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단체, “안전에는 이주민과 내국인이 따로 없다”

코로나19 관련 각종 지원정책에서 난민, 이주민이 배제되고 있다.

20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하루 앞두고 열린 “코로나가 드러내는 인종차별의 민낯 증언대회”에서는 코로나19 대거 확산 과정에서 중국인과 중국동포 혐오여론, 난민과 이주노동자가 겪는 정책적 배제와 차별이 논의됐다.

이날 증언대회는 난민, 이주민 인권 관련 단체들이 예정됐던 집회와 행진 대신 마련됐으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인권연대,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 주관하고, 천주교 의정부EXODUS,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지원했다.

이들은 먼저 코로나19와 관련된 중국인, 중국동포 혐오의 실태를 짚고, 난민과 이주민의 공적 마스크 구입 배제, 코로나19 방역 관련 정보 제한, 빈곤 확산 등 난민, 이주민이 겪는 어려움이 정부의 방역정책이 지닌 배제와 차별을 지적했다.

먼저 이주민센터 친구 이제호 변호사가 지난 1월 일부 언론의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로 시작된 중국인과 중국동포 등 서울 대림동 일대에서 확산된 혐오여론에 대해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비공개 간담회에 참여한 구로구, 영등포구의 중국동포단체, 지역주민 활동가, 중국동포 주민, 교사 등이 나눈 실태를 공개했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즐겨 찾던 식당을 더 이상 나갈 수 없다.”, “특별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채 일하던 곳에서 이제 그만 나오라고....”, “지역사회에서도 우리를 고위험군 취급한다.”

그는 “한 번 퍼진 혐오와 차별, 근거 없는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 아이들에게 이런 혐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중국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급식을 먹는 것도 불안하다”, “중국인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면 우리 아이는 보내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들은 SNS에서 “중국으로 돌아가, 너 코로나니까 위험해”라거나 “짱개, 다문화” 대신 “코로나”라는 말로 친구를 놀린다.

이 변호사는 “간담회 자리가 혐오, 차별, 부당대우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오히려 우리(중국 출신자)는 해악을 끼치지 않고 바이러스도 아니라는 사실과 이 사회에 협조”함을 역설하면서 “자녀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차별을 걱정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20일 이주민 인권단체들이 코로나19 대책에서 이주민, 난민 차별 실태를 밝히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다음으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코로나19로 차별을 경험한 이주노동자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다국어로 정확한 정보 제공”, “마스크 지원”, “사업장에 노동자 감금 금지”, “자진출국 노동자의 권리 구제”, “혐오와 차별 중단”을 촉구했다.

그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마스크를 차별적으로 지급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파주의 한 탈수필터 공장은 한국인 노동자에게는 2일에 1개, 이주노동자에게는 일주일에 1개를 지급했다. 서울 금천의 한 회사는 한국인에게만 마스크를 지급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건강보험 미가입자는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어 이주노동자 가운데 미등록자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지만 일터에서조차도 차별적으로 지급되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 명으로 이 가운데 미등록자 39만 명, 단기 체류자와 관광통과 46만 명, 건강보험 가입이 유예된 유학생 10만 명은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다. 이주노동자는 등록, 미등록을 합쳐 100만 명 정도다.

2018년 12월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등록을 한 이주민의 40퍼센트도 국민건강보험 미가입자다.

또 1달에서 2달 동안 외출금지로 공장에 갇혀 있거나 언어장벽으로 인해 방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19 방역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한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면서 살고 있다. 이들의 소중한 생명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 정책에 너무나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집단감염으로 주민센터가 마스크 배포 때 가족 중 며느리인 결혼이주여성만 못 받아....시어머니가 항의"

이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는 이주여성들에게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정보는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변경된 출입국, 체류 절차, 마스크 구입방법, 학교개학 연기 등 생활과 밀접한 새로운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보가 정확하게 제공되려면, 현재 대부분 한국어, 일부 영어와 중국어로 제공되는 정부 공식 발표가 다양한 언어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주여성이 정보 제공에서 소외되는 문제와 더불어 이주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마스크와 각종 지원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대구 집단감염 때 일부 주민센터가 각 가정에 마스크를 나눠 줄 때 외국인은 포함하지 않아, 결혼 이주여성이 배제됐던 것, 가족돌봄 휴가 지원금 제도에서 외국인과 관련된 안내가 전혀 없는 점, 몽골 출신 미등록 여성이 약국에서 마스크 1개를 1만 2000원에 구입한 것 등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일본이 마스크 배부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이 문제가 됐는데, 만약 한국이라면 어떨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미등록자도 무료로 치료한다고 하면서도 예방 차원인 마스크 지원은 안 되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3월, 공적 마스크 구입으로 약국 앞에서 길게 줄 서고 있는 사람들 모습. 이주민들은 이러한 정보 제공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배선영 기자

“마스크보다 기저귀가 필요해요”
“공장이 문 닫았어요. 지난달 월급도 못 받았어요”
“알바가 없어졌어요. 당장 이 달 월세를 낼 수 없어요”

난민(신청자)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도 마찬가지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김영아 대표는 “글로벌 팬데믹이 선언된 상황에서 난민이 배제되면 안 된다는 것을 공감하는 추세”이지만, “유럽에서는 난민과 이주민이 코로나19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여론이 형성돼, 한국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혐오우려에 더해 코로나19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쉼터, 무료진료소, 아동센터, 이주민센터 등 민간시민단체 시설 운영과 내담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에서 제도적 공백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김 대표는 생존을 위한 기초적 처우를 거의 민간에 의지했던 난민들은 생계, 의료, 돌봄 등 전반에서 위기에 처했다며, “사회적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소수자의 인권이 후순위로 치부되선 안 되며,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한 방역 계획에서 사회구성원인 난민과 이주민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고기복 대표는 “건강보험 가입 여부에 따른 마스크 보급 대책은 국내 이주민의 최소 절반 이상을 배제시켜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여지”가 있다며 이는 “지역사회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 있고, 국민정서를 핑계로 이주민을 배제한다면 이는 합리적 차별과도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한편 1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코로나19 마스크 수급 안정화대책에서 유학생,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주노동자 등 백만 명에 가까운 이주민이 배제되면서 이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보호받지 못했다며,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소외되는 사람 없는 마스크 보급 대책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또 20일 난민, 이주민 인권 단체들도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 공동성명서를 통해 “안전에는 이주민과 내국인이 따로 없다. 모두의 안전만 있을 뿐”이라며 이주민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 소외, 공적 마스크 구매 대상 제외, 이주민을 잠재적 위험으로 조장하는 ‘외국인 숙박신고제’를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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