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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진지하게 성직자주의를 뿌리 뽑을까?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로버트 미켄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65살 미만의 사제에게는 더 이상 “몬시뇰” 칭호를 주지 말라고 조용히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상당수의 이른바 “전통주의자” 신자들, 특히 성직자들은 교황에게 분노했다.

그것은 교회 안의 출세주의와 성직자주의 문화를 제지하려는 작지만 첫 조치였다. 하지만 기껏해야 절반의 조치였을 뿐이다.

당시 교황은 “몬시뇰”(Monsignor. “나의 주인”,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라는 이 경칭 자체를 아예 없애고 싶어 했지만 교황청의 일부와 교계제도 안 여럿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편집자 주- 몬시뇰 칭호는 공덕이 큰 원로 사제에게 주는 경칭으로, 주교에 준하는 예우를 해 준다. 관례에 따라 또는 교황의 허가를 받아 이 칭호를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관례에 따라 자동적으로 몬시뇰이라 불리는) 교황청에 근무하는 평사제와 교황청 외교관인 평사제에게는 이 새 제도를 적용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에 발표한 “하느님백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형태의 성직자주의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인지 상기시켜 주는 한 보기가 되어야 한다.

이 서한은 (미국에서 과거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가 대규모임이 드러나 들끓던) 지난 8월 20일에 발표됐는데, 사제들이 청년들을 성학대하고 주교들이 그런 범죄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로 지키도록 허용했던 주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성직자주의”를 지목한다.

하지만 성직에 있는 남성들에게만 비난을 퍼붓지는 말자. 교황이 제대로 지적하듯, 성직자주의자가 되려면 성직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성직자(중심)주의는 사제들 본인들이 부추기든 평신도들이 부추기든 간에, 우리가 지금 단죄하고 있는 악들의 상당수를 영속화하도록 지탱하고 돕는 교계조직 안의 특수집단 형성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주의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뿌리 뽑기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성직자주의”에 “아니오”하는 것이 얼마나 “단호”하고 깊은 차원의 문제가 되어야만 할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환속 사제로서 저술가인 제임스 캐럴이 며칠 전 <뉴요커>에 쓴 글에서 강조했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성-지배적이고 독신(주의적) 성직자주의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애통하게도 그 손아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캐럴의 말이 맞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주의에 잡혀 있다. 전체 교회도 그렇다.

성직자주의는 우리 가톨릭 DNA 중의 악성 돌연변이 유전자다.

"교황 숭배"(papolatry, 교황을 지나치게 높이고 반인반신으로 만드는 것)를 하는 교회 위계제도의 맨 꼭대기에 자신이 있다고 선언하는 질병이다.

그리고 이 성직자주의는 교회 권위의 피라미드 구조 전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피라미드의 기반부는 신학교로, 자신들이 세례받은 나머지 신자들과는 (존재론적으로 다르고, 특별하며, 더 성스럽고, 등등으로) 별개라고 보는 남성들의 특유한 카스트 계급 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된다.

하지만 성직자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분명히 그랬듯이, 평신도의 순응과 공조 없이는 번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편지에서 성직자주의를 뿌리 뽑기 위해서 “세례받은 모든 이는 각기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교회적, 사회적 변화에 관여돼 있음을 느껴야 한다”고 다시금 지적한 것은 옳다.

그는 “하느님백성의 모든 구성원의 적극 참여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교회로서 우리의 활동의 전환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교회의 권위를 이해하는 기묘한 방식에서 분명히 보인다.... 성직자주의의 사례에서처럼, 그리스도인들의 특성을 무가치하게 만들 뿐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주신 세례의 은총의 가치를 경시하고 줄이는 경향도 있는 접근법이다.”

이것은 어떻게 교정될 수 있을까? 교황이 “교회적 권위의 구조를 개혁”을 말할 때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교회로서 우리 활동의 전환(conversion)”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맨 처음부터 이 전환은 “태도, 또는 사고방식의 개혁”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2013년에 교황이 되고 처음으로 중요한 인터뷰를 했을 때 “이 구조적, 조직적 개혁들은 2차 문제다. 즉 (태도, 사고방식의 개혁) 다음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5년 반 동안 이렇게 성직자주의와 전쟁을 벌였음에도 교회 안 성직자주의자들의 태도를 교황이 극적으로 바꿔 냈다고 보여 주는 증거는 별로 없다. 현실은 성직자주의자들은 성직자의 권리와 특권을 지켜 내겠다는 결의만 더 굳혔을 뿐이다.

성직자주의에 대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 가운데 하나는, 몇 년 전에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검열을 당했던 아일랜드의 한 수도회 사제가 내놓았던 설명이다.

얼마나 진지하게 성직자주의를 뿌리 뽑을까? (사진 출처 = La Croix)

다음은 그가 정리한 성직자주의의 몇 가지 모습이다.

배타적 클럽에 속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클럽에 속한다고 보는 것. 이 클럽은 남성이며, 교계제도에 속한 사람이고, 독신인 사람들의 클럽으로, 폐쇄돼 있고 비밀적이며, 특권, 복종과 권력의 체제의 일부다.... 평신도의 관점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성직 카스트의 구성원들은, 교계제도 사다리의 윗계단에 있는 이들로서, 지혜를 독점하고 성령에 대한 접근을 독점하는 이들이다....

성직자주의는 권력 위에 번성하며 권력에 의해 지탱된다. 책임성을 강하게 믿는다. 하지만 위로만 책임지고 밑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평신도와 평사제는 협의할 필요가 없다. 어쩌다 가끔....

