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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외로운 사막의 예언자?개혁된 교회 비전 목소리 줄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7일 연례행사로서 교황청 주재 180여 나라 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날의 가장 힘든 문제들에 대해 “장기 해답을 내놓음으로써 참을성 있게 공동선을 추구”하는 대신에 “당장의 당파적 여론”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적 경향들이 재유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편집자 주- 이 자리에서 교황은 "한반도에서 긍정적 신호들이 오고 있다"며 남북한과 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하는 공동의 영속적 해결책이 나오기를 빌었다.)

그는 각 나라가 혼자만 움직이는 대신에 다국주의(multinationalism)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각 나라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면 인류는 다시금 2차대전으로 이어졌던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가 유엔과 유럽연합의 강화 등 다국주의를 주창한 지 겨우 이틀 뒤, 이탈리아 집권연정의 사실상 지도자인 내무장관은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와 반 유럽연합 연합을 구축했다. 이는 교황의 말이 무시되는 또 하나의 징표이며, 더구나 이탈리아는 한때 교황의 정치적, 도덕권 권위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나라다.

이탈리아 언론인인 야코포 스카라무치는 교회와 교황청을 날카롭게 분석하지만 그에 마땅한 평가는 잘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직전에 <제수스>에 짧은 글을 실었다. “베르골료의 목소리, 사막의 예언”(La voce di Bergoglio, profezia nel deserto)이라는 제목이었다.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이 되기 전의 원래 이름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다.)

그는 2013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뒤로 여러 나라에서 국수주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았으며(시리아, 이집트, 아르헨티나, 미국, 칠레, 오스트리아, 브라질 포함), 러시아, 헝가리, 터키 등에서는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카라무치는 “그리고, 교황은, 자비를 주창하고 불평등을 비난하며 가난한 이들과 이주민을 보호하는데, 갈수록 외로워지고 있다”고 썼다.

그는 베네딕토 15세 교황(1914-22)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도 이제는 도덕적 권위는 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는 “사막의 예언, 미래를 위한 씨앗, 반론(contradiction)의 징표”의 성격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베네딕토 15세는 1차 세계대전 시기에 '평화'를 주창했지만 각국 지도자들은 그를 무시했다. 그래서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고 자신의 교황명으로 베네딕토 16세를 선택하자 그가 평화를 강조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의 예언자적 목소리에 세계 지도자들은 화를 내는데,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등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자신이 속한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금이 가게 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교회의 정신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고 교회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주려 노력하는데 이에 전통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자들은 놀랐다.

그리고 올해 82살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교황직이 비판자들(특히 성직자 성학대 문제에 관해)에게 맹타당하고 있음에도 개혁 전망을 완화하거나 벗어나려는 조짐이 전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La CROIX)

낡은 교황 궁정의 마지막 자취를 없애려는 계획?

프란치스코 교황은 앞으로 몇 달 안에 (교황청 조직에 관한) 새 교황령을 선포하여 교황청을 완전히 재편할 예정이지만 그에 앞서서라도 먼저 두 개의 사목교서를 자의로 발표하여 교황청의 현 구조에 중요한 변화를 추가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교황궁내원의 역할과 권한을 사실상 축소하는 내용이라 한다. 교황궁내원은 현재는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가 궁내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는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오랜 측근으로 현재 그와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언론인인 마르코 토사티는 전 주미 교황대사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성직자 성학대를 은폐했다며) 비난하고 사임을 촉구했던 글을 쓰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배후에서 획책했던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교황궁내원은 교황청 국무원의 한 부속 부서로 바뀔 것이라 한다.

또한 올해 62살인 겐스바인 대주교는 시성성 차관으로 간다는 것인데, 현재 시성성 차관인 마르첼로 바르톨루치 대주교는 오는 4월에 (교회법에 정해진 주교 은퇴연령인) 만 75살이 된다.

분명히 이는 그저 소문일 따름이다. 하지만 아주 합리적인 설이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의 개혁을 지지하는 이들에게서 긍정적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교황궁내원의 지위와(그리고 아마도 권한도) 그 수뇌부가 변한다는 것은 적어도 두 이유에서 좋은 소식이다. 하나는 이 부서의 역사와 조직 기능의 측면이고 또 하나는 개인적, 전략적 측면이다.

첫째로, 이 조직이 축소 개편되면 교황청 관료조직이 더 몸뚱이를 줄이는 것이고 또한 낡은 교황궁정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옛 군주정 모습의) 층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현재 교황궁내원은 “교황궁내원의 내부 조직을 운영하고, 교황경당과 교황궁내인을 구성하는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리와 업무에 관한 모든 것을 감독한다.”

교황궁내원은 예전에는 “교황 궁정”(Papal Court)으로 불렸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인) 1968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개편했다. 지금은 교황의 접견 등 일정을 관리하는 일을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어져 온 의식적 요소들도 갖고 있는데 왕궁의 시종들과 비슷한 “교황 신사들”(papal gentlemen)의 출석도 관리한다. (편집자 주- 서양 왕궁 예절에서 gentleman은 왕의 옆에서 시종하는 남성들, lady는 왕비를 시종하는 여성들을 가리키던 말로, 궁녀처럼 직접 왕궁에 소속된 관리가 아닌 귀족들이다. 이들은 왕과 왕비를 위한 이러한 봉사를 큰 영예로 여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러한 교황청의 궁정식 모습들을 얼마나 더 떨쳐 내 버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둘째로, 개인적 관점에서 이 움직임은 좋아 보인다. 교황궁내원이 국무원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아주 합리적이다. 국무원은 교황청의 활동에서, 특히 외국 정부들과의 관계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핵심기구이기 때문이다.

