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뜨거운 불가마 한증막 안에 있기라도 하듯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 8월 중순, 미국의 신학자, 평신도지도자, 교육자 3000여 명은 미국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퇴서를 내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Heidi Schlumpf, “Theologians, lay leaders call for mass resignations of US bishops”, National Catholic Reporter, Aug.17,2018.) 

몇 달 앞서 칠레 교회의 모든 주교들이 사제 성추문과 이를 알고도 은폐한 데 대한 반성과 회개의 의미로 교황에게 사퇴서를 제출한 것과 동일한 결단을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8월 1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오늘, 우리는 미국 주교들이 절실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앞에서 회개와 참회의 공개 행동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주교단 전체가 사퇴를 요청하기를 심각히 고려하라”고 요구했다.(“Statement of Catholic Theologians, Educators, Parishioners, and Lay Leaders on Clergy Sexual Abuse in the United States", in English and Spanish on the Daily Theology blog, Aug.17.2018) 

성명서는 사흘 전인 8월 14일 시민 등 검찰 외부인사로 구성된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grand jury)이 주내 6개 교구에서 지난 70년 동안 301명의 사제들에게 강간과 성폭행을 당한 1000명이 넘는 소년, 소녀에 관한 보고와 워싱턴대교구장이던 시어도어 매캐릭 대주교가 미성년자 한 명과 신학생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보고된 뒤에 나온 대응이었다.

성명서는 “대배심원들의 보고 내용은 표현할 수조차 없는 공포스러운 범죄”라면서 (성폭행한 사제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주교들은 “수십 년 동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사실을 은폐했다”고 비판했다. 불과 사흘 만에 모여든 3000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런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 보고가 주는 충격과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린 공분 때문으로 보인다. ‘70년’, ‘301명의 사제’, ‘1000명의 아이들’.... 이 엄청난 숫자가 주는 의미 앞에서, 지워도 떠오르는 악몽 같은 장면 장면들 속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자식을 마주하며, 달리 이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어야 했을까. 희생자들과 그 가족, 평신도 지도자들을 극한의 분노로 몰고 간 것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주교들이 이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은폐해 왔으며, 바티칸조차도 이를 수수방관했다는 데 있다고 보인다.

대구시 남구에 있는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이미지 출처 =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홈페이지)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새로 부임한 주한 교황대사가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석비서이자 교황청 재무원 실무 책임자로 알려졌으며 좀처럼 해결될 것 같지 않던 대구가톨릭대의료원 파업이 장기화, 극단화돼 가는 상황에서 적극 개입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파업에 참가한 550명이 쓴 편지함을 들고 간 노조대표를 교황청대사관 밖으로 나와 직접 맞고 “병원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원을 보내고,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노조대표단에게 슈에레브 대주교는 노조 대표들과 의료원장의 만남과 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재할 의사를 강하게 비쳤다. 그는 “비리의 증거가 있다면 경찰에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심병철, “대가대의료원 파업 한 달, 교황 대사 중재 시사”, 대구MBC, 2018.08.24)

슈에레브 대주교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전임 교황대사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끈다. 전임 대사는 2015년 10월 ‘인천성모병원 사태’ 해결을 위해 교황대사관을 방문한 의료보건노조가 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자 경찰을 불러 대사관 앞을 막았고, 지난해 3월에는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던 희망원 문제로 시민단체가 사태해결을 위한 서한을 전달하려 했지만 역시 경찰을 동원해 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어쨌든 이렇게 전임자와는 매우 다른 행보의 슈에레브 대주교의 적극 중재 덕분에 교섭이 중단된 지 20여 일만에 교섭이 재개되고 급기야 파업 39일 만에 병원 측과 노조 사이의 협상이 전격 타결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난 건 아닌 듯하다. 노조는 수백억대의 회계부정을 명백하게 밝히라는 것도 파업의 주요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노조는 2013-17년까지 5년 동안 대구가톨릭대의료원에서 대구대교구 선목학원으로 1280억 원이 전출되었는데 결산서에는 635억 원이 누락된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대구지역지부 보도자료, 2018년 8월 13일 참조. 보도자료는 당시 대구대가대 노조가 파업 27일차를 맞고 있으며 이경수 의료원장이 본 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돈은 병원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또 환자의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쓰여야 하는데 대구대교구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곧 그 누락된 돈만큼 병원 노동자와 환자들이 고통을 받아 왔다는 얘기이고 따라서 이 회계부정 의혹은 누가 보아도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 대구대교구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구대교구는 비리의혹을 제기하거나 교회쇄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 보복성 인사조치나 검찰에 고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심병철, “쇄신에 역주행하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구MBC, 2018.08.28) 쇄신은커녕 이를 거슬러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위 두 교회의 사례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교회개혁은 불의한 위계구조의 개혁에서 시작해야 하며 이는 ‘하느님의 백성’의 참여로 이루어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회의 개혁은 구조의 개혁만으로는 미완일 수밖에 없으며 하느님의 백성 전체로 확장할 때야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칼럼에서 그 시작과 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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