성직자주의는 대화와 토론에 쓸 시간이 전혀 없다. 교회 안의 쇄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을 위험한 자, 리버럴한 목표를 가진 자로 간주한다....

그래서, 성직자주의자들은, 이들은 교회와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양쪽에서 다 발견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을 반대하는 가톨릭 신자들이다.

도널드 코젠스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으로 사제이자 신학교 학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는 성직자주의에 관해 깊이 있는 글을 써 왔다. 그는 성직자주의는 “가톨릭 세계를 망치는 암”이라고 부르면서, 성직자주의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교회 조직에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수술에 앞서 주의해서 검사를 한 뒤에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2015년에 쓴 한 글에서 (성직자주의의) 현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성직자주의는 사제와 주교로서 자신들의 지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받은 제자로서의 지위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는 많은 (하지만 모두는 아니다) 성직자가 갖고 있는 태도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특권의식과 자격의식(sense of entitlement)이 이들의 개별, 집단 정신 안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에서 자신들은 나머지 신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교회 엘리트 집단이 생겨난다.

 

코젠스는 이 질병을 없애거나 적어도 크게 완화하기 위해 세 가지 기본 조치를 제안한다.

1) 신학생들은 사제 서품은 세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지 세례 위에 있거나 세례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배워야만 한다.

2) 여러 직함은, 심지어 “아버지”(Father, 한국에서는 신부로 부른다.) 포함, 각자 나름의 쓰임새가 있겠지만, 꼭 그렇게 써야만 한다고 주장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리고,

3) 의무 사제 독신은 “재론”(revisit)되어야만 하는데, 그에 따르는 “고유의 부담들... 때문에 일부 성직자는 성직자주의의 뚜렷한 특징인 자격의식과 특권의식을 갖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셋은 모두 중요한 조치다. 하지만 이 셋만으로는 성직자주의라는 질병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질병을 없애려면 더 근본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런 근본적 조치 가운데 일부는 초대교회에서 보인 생활양식과 실천관행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조치는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메시지에 더 충실한 모습을 반영해야만 한다.

첫째, 성령께서 모든 세례받은 이들 –여성과 남성, 기혼자와 비혼자 다같이 포함-에게 같지 않게 그리고 자유로이 은총들을 분배하신다고 인식함으로써 교회 안 직무들의 전체 본질을 수정해야만 한다.

전체 하느님백성은(그리고 주교들뿐 아니라) 구성원 누가 특정 직무들에 부르심을 받고 있는지- 성직에 받아들여진 이들 포함- 주의 깊게 식별하는 일에 권리와 책임이 있다.

둘째, 현재 존재하는 것과 같은 신학교 제도는 폐지되어야만 한다. 교회 안의 수많은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신학교 제도는 시대착오적 존재가 되었으며 기능은 잘 작동하지 않고, 우리 시대에는 전혀 부적합하다.

셋째,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심이나 성직계급 안의 “출세주의”(careerism)를 부추기는 모든 조직들은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해는 말라. 이렇게 하려면, 설사 그런 조직들을 제거한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실천관습과 가르침에 좀 더 충실하자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내포하지 않음에도,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최소한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

1) 예하(Eminence, 추기경), 각하(Excellency, 대주교), 나의 주인님과 같은 모든 교회적 직함은 즉시 폐기되어야만 한다. (편집자 주- 한국 교회에서는 대주교에게도 주교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존경하올"(Most Reverend)이라는 칭호를 쓰고, 평사제는 "존경하올"(Reverend, Rev.)을 붙이는데, 지금은 문서에서만 가끔 쓰이고, "주교님", "신부님" 등으로 정리돼 있다.)

2) 로마 주교인 (교황)은 성부(Holy Father)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 이 호칭은 성삼위의 제1위를 부르는 칭호이고, 미사 때 성체 기도에서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교황을 가리키는 말로는 더 이상 쓰여서는 안 된다.(한국교회에서는 이 용어를 교황에 대해서는 각하 등에 대응시켜 성하라고 번역해 부른다.)

3) 교회는 “한 주교, 한 교구”라는 고대 관습을 복구해야만 한다. 주교는 자신의 교구와 결혼한다고들 하는데, 주교가 (주교)반지를 끼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많으면 셋이나 네 교구(심지어 다섯)를 “경력”(career)으로 거친 주교들이 많다.

교회의 가장 오래된 전통들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는, 한 주교가 어떤 교구에 임명되면 절대 다른 교구로 전임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점점 더 크고 중요한 교구로 가려는) 출세주의를 억제하는 효과가 곧바로 날 것이다.

4) 같은 뜻에서, 보좌 주교 또는 명의 주교 자리도 폐지되어야 한다.

5) 추기경단은 (성경에 나오지 않고) 인간이 창조한 것으로 특정한 사회적, 교회적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인데, 이제는 그러한 사회적, 교회적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폐지되어야만 한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추기경단이라는 이 엘리트 기구보다 성직자주의의 모든 특징을 다 구현하고 있는 다른 기관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을 추기경에 임명하면) 오직 그 여성들을 “성직자화”할 뿐이라는 자신의 믿음에 바탕을 두고 여성 추기경 임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모두 그저 몽상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몽상처럼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성직자주의가 얼마나 교회의 살 속 조직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슬픈 증거다. 성직자주의를 조장하는 관습, 기관, 습관들 대부분이 교회의 본질, 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현의 본질 요소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지금 개혁을 심각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다는 분명한 징표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how-serious-is-pope-francis-about-eradicating-clericalism/8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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