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전직 외교관 필립 맥도나 인터뷰

시에라리온,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분쟁 속에 평화를 다시 세우고자 힘썼던 두 천주교 신자가 한국에 다녀갔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사목했던 조르조 비구치(Giorgio Biguzzi) 주교와 아일랜드 출신의 외교관이자 작가 필립 맥도나(Philip McDonagh)다.

지난 3월 7-9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비즈니스 및 종교 평화상’ 시상식에 참가한 두 사람은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이들의 경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견을 내놓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들의 인터뷰 기사를 2번에 나누어 싣는다.

 

필립 맥도나는 1994-99년 영국 주재 아일랜드대사관에서 일하며 성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는 과정에 참여했다. ⓒ강한 기자

아일랜드 출신 전직 외교관 필립 맥도나는 지난 3월 7일 서울에서 한 강연에서 “성금요일 협정은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역사적 돌파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교훈들을 한국을 비롯한 다른 분쟁지에서도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 분쟁을 크게 누그러뜨리고 폭력을 없앤 것으로 평가 받는 1998년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은 이 협정이 체결된 도시 이름을 따 ‘벨파스트 협정’으로 불린다. 아일랜드가 독립한 뒤에도 영국의 일부로 남은 북아일랜드는 유럽의 대표적 분쟁지였다. 그러나 영국,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정당 대표들 사이에 맺은 성금요일 평화협정은 이들 세력 간의 분쟁을 조절할 협의기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3월 9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도 필립 맥도나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 대해 4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이 잘 아는 ‘희망’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평화체제는 ‘단계별’로 가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기에,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면 지켜야 하고, 단계를 밟아 만드는 평화가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기다.

“상대가 우리 편이 된 것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비유하자면, 남편과 아내는 운명공동체가 되지만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부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듯, 상대가 꼭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내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오랫동안 고립돼 온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넷째는 넓은 맥락을 보고 넓은 의제를 갖는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는 섬나라지만, 내부 상황뿐 아니라 유럽 상황까지 넓게 봐야 했고, 한반도 상황도 일본, 러시아, 미국을 포함한 확대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9일 서울에서 필립 맥도나와 강주석 신부(왼쪽에서 세 번째) 등 인터뷰 참가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강한 기자

필립 맥도나는 1994-99년 영국 주재 아일랜드대사관에서 일하며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했다.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인도, 교황청, 핀란드,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서 대사로 지냈고, 시와 희곡을 쓰는 작가다.

성금요일 협정이 추진된 1990년대 후반에 그는 영국, 북아일랜드 지도자들과 아일랜드 정부의 만남을 설득하는 일에 가장 힘썼다고 했다. 그 밖에도 감옥에 갇힌 정치범들과 만나고,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장로교 등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가 모이는 대화 모임에 참여한 것도 그때의 경험이다.

그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그리스도교 국가이기 때문에, 신학에 바탕을 둔 토론도 중요했다고 설명하며, 한국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점, 보편적 이상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 맥도나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조르조 비구치 주교와 함께 강주석 신부(의정부교구)의 안내로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다녀왔다. 방한 기간 중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대화한 것, 그리고 한국의 기업가들이 이윤 창출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단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좋은 관계, 공동체 의식을 포함하는 긍정적 평화”를, 그리고 난민과 이주 문제를 겪는 유럽 경험에서 볼 때 다양한 사람을 통합하는 “여정으로서의 평화”를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를 군대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군사기술과 군비 증강이 세계에 안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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