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영성 따라 배우기-4 : 가톨릭일꾼운동의 사회적 비전]

교회는 어머니다운 배려로 세상을 품어야

▲피터 모린
교종 요한 23세는 1961년에 <어머니와 교사>를 발표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앞두고 교회가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근본태도의 변화를 촉구했다. 한마디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안으라는 전갈이다.

“교회는 어머니다운 배려로써 개개인과 민족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그 드높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언제나 최대한 존중하여 왔고 이를 철저하게 수호하여 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이다. 인간 전체 곧 영혼과 육체, 지성과 의지 등 전인을 다 포용하는 그 가르침은 인간 정신을 이 변화하는 실존상황으로부터 언젠가는 끝없는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될 천상 생활의 영역으로 들어 높이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영혼을 성화하여 천상 은총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또한 인간의 일상생활의 욕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생계나 교육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이든 그 어떠한 것이든 인간의 모든 복지와 번영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어머니와 교사, 2-3항).

교종은 이어 그리스도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시고 또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실 때 그분은 먼저 인간의 영원한 구원을 두고 말씀하셨으나, 굶주린 군중들을 둘러보시고 불쌍히 여겨 “군중이 측은하다”고 탄식하실 때에는 인간의 지상적 요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신 것이며, 하느님이신 구세주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런 관심을 표명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옛날의 집사 직무에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2천년 동안 그 가르침만이 아니라 탁월한 표양으로써 끊임없이 사랑의 횃불을 드높이 밝혀왔던 것”(어머니와 교사, 6항 참조)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교종 요한 23세는 교회가 이러한 길을 따라서 굳건한 마음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로 나아가라고 부추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평화의 나라”(어머니와 교사, 261항 참조)라는 것이다.

노동과 애덕의 삶을 바탕에 두는 가톨릭운동

가톨릭 본질주의자(radicalist)였던 피터 모린은 복음서와 성인들의 삶, 그리고 교종 회칙 등에 근거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기 위한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피터 모린이 제안하고 도로시 데이가 실천으로 옮긴 가톨릭일꾼운동은 노동과 애덕의 삶을 바탕에 두는 운동이었다.

노동하는 남성과 여성을 강조하였으며, 노동이란 한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풀어가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 안전장치라고 믿었다. 또한 매일의 애덕실천을 강조하였는데, 애덕실천은 가톨릭일꾼운동이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수단이며, 가족의 범위를 이웃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당장의 필요에 먼저 응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일꾼운동의 프로그램은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을 먹이며 입히고 있을 곳을 마련해주는 환대의 집이나 농촌경작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불의한 사회질서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로할 뿐 아니라 불의한 질서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혼란스럽게 갈라진 세계에 평화, 질서, 그리고 정의를 가져오기 위하여 도로시와 피터는 기도, 손노동, 공동체의 단순한 생활방식, 환대, 공부와 전례를 제안하였다. 이 두 사람은 아일랜드의 수도승들과 초기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이 영적 투쟁을 통해 중세기 암흑시대를 구했던 것처럼 현시대의 어둠에 빛을 가져오기 위하여 똑같은 혁명적인 방법들로써 새로운 사회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두고 피터 모린은 푸른 혁명(Green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피터 모린의 푸른혁명 프로젝트

▲Illustration by Catholic Worker /artist Ade Bethune.
피터 모린은 자본주의를 경멸하면서도 역사법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지배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신념, 이른바 산업주의와 진보에 대한 견해를 불신했다. 오히려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란 폐지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이 기계부속처럼 일하고 모두 공장 굴뚝만 바라보는 산업사회 역시 해체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대신에 그 자리에 도시와 농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분산화 된 경제체제가 들어서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견해는 중세시대의 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경신(敬神, Cult), 경문(敬文, Culture), 경작(耕作, Cultivation)의 종합을 이상으로 삼았다.

피터 모린은 강제가 없이 협동하는 사회, 공예가와 장인들이 스스로 조그만 공장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꿈꾸었다. 농경공동체에서 학자와 노동자가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생각하는 ‘노동자-학자의 융합’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평만 하고 고발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선해지기 쉬운 사회를 ‘낡은 사회의 껍질 안쪽’에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다.

피터는 이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객관적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계명이 우리 앞에 있으므로 우리는 다만 이 말씀에 살을 붙이고 복음을 곧바로 실천에 옮김으로써 지금 여기서부터 행동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피터 모린이 제안한 3단계 프로그램은 ①사고의 명료화를 위한 원탁 토론 ②애덕 실천을 위한 환대의 집 운영 ③노동자가 학자도 될 수 있고 학자도 노동자가 될 수 있는 농경공동체의 건립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선전하는 급진적인 가톨릭 신문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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