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정기국회 제정 무산
유가족 등 연내 제정 촉구 단식 돌입
천주교 서울 노사위, “일터에서의 죽음 결코 용납 안 돼”

“세상은 변한 게 없다. 매일같이 용균이처럼 끼어서 죽고, 태규처럼 떨어져 죽고, 불에 타서 수십 명씩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돼 죽고, 과로로 죽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화학약품에 중독돼서 죽는다. 너무 많이 죽고 있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11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가면서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씨가 한 말이다. 10일이 아들의 2주기였지만 그는 국회 농성으로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이 무산되면서 산재 및 재난 참사 유가족 및 시민사회는 10일 시작된 임시국회에서는 중대재해법이 꼭 제정되기를 거듭 촉구했다.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 민주노총)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이 시작된다. (사진 제공 = 민주노총)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 9월 국민동의청원 10만 요건을 채워 국회에 회부됐고,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법안도 4개나 계류 중이다. 12월 2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중대재해법은 정기국회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에 비정규직 노동자 김주환, 이태의 씨가 7일부터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11일부터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 등 모두 5명이 단식 농성을 벌인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중대재해법을 발의한 강은미 의원(정의당)도 함께 단식한다.

이들은 피해 가족과 시민사회가 “더는 우리 가족, 동료가 죽어 나가서는 안 된다고 절절히 요구했지만 국회는 끝내 외면했다”면서 “매해 2400명의 산재 사망, 끊이지 않는 재난 참사를 막을 가장 강력한 수단인 중대재해법 즉각 제정”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도 “중대재해법이 반드시 올해 안에 제정돼야 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여전히 일터에서 수많은 형제자매가 죽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부당한 차별과 모욕이 가해지는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일터의 안전과 생명은 최우선으로 보호돼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오히려 목숨을 바쳐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단식 농성에 들어가며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민주노총)
이날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단식 농성에 들어가며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민주노총)

“삶이 부서져 버린 가족 더는 없기를”
“용균이 계기로 만들어진 산안법, 죽음 막지 못해”

이날 산재 피해자 가족들은 단식을 시작하며 심경을 전했다.

먼저 이용관 씨는 “생명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족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 그저 모든 삶이 부서져 버린 가족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나라, 일하러 갔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위해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미숙 씨는 “아직도 용균이가 없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데, 벌써 2년이 흘렀다.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은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한다”면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단식 농성에 연대하는 피해 가족의 발언도 이어졌다.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청년 노동자 김태규 씨 누나 김도현 씨는 “유족이 단식까지 하는 게 너무 억울하고 눈물이 난다. 태규를 볼 자신이 없다”면서 “중대재해법이 통과될 때까지 태규를 보러 가지 않겠다. 꼭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마이스터고 현장실습 중 숨진 김동준 학생 어머니 강석경 씨는 “일 배우러 나간 제 아들 동준이는 6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비참한 일을 겪는 국민들이 날마다 생기고 있다”면서 “내 새끼는 못 지켰지만, 더는 저희 같은 고통 속에 절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국회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인 허경주 씨도 “대한민국 최초의 심해수색이었지만 단 한 명의 공무원도 현장에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1차 심해수색은 최종 실패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끝까지 누구 한 명 책임지지 않았다”면서 “반드시 중대재해법을 제정해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깨고 잘못된 업무 처리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대재해법은 산재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 시민의 피해를 낳은 일반 재해에도 적용된다. 또 산재 피해 노동자와 재해 피해 시민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있는 경영 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은 물론 인허가 및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까지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한편 10일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를 맞아 서울과 부산 및 김용균 씨의 일터였던 태안화력발전소 등 곳곳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추모가 이어졌고 중대재해법 제정 목소리가 높았다.

