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에서 비정규노동자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성탄 미사에 함께한 사제들. ⓒ김수나 기자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 3,7) 

1. 1월 22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김용균 님의 빈소를 태안에서 서울로 옮겼고, 대책위 소속의 대표자들은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27일에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고인의 49재를 지내야 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사고 발생 후,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했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의 피맺힌 호소 덕분에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를 조장해 왔다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겨우 개정되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누더기가 된 채 개정되었습니다. 

2. 고 김용균 님과 같은 죽음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근원적인 대책은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입니다. 이것은 발전소에서, 제철소에서, 조선소에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죽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인 것을 보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비정규직이란 제도 속에서 사람은 합법적으로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간주됩니다. 이토록 비인간적인 비정규직이 경제의 이름으로 방치되고 확산되는 사회는 비참하고 잔혹한 사회, 병든 사회입니다. 안전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못한 사회입니다. 

3. 고 김용균 님의 죽음으로 비용절감과 이윤 극대화에 최적화된 태안 화력발전소의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발전소 내부의 작업 환경은 ‘죽음의 공간’이라 할 정도로 위험하고 열악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이번에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으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1029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태안 화력발전소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내팽개치고 이윤의 극대화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발전소들을 비롯한 여타의 산업현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대책위가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 고 김용균 님의 어머님은 사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만난 아들 또래의 동료들에게 발전소에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또 다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식의 죽음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갔고,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났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만나자는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의례적인 만남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노동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사실 고 김용균 님의 부모님은 지금껏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 온 셈입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가을부터 절박하게 터져 나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화 제의를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대통령과 기업인들과의 만남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노동 존중의 사회가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가 폐기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6. 취임 초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감동이 발전부문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길 간곡히 바랍니다. 그렇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길 바랍니다. 그래서 며칠 남지 않은 설 명절 전에 고 김용균님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 하청이라는 죽음의 구조가 제거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7. 우리는 오늘도 비정규직의 굴레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기억합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합니다. 우리는 돈과 이윤을 위해 사람을 합법적으로 차별하고 착취하는 구조인 비정규직 제도가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양립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비정규직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각계각층의 시민사회와 함께 끝까지 연대할 것입니다.

2019년 1월 31일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가톨릭농민회, 가톨릭평화공동체,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우리신학연구소,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가톨릭노동장년회 전국협의회)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마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제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고성 올리베따노 베네딕도수도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예수회,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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