(독일인인) 겐스바인 대주교에 관하여는, 교황청의 한 성으로 전근되면 그는 계속해서 로마에 머물러 있을 수 있고 그리하여 올해 91살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계속해서 봉사할 수 있다. 겐스바인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되기 전에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시절의 마지막 몇 해 동안 그의 개인비서였던 뒤로 (교황이 된 뒤, 그리고 교황직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전임교황이 된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봉사해 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자의교서는 여러 가지를 다루겠지만 그 중에서도 교황궁무처장 직을 폐지한다고 한다. 이 자리는 2018년 7월에 당시 궁무처장이던 장-루이 토랑 추기경이 죽은 뒤 지금까지 공석이다.

이 직은 11세기부터 있었는데, 교황이 죽고 다음 교황이 선출되기까지의 기간에 교황청의 일상업무 감독과 관련이 있다.

위에 언급한 조치 둘 다, 만약 실현이 된다면,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에 비판적이고 그가 교황직을 비신화화하고 그 군주정적 모습들을 떨쳐 내려 시도해 온 것을 비판해 온 이들은 더욱 당황할 것이다.

교황청 공보실, 그리고 바티칸 라디오의 복귀

의심할 것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론의 징표”가 되기를 겁내 본 적이 없다. 교황청과 그 조직들의 현상태를 변화시키려는 그의 노력을 보면서 불안해 하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그러한 징표였다.

그들은 교회 안 성학대 문제 처리에 그가 미흡한 점들을 붙들고 늘어져 왔다. 마치 그의 빛나는 갑옷에 난 작지만 치명적인 약점처럼 여기면서, 세계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로서 지닌 권위와 합법성을 깎아내리려 열렬히 시도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팀을 다시 짜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오는 2월에 전 세계의 주교회의 의장들을 다 모아 성학대 문제 처리에 진전을 이뤄 낼 계획을 앞둔 상황에서 그렇다.

이번에 그가 (공보실 등을 개편하면서) <바티칸 라디오>의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에 주목하는 교황청 관측통들은 별로 많지 않다. 현재 <바티칸 라디오>는 이전에 비해 규모가 축소된 상태다. 이번의 개편은 교황이 (교황청 홍보조직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이전보다) 더 낫고 선제적으로 설명하고 방어하는 커뮤니케이터 팀으로 빨리 되도록 주도할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바티칸 라디오’가 복귀한다는 첫 징표는 지난해 12월 28일에 홍보부가 이탈리아어판 <라디오 바티칸>의 새 프로그램 일정을 발표했을 때 보였다.

지난 2년간 <바티칸 라디오>는 교황청의 독립 기구로서의 지위를 잃고 홍보부 산하로 됐으며, (전에 47가지 언어로 방송되던 것 중에) 오직 이탈리아어 프로그램만 (인터넷 등이 아닌) 방송전파를 탔다. 하지만 1월 7일부터는 매일 뉴스 방송이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다시 나온다.

또한 12월 31일에는 오랫동안 <바티칸 라디오>에서 일해 온 언론인인 알레산드로 기소티가 교황청 공보실의 임시 책임자가 됐다.

홍보부는 또한 <바티칸 라디오>의 전직 요원들을 더 활용하려는 계획이라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단 며칠 사이에, <바티칸 라디오>에서 일하던 네 사람이, 프랑스인, 스페인인, 영어 사용자 둘, 공보실에 새로 배치됐다.

또 <바티칸 라디오>의 라틴아메리카 프로그램에서 일하던 페루 출신 언론인과 성바오로딸수도회의 미국인 수녀 한 사람도 기소티 임시 공보실장의 특별 보좌로 임명됐다.

교황청 공보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좀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1984-2006년에 공보실장을 했던 호아킨 나바로-발스는 <바티칸 라디오>에 거의 시간이나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주 보수적 단체인) 오푸스데이 회원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이미지와 메시지의 설계자이자 만든 이(spin doctor, 사실보다 부풀리거나 왜곡한다는 부정적 뜻이다)였다. 그는 공보실의 기자회견 자리에 <바티칸 라디오> 기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좀체 허용하지 않았다. 아예 그는 그들을 진짜 언론인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해야 맞다.

그가 2006년에 은퇴하자, 예수회의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가 새 공보실장이 됐다. 오랫동안 <바티칸 라디오>를 맡아온 이였다. 그로부터 교황청 내 홍보 파트에서 <바티칸 라디오>의 이미지와 지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 시절은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의 여러 홍보 관련 부서와 기구를 ‘홍보부서’ 아래 하나로 통폐합하는 개혁조치로) <바티칸 라디오>가 크게 축소되면서 끝났다. 그리고 1년 정도 뒤에, 롬바르디 신부는 은퇴하고 그레그 버크가 공보실장이 됐는데, 이 사람도 오푸스데이였다.

그리고 이제, 2주 안에, '바티칸 라디오'가 돌아온다는 명백한 징표가 있다. 이 재유행은 이제 겨우 시작인 듯하다.(편집자 주- <바티칸 라디오>는 제2차 공의회 전후 교황청 안에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개혁적인 목소리를 냈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pope-francis-a-disruptive-and-prophetic-voice/922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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