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영성 따라 배우기-11] 가난에 대한 영적 감각

가톨릭 일꾼들은 교회의 평신도로서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소명에 대하여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계발하고 있다. 우리는 들판과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면서 새로운 동료 일꾼들을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긴 외로움에서 도로시 데이는 일꾼들의 소명을 ‘사도적 부르심’으로 해석하였다. “교회가 선교사들을 통해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도회지와 마을로 들어가듯이, 우리 역시 세상으로 가고 있다. [...]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소유, 곧 그들의 인간 존엄성까지 벌거벗겨진 실업자, 아픈 사람들, 고용 불가능한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자발적 가난으로 가난한 이들의 열망 나누어 가진다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가난을 나누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영의 가난은 물질적인 무소유를 전제로 하며, 오로지 자발적인 가난만이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실제로 가난한 사람과 일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자발적 가난을 통하여 그들의 궁핍, 그들의 삶의 조건, 그들의 생활, 고통과 열망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런 ‘가난의’ 광경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조직가들을 돕는 것, 구제를 위해 당신이 소유한 것을 주는 것, 당신자신이 자발적 가난의 생활을 서약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과 그들의 고통 역시 나누어야 한다.”

도로시 데이의 이해에 따르면, 오직 이런 종류의 근원적 자기 비움이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시킬 수 있고,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수난을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만든다.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 한가운데에 머무르시는 하느님 현존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가난한 이들을 통해 자기를 비우고 서로 나눔으로써 오히려 풍성해지는 사랑의 '비움의 신비'가 드러난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

한편 그리스도는 이 가난한 이들 가운데 현존하시는데, 이들의 불결함과 불유쾌함 안에서 우리는 모욕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모욕당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곧 가톨릭일꾼들에게 성체성사에 관하여 성찰하게 만든다. 전례 안에서 쪼개지고 부서지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들 속에서 모욕당한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일꾼들이 그날 내내 만나는 얼굴들 속에서 그분의 베일에 싸인 현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도로시 데이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러한 말씀을 듣고 간직한다. “이것은 너를 위해 부서진 나의 몸이다. 그 보답으로 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 너는 너의 몸을 나에게 주겠느냐? 이것은 너를 위해 흘린 나의 피다. 이제 너는 너의 피를 나를 위해 흘리겠느냐?”

약함마저 은총이 된다

도로시 데이는 활동 중에 부서지고 모욕당함으로써 그리스도를 경험한다. 때때로 환대의 집은 배급량이 부족하였다. 가끔 사소한 싸움들이 집과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함과 약함마저도 은총이 된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우리는 계속 하느님께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시 데이가 늘 기도하듯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주님께 나를 도와 달라고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도울 수 없으니까요.”

도로시 데이는 그리스도가 궁핍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믿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과 자신을 일치시키고자 하는데, 그들의 배고픔이 명백히 그녀의 것이고, 그들의 헐벗음이 그녀의 것이고, 그들의 타락과 수치가 그녀의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도로시 데이는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육화에 참여한다. 묵상이 하느님과의 일치라면, 사랑을 통해 이렇게 가난한 이들의 취약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자신을 버리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에게로 또한 들어가는 것이다.

실패를 기념하는 삶

그리고 이러한 삶은 실패를 기념하는 삶이기도 하다. 2003년 5월 1일, 가톨릭일꾼운동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되었는데, 이날 댄 베리간 신부는 강론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기념해야 한다”는 시저 샤베즈의 말을 인용하였다. 가톨릭일꾼운동은 도로시 데이와 함께 70년 이상을 참으로 실패를 기념하는 방향으로 하느님과 더불어 여정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늘 주류사회와 제도교회의 반대에 직면해야 하는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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