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이탁건 변호사]

이 글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웹진 <인연>에 실린 글입니다.

 

ⓒ김우중

코로나19와 사회구성원의 범위

전례가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마치 교활한 생물인 듯 한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정신병원, 극단적 소수 종교, 성소수자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클럽 등)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외국인을 받지 말자, 특정 국가‧지역 출신 외국인만 받지 말자는 등 불과 몇 달 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논란도 이제 한가한 얘기가 되었다. 국경을 아무리 높여도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이다.

현재 세대가 처음 겪은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에 맞서, “누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구성원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답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미 예전에 입법된 바에 따른 조치이기는 하지만, 미등록 외국인을 향해 보건소에 오더라도 신고하지 않고 진료비는 전액 국가에서 지원하니, 두려움 없이 검사를 받으라는 정부의 호소는 신선하다.

급기야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적극적인 방역 조치를 지시하고,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단속할 경우에는 깊숙하게 숨기 때문에 오히려 사각지대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며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퍼지는 것을 걱정하였다. ‘불법체류자’가 아닌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첫 용례로 보일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단속과 외국인 혐오를 정부가 걱정하는 것도 낯선 모습이다. 이에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도 인터뷰에서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보건복지부가 발송한 안전 안내 문자는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에 대한 코로나19 검사 안내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이탁건)

긴급재난지원금도 코로나19 때문에 급작스럽게 한국 사회에 던져진 의제에 가깝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일부 학자들의 연구 주제에 불과했고, 한국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아무런 자격 또는 요건 없이 즉, 국가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로부터 돈을 받는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전면적이니 이에 대한 구제책도 전 사회적이여야 한다는 합의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며, 결국 모든 국민에 대해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있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주민에 대한 소액 현금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정에서, ‘모두’의 범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점은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내 거주 국민에게 지급되며, ‘재외국민,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결혼 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 및 영주권자는 지원대상에 포함한다’고 한다. 3월 말 기준 장기체류 이주민 약 173만 명 가운데 약 144만 명은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어떠한 기준으로 지원대상을 선정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 주지하다시피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농어업 등 일부 경제영역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더 이상 유지되기가 힘들다. 납세 여부? 이들은 소득세, 지방세, 주민세 등을 납부하고 있고, 경제활동을 하며 각종 간접세를 내고 있다. 피해 정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일용직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것은 명확하다. 정주(定住) 여부? 체류자격이 계속 연장되어 사실상 영주가 예정된 난민 인정자, 재외동포 등도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고, 10년, 20년 동안 한국에서 체류해 온 이주민들도 역시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이주민에 대한 재난 기본금 지급의 필요성

국제인권법은 생존권적 기본권은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사회권규약도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제9조) UN 사회권위원회의 해석에 따르면, 국가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필요한 보건, 주거, 안전한 식수, 식량, 기초 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하며, 사회보장의 최저선은 실질적으로 인간 존엄에 합당한 생활 수준과 의료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여야 한다.(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제19호) 인종차별철폐협약은 공중보건, 의료, 사회보장 및 사회봉사에 대한 권리가 비차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제5조 (e)항)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한국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여러 이주민 집단이 배제되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영토 내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국적과 무관하게 기본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좁게 보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권리는 인간의 권리로서, 국적, 체류자격 유무 등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급여는 헌법상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제10조)의 보장 차원에서 지급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외국인도 급여를 요구할 기본권이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긴급’한 ‘재난’에 대응하여 사회 구성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급여의 성격이므로,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급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명료한 언어로, 최소한의 삶의 보장은 ‘모든 경우’에 ‘항상’ 인정되어야 하며, 수혜자의 체류자격을 이유로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BVerfG, 1 BvL 10/10 vom 18.7.2012 (AsylbLG))

ⓒ김우중

당위와 권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정책적으로도 외국인에 대한 재난기본금 지급의 필요성은 높다. 이들은 앞으로도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것이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이다.(게다가 당장은 돌아가고 싶어도 항공편이 끊겨 돌아갈 수도 없다.) 성공적인 방역 정책의 집행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최저한의 생계는 반드시 보장하여야 한다. 모든 외국인에 대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례적이지 않다.

일본은 ‘생활지원임시급부금’을 1인당 10만 엔씩, 모든 주민등록 된 사람에게 지급한다고 한다. 외국인도 3개월 이상의 체류자격이 있다면 주민 등록되어 대상에 포함된다. 독일은 세금번호를 발급받아 수익 활동 하는 모든 내·외국인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5천 유로씩 지급하고, 3개월 내에 9천 유로를 추가 지급하기로 하였다. 캘리포니아는 모든 미등록 외국인에게 1인당 500달러씩 지급한다고 발표하며,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재난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제시하였다. 포르투갈은 모든 이주민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한시적인 비자를 발급하며, 어떠한 외국인도 “건강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권리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도 최근 농업, 돌봄 영역에서 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시적인 체류자격을 발급하였다.

마지막으로 행정상 거주민 등록·인구 통계 체계 구축의 중요성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주민등록 시스템상 외국인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거나, 외국인들의 소득 기준, 거주 지역 등의 파악이 힘들어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주 인권단체들이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면 구체적인 실태와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어 대책 수립이 곤란하다는 과거 정부의 답변과 다르지 않다.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이주민들의 거주 사실·통계를 파악하여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구성에 반영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모든 국내 출생 아동에게 출생 등록을 보장하라는 국제기구와 이주 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이제 답변할 때가 되었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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