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영성 따라 배우기-6 ] 하느님의 자비 실천, 환대의 집

▲도로시 데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선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으로서 의식주, 신분 선택의 자유, 가정 형성의 권리, 교육과 노동에 대한 권리, 명예와 존경에 대한 권리, 정당한 보도를 들을 권리, 자기 양심의 바른 규범에 따라 행동할 권리, 사생활을 수호할 권리, 종교적 분야를 포함한 정당한 자유를 누릴 권리 등이 포함된다. 결국 사회질서와 사회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복지’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공의회는 말한다.

즉, 사회질서가 “진리에 바탕을 두고 정의 위에 건설되어 사랑으로 활기를 띠어야” 하는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의회는 정신의 쇄신과 광범한 사회변혁을 요청한다. 그러나 교회는 공동선이 사회적으로 관철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며 당장의 긴급한 사랑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의회는 실제적이고 긴급한 결론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각 사람은 이웃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과,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야 한다. 가난한 라자로를 조금도 돌보지 않았던 부자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현대에서는 우리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이웃이 되어 주고 누구를 만나든지 적극적으로 봉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노인, 불의하게 천대받는 외국인 노동자, 피난민, 불법혼인에서 태어난 부모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고생하는 사생아,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우리 양심을 재촉하는 굶주린 사람들,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다”(현대세계의 사목헌장, 27항).

이러한 애덕의 의무를 피터 모린은 '호스피스'라는 오래된 전통에서 찾아내었다.

고대 교회에서 암브로시오와 요한 크리소스토모 등의 교부들은 교구청의 집기들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도왔으며, 교구마다 나그네들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었다. 이는 익숙한 얼굴들을 맞이하는 파티가 아니라, 불청객을 기꺼이 맞이하는 정신이며, 애덕을 위한 오래된 환대의 기풍을 다시 살리는 일이었다. ‘환대의 집’은 가난한 이, 병든 이, 고아, 노인, 여행자, 순례자 그 밖의 여러 종류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이 집은 “내가 낯선 사람이었을 때 네가 받아들였다”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피터가 보기에 ‘환대의 집’은 따뜻한 안식처 노릇을 할 수 있으며, 독서실과 직업훈련을 제공할 수 있고 기도와 토론과 공부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교구에서 그런 집을 후원해야 하고 교구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친구만을 환영하고, 낯선 이를 돌보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반대하였다. 사랑과 애덕의 일은 모두가 해야 할 일이며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겨야 한다. 어느 집이나 하느님의 대사를 받아들일 ‘그리스도의 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낯선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그리스도가 말씀하셨다.

환대의 집에는 항상 따뜻한 커피와 수프와 빵이 준비되어 있어 누구든지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소문이 퍼져, 1936년엔 수백 명의 사람이 도로시의 집 앞에 줄을 섰다. 가톨릭교회에서 세운 다른 많은 단체들과 달리 ‘가톨릭일꾼의 집’에선 아무도 설교를 하지 않았다. 다만 벽에 걸린 십자고상만이 일꾼들의 신앙의 유일한 표시였다.

자원 봉사자인 일꾼들은 숙식과 가끔 용돈 정도만 제공받고 월급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뉴욕에서 처음 환대의 집을 연 이후 10년 만에 30채 이상으로 환대의 집이 늘어났는데, 각각의 집들은 뉴욕 본부와 관계를 맺으면서 신문을 통해 함께 준수해야할 원칙을 천명하면서, 환경과 필요에 따라서 나름의 조직과 방식을 채택하여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환대의 집과 같은 일꾼의 집은 무정부적 경향이 있어서 단속과 제한, 규칙을 철저히 거부했으며, 온갖 배경을 갖고 있는 개인들에 대하여 너그러웠다. 이 공동체에선 구성원의 개인적, 이념적 대립을 세심하게 감싸 안으며 그들에게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한 식구로 맞아들였다.

도로시 데이는 항상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도록 격려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환대의 집’에 와서 감명을 받고 다시 학교나 일터로 돌아갔지만 나름대로 도우려는 결심을 갖고 돌아갔다. 어떤 이들은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는데, 주로 음식을 준비하거나 나누고 옷을 분배하는 일을 한다. 어떤 자원봉사자들은 더 가까워져서 가톨릭일꾼 공동체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섬김, 기도, 그리고 성찰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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