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남미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경험을 듣고, 한반도에서의 정의, 평화에 대해 논의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 속한 평화나눔연구소 주관으로 11월 4일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나눔 포럼에는 엘살바도르의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등이 라틴아메리카의 전쟁, 내전에 대한 경험, 이를 극복하려 한 노력에 대해 발표했다.

차베스 추기경은 순교복자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가 맡았던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보좌주교다. 엘살바도르는 1979–92년에 내전을 겪었고, 7만 5000명 이상이 숨졌다.

그는 평화협정 뒤 교회의 과제는 “화해”였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 평화협정에는 폭력적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이를 위해 ‘진실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차베스 추기경은 “이 기구가 밝혀내야 할 가장 위중한 사건은 로메로 대주교 암살 사건”이었는데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에 정부는 대사면령을 발표해 그 무도한 범죄 행위에 가담한 모든 범인들을 미리 풀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우리가 용서와 망각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면책이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교회는 다른 구도를 상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진실, 정의 그리고 용서라는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복수가 아니라 진정한 용서입니다. 군인들에 의해 두 아들을 잃은 시골의 한 여인은 비록 글을 읽지도 못하는 문맹이지만 다음과 같이 감동적인 말을 합니다. “저는 이미 용서했지만 살인자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강한 기자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 한 남성 신자는 로메로 대주교가 숨진 1980년, 한국에서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했다면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제 기능을 못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신자와 민중들은 총을 들고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가 와야 용서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용서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차베스 추기경은 “독재로 인해 피해 본 사실”이 “무장분쟁”으로 이어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저희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로메로 복자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만이 폭력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며, 교회는 화해를 위해 노력할 사명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멕시코의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는 “평화가 없는데 용서한다는 것이 비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며 “먼저 용서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죄를 저지른 사람과 관련해 평화를 얻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노, 원망을 직시하고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분노와 원망을 직시한 뒤에 용서, 화해가 가능하다며 “그래야만 나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되고,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과 사회관계를 회복하게 된다”고 답했다.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 ⓒ강한 기자

브라질 상파울루 대교구의 오질루 페드루 쉐레 추기경도 의견을 보탰다. 

그는 “용서는 정의의 의무를 취소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이뤄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을 공격한 이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자비를 요청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쉐레 추기경은 “언제나 양편의 일”이라며 “상처 입힌 이가 비폭력을 향한 공평한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 신자가 엘살바도르에서는 어떻게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는지 묻자, 차베스 추기경은 “평화협정에 서명했지만, 아직 화해는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차베스 추기경은 “아직 로메로 대주교를 암살한 이들에게 사법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면서도 “저희가 말씀드리는 것은 복수심을 갖지 말고 용서를 먼저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진실, 정의, 용서, 화해, 그리고 복구가 필요합니다.”

이밖에도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신정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 비센테 에스페체 질, 강원택 서울대 교수, 이정호 성공회 신부, 홍용표 한양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루카스 반 루이 주교(벨기에 겐트 교구) 등이 참여해 ‘평화의 실천’,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의견을 냈다.

오질루 페드루 쉐레 추기경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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