고인의 영정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들은 13일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유족의 요구안이 담긴 입장문을 사측에 전달하고 다음 날부터 오전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이어 18일 유족의 요구로 본사에서 열린 협의 자리에서 사측을 대표한 동국제강 협력동반실장(상무), 포항공장 관리담당이사, 하청업체 대표이사는 “수사 결과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지겠다, 유족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입장이 없다, 포항에서 만나 이야기하자”라고 밝히면서 합의는 결렬됐다.

이날 회사는 유족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 보고자 한다는 말만 반복했고, 정작 유족이 이미 명확하게 요구한 사항에 대한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동국제강은 2021년 기준 연결 매출액이 7조 2000억 원, 연결 당기순이익은 5500억 원으로 국내 3대 철강업체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은 상시 노동자 수가 459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기업이다.

지난 13일 유족과 연대 단체들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공개사과와 해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동국제강 &nbsp;고 이동우 씨 유족, 연대단체들)<br>
지난 13일 유족과 연대 단체들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공개사과와 해결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동국제강  고 이동우 씨 유족, 연대단체들)

현재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해결 촉구 유족과 지원모임(이하 지원모임)에는 천주교 남자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 위원회, 천주교 예수회 JPIC 등 61개 시민사회, 종교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김종화 신부(작은형제회, 남장 정평환위)는 시민사회, 종교인들에게 고 이동우 씨 분향소를 찾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김 신부는 일터에서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재발 방지 대책은 물론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후위기, 산재사망, 차별금지법은 모두 생명과 안전, 인권에 대한 강조”라면서, “사람 목숨이 기계부속품처럼 버려져도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생명과 안전, 인권이 가장 우선돼야 하고 시민사회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종교인들이 적극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지원모임은 사고 당시 동국제강은 도급인으로서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자나 안전담당자를 입회시키지 않았고, 작업계획 및 안전작업허가서에 따라 작업자 배치와 작업이 이뤄졌는지 여부, 천장크레인 작업자 배치에 앞서 천장크레인의 전원이 차단됐는지 여부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13일 기자회견에서 동국제강은 2019년 이후 매년 사망사고가 반복해 일어나는 사업장인데도, 사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 문제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의식해 대형 로펌을 선임해 책임을 피하려는 데 역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성의와 시간 끌기로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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