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언어로 백신 예약 안내 해야
"이주노동자 방역취약대상이라면서 정보 불평등, 의료 접근 문제 해소 안 해"

이주인권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있어 이주민을 차별할 여지가 있다며 방역 당국에 사전 예방 조치를 촉구했다.

22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 이주인권단체들이 공동의견서를 내고, 나라별 언어로 백신 예방접종을 안내하는 등 “이주민 건강이 공동체 건강임을 직시해 백신 접종에 어떠한 차별이나 소외, 배제가 발생하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이주민들은 마스크 배분 정책, 재난지원금 배분에도 차별과 소외를 경험했고, 외국인만을 특정한 각 지자체의 코로나 진단 감사 행정명령은 방역 효과와 상관없이 이주노동자 혐오만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감역 취약 집단에 대해 여전히 현실성 없는 방역 대책이 난무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 20일 발표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에 이주노동자 밀집 사업장 등 방역 취약 사업장은 지자체에서 PCR 검사(코로나19 음성 여부 판정을 위한 유전자증폭검사)를 하도록 했는데, 이주인권단체들은 이 지침이 “외국인만을 특정해 진단검사를 받게 했던 차별적 행정명령이 반복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오히려 자가진단키트 배분 등을 통해 방역 취약 사업장 이주노동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더 현실적”이라고 했다.

22일 이주인권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있어 이주민을 차별할 여지가 있다며 방역 당국에 사전 예방 조치를 촉구하는 공동의견서를 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br>
22일 이주인권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있어 이주민을 차별할 여지가 있다며 방역 당국에 사전 예방 조치를 촉구하는 공동의견서를 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단체들은 그간 상담을 통해 이주민 백신 접종 시 발생할 문제점을 예견해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사전에 예방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우선 최소한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한 16개 나라 언어는 기본이고, 더 다양한 언어로 코로나19 정보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은 관련 지원단체 등을 통한 부분적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주민 대상 Q&A와 언어별 문진표가 준비돼야 하고,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도 다국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했다.

또한 이들은 “백신 접종 이주민 담당자를 지정해야 한다”며, 60대 이상의 한 이주민이 한국어가 서툴러 통역이 동행하려 했으나 보건소에서 거부당한 사례를 들었다. 다른 사례로는 민원상담 콜센터는 60대 이상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보건소에서 관리번호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으나, 보건소에서는 예약이 끝났다며 추후 예약을 위한 관리번호 부여를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농촌 이주노동자는 월 2회 토요일에 쉬어,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평일에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다. 선원이 도서 지역 노동자들도 백신에 접근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접종 후 휴식과 증상 발열 시 대응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라며, “고용주에게 접종에 따른 혜택을 주거나 접종 휴무를 강제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지원단체 시설을 활용한 출장 접종, 농어촌 거주자를 위한 이동식 접종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미등록 이주민이라며, “핸드폰 본인 인증이 불가능한 미등록자들은 보건소에서 관리번호를 받아야만 예약이 가능한데, 신분 노출을 꺼리고 이동이 자유롭지 않기에 다른 방식으로 접종 예약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등록자에게 접근하기 쉬운 지원단체 등을 통해 (대리)예약과 접종이 가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들은 “지원단체 활동가들이 취약집단으로 분류되는 이주노동자 다중이용시설 종사자인데도 우선 접종 대상에서 배제되는 모순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를 방역취약대상이라고 하면서도 정보 불평등과 의료 접근권 문제를 해소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차별은 방역에 사각지대를 만들고 공동체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동의견서에는 20여 개 단체가 속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20여 개 단체가 함께하는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대구경북지역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속한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국경북연대회의’ 등이 참여했다. 천주교에서는 의정부EXODUS가 외노협 회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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