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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된다[인연 - 김정대 신부]
이 글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웹진 <인연>에 실린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지난 4월 29일 이천에 있는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작업을 하던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의 원인은 단열재로 사용되는 우레탄폼에 발포제를 첨가하면서 나온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어 일어난 폭발로 보고 있다. 스티로폼이나 우레탄은 가격이 싸서 단열재로 많이 쓰이는데,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붙으면 독성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단점이 있어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사실 2008년 1월 7일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도 단열재로 스티로폼과 우레탄폼이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이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었다. 이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 이후 12년 만에 매우 유사한 참사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갖는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다면 이런 되풀이 되는 참사는 명백한 스캔들이다. 이런 참사를 우회하고는 ‘잘 사는 나라’ 그리고 ‘자랑스럽고 안전한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압축적 근대화로서 산업화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산업화를 통해 가난을 박멸하는 ‘잘 살기 운동’이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산업 현장에 군대문화를 이식했다. 군사복무를 통하여 선착순과 상명하복의 위계적인 구조를 습득한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은 몸에 내재화된 선착순이 작동하듯 ‘빨리빨리’ 산업화를 진행하였고, 산업발전을 국가발전이라고 받아들이며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하듯이 모든 희생을 감내했다.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 외에 다른 가치들은 모두 무시하여 생명, 인권, 자유, 나눔, 미풍양속의 문화와 같은 가치를 희생했다. 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부상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우리가 원했던 사회가 이런 사회인가?

(이미지 출처 = SBS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과 달리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참사에 대해서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이런 지적을 한다. “공사 자금과 공사 기간은 발주처에서 정한다. 발주처에서 정한 자금과 기간이 빠듯하다면 그만큼 안전은 무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시사IN' 2020.5.26., 19쪽) 이렇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는 너무 많다.

2018년 12월 11일, 태안의 한국서부발전소에서 발생한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사망 사고가 그 예다. 그는 한국서부발전소에서 노동을 했지만, 그가 소속된 업체는 한국발전기술(주)이라는 외주하청업체였다. 한국발전기술은 인력부족과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2인1조 근무를 1인 근무체계로 바꿨다. 한국서부발전소와 한국발전기술은 현장의 위험성을 알고도 3억 원의 추가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2018.12.18.) 한국서부발전소에서는 김용균 노동자의 처참한 사고사 이전에 이미 지난 10년간 10명의 노동자가 사고사를 당했다. 그들은 모두 외주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원청은 ‘죽음의 외주화’로 비용을 절감했지만, 그 피해는 노동자들의 몫이 된 것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OECD회원국 중에 최고다. 2015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영국의 0.4명(최저)에 25배나 많은 10.1명으로 회원국 중에 최고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인적 손실에는 늘 경제적 손실이 따르며 경제적 역기능에도 늘 인적 손실이 따릅니다. 단기간에 더 큰 금전적 이익을 얻고자 인적 투자를 중단한다는 것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 행위입니다.”('찬미받으소서', 128항)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적을 성찰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산재를 막기 위한 각종 의무를 규정해 놓았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면 기업 책임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판사가 법에 명시한 형량을 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형량이 작기 때문에 기업은 안전조치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당한다. 그래서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연 것이 시작이 되었다.('시사IN', 25쪽)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2018년 12월 11일 태안 화력발전소의 김용균 노동자의 산재 사망 이후,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벌금을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고, 산재 사망 사고 책임자들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등의 하한형 형량을 도입하라고 요구하였지만 반영되지 않았고, 여전히 사고 책임자에 대한 형량은 매우 낮다. 우리 사회는 지금이라도 다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최근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국제적 찬사를 받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화에 선진국 후진국은 없다. 또 ‘돈이 많은 나라’ 정도가 선진국이라고 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이런 고정관념을 멋지게 깨주지 않았는가? 잘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더 많이 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와 같은 사회적 제도가 정착되어 올바로 작동하는 사회적 차원이다. 그러니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나는 부자여야 행복해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서로 관심을 갖고 개인의 아픔을 들어 달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충분히 좋은 사회다. 그러나 노동을 천시하는 우리 문화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을 하더라도 들어주질 않는다. “만일 사회가 모든 개인의 중요성을 잃어버린다면 사회는 사회의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린다. 한 사회가 공동체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와 풍요로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A. F. Campbell, The study Companion to Old Testament Literature,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89) p. 365.] 그리스도인은 “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예수회 34차 총회문헌, n.146)가 되어 주어야 한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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