부산 서면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정석채 씨는(경동건설 산재사망 노동자 정순규 씨 아들) “산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경동건설이 기업 살인한 제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많은 분들이 죽어 가는 현실과 2주기를 맞은 김용균 노동자 및 산재로 숨진 수많은 노동자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11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죽어 가는데 산재 사망 노동자 1명당 기업이 내야 하는 벌금은 평균 432만 원이라 기업은 절대 안전 비용에 투자하질 않는다. 중대재해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고 정순규 씨 아들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이 기업 살인한 제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많은 이들을 기억해 달라"면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정석채)
고 정순규 씨 아들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이 기업 살인한 제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많은 이들을 기억해 달라"면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정석채)

“안전 범죄에 대한 구조적 책임은 기업과 경영자”
10일 이낙연 당대표 “최대한 이른 시기 제정”  또 약속, 지켜질까?

지난 2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중대재해법 제정 공청회에서 최정학 교수(방송통신대)는 “기업처벌법이 기업과 경영자를 처벌하려는 것은 안전 범죄에 대한 구조적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면서 “단순히 사고 현장에서 누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나 안전 관리자가 세세한 안전조치를 모두 취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안전 의무의 위반에는 보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공사기간 단축, 안전 예산 삭감과 같은 기업과 경영진의 결정이 현장에서 안전 의무가 지켜지지 않는 근본적 원인이 되기 때문에 기존 법률에서 형량을 다소 높이는 미봉책만으로는 안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이낙연 당대표(더불어민주당)가 법 제정을 거듭 약속한 것과 달리 정기국회 내내 당내 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다 지난 12월 1일 중대재해법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됐던 제1 야당인 국민의힘까지 법안을 발의하고 다음날 공청회까지 진행되면서 정기국회 본회의 상정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러나 10일 이낙연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강화하는 법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제정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도 공식 논평을 내고 “국민들께 약속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반드시 제정하여 산재 예방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중대재해법 제정 여부는 1달 남은 임시국회를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요 대형 참사 처벌 결과

-세월호참사 (2014.4.16,295사망,9실종)
유대균(청해진해운 지주회사 아이원아이홀딩스 최대 주주): 징역 2
유병일(청해진해운 고문): 징역 1, 집행유예 2
김한식(청해진해운 대표이사): 징역 7, 벌금 200만원
청해진해운 상무이사 : 금고 3, 벌금 200만원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체육관붕괴 참사 (2014.2.17,10사망,194부상)
마우나오션 리조트 사업본부장 : 금고 1년 6
마우나오션 리조트 총 지배인 : 금고 1, 집행유예 2
마우나오션 리조트 시설팀장 : 금고 1년 6
건설공사 설계감리자 : 금고 1년 6

(원청) 시공사 대표이사 : 무죄
(원청) 시공사 현장소장 : 징역 1년 6
(하청1) 시공사 대표이사 : 징역 1년 6
(하청2) 시공사 회장 : 금고 1년 6
(하청2) 시공사 전무 : 금고 1년 6
(하청2) 시공사 상무 : 금고 1년 6, 집행유예 2
(재하청) 시공업자 : 징역 1, 집행유예 2

-태안사설해병대캠프참사(2013.7.18,5사망)
유스호스텔 대표이사 : 징역 6
유스호스텔 이사 : 징역 1
코오롱트레블 대표이사 : 무죄
해병대 캠프 대표 : 금고 1년 6

-상주시민운동장참사(2005.10.3,11사망,145부상)
국제문화진흥협회 회장 : 징역 1
국제문화진흥협회 실무부회장 : 징역 2년 6
상주시장 : 금고 1년 6, 집행유예 2
상주시 행정지원 국장  : 금고 1, 집행유예 2
상주시 새마을 과장 : 금고 1, 집행유예 2

-대구지하철참사(2003.2.18,192사망)
대구 지하철 공사 (법인): 벌금 1,000만원
대구 지하철 공사 대표이사 : 무죄

1079호 기관사 : 금고 4
1080호 기관사 : 금고 4

(자료 출처 =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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