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가족, 누더기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촉구

산재, 재난참사 피해자 가족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정부가 지난 4월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시행령,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이 누더기가 돼 이름만 남았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다시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4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급승인 대상 확대”, “원청책임 강화”, “보호범위 확대”, “작업중지해제 절차 강화” 등으로 하위법령안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월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에 대해 이들은 “노동자를 죽게 한 기업주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삭제돼 실망스러웠다”며 “우리 아이들을 죽게 한 기업주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고, 그래서 죽음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용균이가 죽어 만든 법이라 했지만 (개정안이) 용균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법이 돼 기가 막혔다”며 “노동자가 반복해 죽었던 용균이의 일터(태안 화력발전소)가 도급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러모로 부족했던 개정안이 하위법령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으로 보완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지난 4월 정부가 내놓은 산안법 시행령,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이 오히려 지난 개정안보다 후퇴됐다고 봤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에는 김용균 씨가 숨진 발전소를 포함해 조선소, 철도, 건설현장 등도 도급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구의역에서 일하다 숨진 김 군의 업무나 방사선 취급 등 사고성 사업장도 도급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또 독성화학 물질 중 불산, 황산, 염산, 질산 4개만 도급승인 대상이다. 나머지 수많은 독성물질은 도급승인이 필요 없다. 피해 가족과 단체들은 화학물질의 도급승인 대상을 확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화물운송, 예술노동, 가맹점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보호범위 전면 확대와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의 전면 개정도 요구했다.

이날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자 가족 6명의 발언이 이어졌다.

삼성반도체 직업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 <tvN>이한빛 피디 아버지 이용관 씨, 제주 현장실습고교생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씨다.

먼저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는 “노동자가 죽어도 기업주가 처벌받지 않으니 기업이 신경 쓰지 않는다. 삼성공장에서 화학가스 사고로 노동자가 죽었어도 벌금 몇백만 원이 전부”라며 “이래서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씨는 “산안법이 용균이가 죽어서 고쳐진 법이다. 노동자 죽이는 위험한 일은 하청을 줄 수 없도록 하겠다는 법이었는데 막상 용균이 동료들은 빠졌고,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를 최소 1년 징역 처벌하는 조항도 결국 빠졌다. 하청 노동자의 경우 독성화학물질도 단지 4개만 못 쓰도록 했고, 일상적 유지보수 업무도 법 적용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노동자들을 계속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산안법으로 안 되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서라도 꼭 처벌해야 한다”며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지켜라”고 말했다.

이어 이한빛 피디 아버지 이용관 씨가 말했다. 그는 방송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과 산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고강도의 지속적 야근과 과로, 질병, 안전사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산안법 개정으로 오랫동안 지속된 죽음의 외주화가 끝나리라 기대했지만, 이번 하위법령은 개정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후퇴했다”며, “방송노동자들에게는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 4대보험 보장, 노동시간 단축이 산안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로사와 자살이 이어지는 방송현장과 IT업종은 산안법 적용대상에서 빠져 있다.

14일 청와대 앞에서 산재 및 재난 참사 피해 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을 촉구했다. ⓒ김수나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노동자 숨지면 기업주 처벌해야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는 아들이 생수공장 기계에 끼어 숨졌어도 처벌이 500만 원도 안 되는 벌금에 집행유예에 그쳤다면서 사업주들이 책임을 피해 가지 못하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4월 10일 수원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는 사고책임의무 적용 건설기계를 27종으로 확대할 것과 살인기업 처벌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김 씨는 “동생은 용역노동자라는 이유로 가장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안전화, 안전모, 안전벨트 등 안전장비를 받지 못했고, 안전대와 안전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본적 안전교육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행령으로 원청책임이 적용되는 건설기계는 4개(항타기, 항발기, 타워크레인, 건설용리프트)뿐, 사고다발장비인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은 없다”고 말했다.

개정 하위법령에 따르면, 원청은 사망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건설현장에서 사고다발장비인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 같은 대부분 건설기계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는 “국민이 일하다 더 이상 다치거나 죽지 않기 위한 법인데, 하위법령이 누더기가 돼 용균이 동료들의 죽음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용균 법에는 김용균이 없다. 너무 협소하게 통과된 이번 산안법은 21세기 현실에 맞지 않는 후진국형 법안이다. 이대로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 막을 수 없다”면서 “유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예은아빠 유경근 씨는 산재 및 재난참사 피해자들에 대해 “대통령이 결단해서 (산안법이) 국회 통과되도록 도왔으니 그 정도면 됐다, 자식은 가슴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도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가슴에 자식을 묻는 것이 무슨 뜻인지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지 모르는 이들이 내뱉는 말”이라며, “돌아가야 할 일상이 사라졌다. 눈뜨면 옆에 누워 자고 있어야 할 용균, 예은, 민호. 함께 밥 먹고 잠자고 엄마, 아빠에게 투정 부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용균이가 일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이번 개정안과 시행령을 적용했을 때 용균이가 지금 살아 있을지 똑같이 죽어 있을지 그것만 놓고 봐도 현재 입법예고안이 왜 김용균 법이 아닌지,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닌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인기업에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먼저”라며 “그럴싸한 개정안을 만들어 마치 다한 것처럼,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떼쓰는 것으로 매도하는 정부와 국회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수많은 예은이와 용균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산안법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안은 지난 3일로 40일 동안의 입법예고 기간을 마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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