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관련 단체,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 기본권 보장하라

“의료보험 없어 병원비로 한 달 소득에 달하는 돈 부담해 밥 굶기도....”
“신분증명이 안 돼 봉사활동 사이트 가입 불가, 내신에 필요한 봉사실적 못 채워....”
“불법체류자 수를 줄인다며 국적국 정부도 출생등록을 거부, 아이는 무국적 상태”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생이 되도록 살았지만, 국적이 없거나 출생등록조차 되지 못한 아동, 청소년이 있는 미등록 이주 가정의 피해사례다.

부모가 미등록 체류, 이른바 불법체류 상태면 아이를 낳아도 출생등록을 할 수 없고 아이의 체류 자격도 얻을 수 없다. 미등록 장기 체류 이주 아동, 청소년은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받을 권리’는 물론 기본적인 교육권과 건강권도 침해받는다. 

“정부는 모든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8일 이주배경아동청소년 기본권보호 네트워크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마땅히 보호가 필요한 이주 아동, 청소년들이 미등록 체류라는 이유로 각종 사회, 교육복지에서 배제되고 있다”면서 “(이는)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 및 미등록 이주 부모, 청소년 등은 이날 “정부가 모든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교육권과 건강권을 유엔아동권협약과 헌법에 근거해 보장하고, 전체 재난 위기 대책에서 이들을 배제하지 말라”고 촉구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이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내용은 “국내 장기 미등록 체류자와 국내에서 태어난 그들 자녀에 체류자격 부여 방안 마련(법무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보장과 신분증명 및 체류자격 부재로 인한 교육권 침해 즉각 시정(교육부)”,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의료급여 수급권자 포함 등 건강권 보장 방안 마련(보건복지부)”을 각 부처에 권고해 달라는 것이다.

이날 이진혜 변호사(이주배경아동청소년 기본권보호 네트워크)는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과 관련된 정부 정책에서 “출생등록을 통한 법적 신분 인정 및 권리 부여와 안전하게 체류할 수 있는 제도가 없고, 초중고교 입학조차도 학교장 재량에 달린 점, 비싼 병원비로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는 등 아동의 건강권이 완전히 배제된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특히 이 변호사는 “출생등록도 못 한 채 한국에서 살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나라에도 한 번 가본 적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들은 부모 국적의 대사관에서도 국적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출생등록 제도가 없어 이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만큼 정부는 국적에 상관없이 출생등록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등록 이주 아동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수나 기자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남들처럼 못해 억울하고 답답”
“법적 정체성 없지만, 생각과 마음은 한국인, 인간 존엄성 지켜 달라”

이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 이주 청소년은 “학교 진학, 건강보험, 취업 등 남들처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면서 “문제가 해결돼 생전 밟아 본 적 없는 부모님의 고향이 아닌 제가 자라온 환경에서 살면서 남들과 똑같은 혜택으로 취업해 사회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한국에서 낳아 현재 초등학교 4학년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아이가 6살 때 크게 다쳐 대형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가 의료보험이 없어 7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내야 했던 경험을 말하며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비자,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고, 정체성이 없는 미등록 체류자가 됐지만, 생각과 마음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복지센터 덕분에 학교에 다니지만, 등록번호가 없어 학교 성적표를 발급받을 수 없고, 대학에도 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2018년 청주지방법원에서 추방 취소 판결을 받은 학생은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지금 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 판결은 인간 존엄성을 지킨 것으로 우리 아이나 여기서 태어난 다른 아이들도 학업을 계속하고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청주지방법원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등록 상태로 장기 체류한 이주 청소년에 대한 법무부의 강제퇴거 명령을 취소했다. 그 이유로 “원고가 대한민국의 언어, 풍습, 문화, 생활환경 등에서 그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기반은 오로지 대한민국에만 형성돼 있는 점, 국적국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원고의 불법 체류 상태가 그의 귀책 사유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닌 점” 등을 들었다.

2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 기본권보호 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경기도이주아동보육네트워크가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입학 거절, 자격증 응시 및 봉사포털 가입 불가 등 각종 교육권 침해
“등록번호 없어 등교 때마다 열 감지 오류.... 아이들 사이서 낙인”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 김미선 상임이사에 따르면, 미등록 아동, 청소년은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닐 수 없거나 다니더라도 고액을 내야 하고, 초중고교 입학 시 입학 거절을 당하거나, 수학여행 보험가입, 각종 자격증 시험 응시, 자원봉사 포털 가입, 아르바이트 구하기 등이 불가능하다.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비싼 의료비를 내야 하거나 진료비 부담으로 아예 병원 이용을 포기하는 등 이들의 건강권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스크 구매, 재난지원금, 아동돌봄지원금, 교복지원금 등 모든 재난 지원에서 배제됐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보건소가 진료를 중단되고 선별진료소가 되면서 미등록 아동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영유아필수예방접종 17종, 독감백신 접종조차도 일반 병, 의원에서 유료로 이용하는 실정이다.

‘아시아의 창’ 이영아 소장은 “코로나로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자동 열 감지 시스템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은 등록번호가 없어 항상 오류가 난다. 이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이미 낙인찍기가 진행”됐고, “아동학대 피해로 신고됐지만 출생등록이 안 돼 있어 어느 쉼터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생등록은 가장 기본적 권리로 모든 상황에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돼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으로서 정부가 책임 있게 답해야 하며, 국가인권위도 실태 조사를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자회견문 발표에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고기복 운영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체류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최소한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 아동, 청소년의 존재를 규범적, 정책적, 관행적으로 외면해 왔다”면서 “아동, 청소년의 생존과 건강한 발달을 위한 노력은 전 인류가 부담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이며 (이는) ‘아동 청소년의 등록’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연 이주배경아동청소년 기본권보호 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경기도이주아동보육네트워크는 각각 이주민 관련 인권, 사회, 종교단체의 연합체로 모두 48개 단체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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