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되는 앎, 중세 정치존재론 - 유대칠]

-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11

누군가 홀로 웃고 있을 때, 그 웃음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웃음이란 함께 웃을 때, 그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외로운 웃음은 웃음이 아니란 말이다. 더불어 웃어야 한다. 그때 웃음은 진정 웃음의 가치를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요즘 공동선이 문제다. 교회 안과 밖으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바로 ‘공동선’이다. 혼자만 웃고 살자는 생각은 참 무섭다. 자연스럽게 타인의 울음에 소홀해지고 곧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몇만이 웃고 많은 이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회를 두고 좋다 말하진 않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공동선을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완성을 보다 완전하고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체”('사목헌장', 26항)라 했다. 

개인의 자기완성을 위한 사회생활의 조건이 공동선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웃을 수 있다는 조건 속에서 그 구성원의 자기완성도 가능할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그 당연함이 상식이 되고 일상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생각해 보자.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해 한 장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했는가? 1215년 6월 15일 영국에서 있었던 '대헌장'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많은 민중의 분노를 대신하여 싸우고 희생했는가? 당장 우리네 역사에서도 일제 강점기와 독재의 시간을 지나며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의 존재를 헌신하며 우리의 존재를 생각했던가? 

'토마스 아퀴나스', 베노초 고촐리 외.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진정 홀로 웃고 살자는 마음이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자신이 홀로 아파하고 그 아픔으로 모두의 기쁨이 되는 헌신의 삶, 어쩌면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교회가 바로 그 기적의 중심에 서 주길 원했다. 홀로 웃는 교회가 아닌 함께 웃는 교회가 되어 주길 원했다. 다시 오캄의 이야기를 하자.

교황 요한 22세는 교회 조직 재정비에 기여했다. 정비되지 않은 교회의 재정, 사법, 행정의 3대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 인하여 떨어진 아비뇽 교황청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교회법의 권위자로서 '클레멘스 5세 교회법령집'을 내기도 했다. 교황의 삼중관에 띠를 둘러 장식하기도 했다. 무엇인가 화려하고 거대해지는 교회는 참으로 요즘 말로 ‘있어 보였다.’ 가난과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교황권을 높이 보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1323년 시성한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다른 철학 명제를 가졌다며 일부 금지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요한 22세에 의하여 부활된다. 

교황권을 높일 이론적 명분이 필요했던 것일까? 철학을 갖추고 재정적으로 법적으로 질서를 잡혀 가는 교회로 보였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 심지어 힘없고 나약한 민중 역시 하느님 가운데 하나의 존재론적 형제라는 에크하르트의 철학 31개 명제는 단죄된다. 강력해진 교황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오캄과 파두아의 마르실리오와 대립하였다. 오캄과 마르실리오는 강력한 교황에게 교황권 자체가 너무나 과도하며 일부분 월권이라 하였다. 당연한 거대한 교회, 강력한 교회, 그리고 그 정점에 교황이 있어야 한다는 이와 이들의 생각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캄과 마르실리오와 같이 거대한 교황권에 대하여 회의하던 단테가 "신곡"을 쓸 당시의 교황도 요한 22세다. 실제로 단테는 자신의 "신곡"에서 첼레스티노 5세, 보니파시오 8세 그리고 니콜라오 3세, 클레멘스 5세와 함께 같은 시대의 교황인 요한 22세를 '지옥편'에서 비판했다.

그저 보기에는 화려하고 커져 가는 교회이지만,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친인척 중용이 일종의 관행이 되어 갔다. 성직 매매 역시 심해졌다. 자신과 같은 프랑스 출신의 추기경들이 상당한 권력을 누렸다. 로마 귀환에 대한 노력도 없었다. 그저 아비뇽에서 있어 보인 채로 있고자 하였다. 화려한 확장과 함께 분명히 있어 보인다. 몇몇 교회사는 바로 그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 많은 민중에게 그는 금전 갈취의 귀재이며 과도한 징세를 고안한 인물이며, 법을 강화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친인척의 타락과 성직 매매가 성행하던 시기의 교황으로 기억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삽화 중 하나. (이미지 출처 = es.m.wikipedia.org)

오캄의 유명론은 경험 사실을 중시한다. 그 경험의 주체는 개인이다. 국가와 교회로 보면 한 국민이고 신자다. 그들은 추상적 단어인 교회가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의 옆에서 함께 울어 주고 분노할 때 ‘우리’라는 말로 수식한다. 즉 우리 교회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는 말 자체로 그저 말일 뿐이게 된다. 실질적인 기능이 없다면 말이다. 

교회는 추상물이라 아파하지 않는다. 아파하는 것은 그 추상적 단어로 서술되는 구체적 개인들이다. 그 개인의 아픔을 온전히 교회의 아픔으로 여기고 개혁할 때 교회는 그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에게 참으로 ‘우리’라는 말로 수식될 자격을 가지게 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인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아픔이다. 14세기 초, 교회는 그 아픔을 덜어 주기보다 홀로 웃으려 했다. 보이기는 화려하고 조직적 재정비이지만, 도덕적 타락 앞에서 스스로 거대하다 웃고 있지만, 그저 홀로 웃는 웃음일 뿐이었다.

21세기 한국을 본다. 여전히 이 시대의 개인은 아프다. 과거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몰라 죽었다. 적어도 유럽의 중세 병원은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그 역시 교회의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병의 치료 방법을 알아도 돈이 없어 죽어간다. 중세의 흑사병과 다른 또 다른 잔혹한 병이 온 나라를 아프게 하고 많은 청춘이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이때 이 아픔 앞에서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이 시대 교회를 두고 무엇이라 기억할 것인가? 희망원의 비극적 죄악 앞에서도 무시당한 이들의 눈물을 기억할지 모른다. 교회의 많은 죄 앞에서 너무 따지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자며 사과 없는 용서를 이야기한 이들의 가식을 기억할지 모른다. 이윤을 위하여 고민하고 고민하며 거대한 교회가 되어 가려는 성직자들의 화려함을 기억할지 모른다. 오캄은 말한다. 쓸데없는 것은 치우라고 말이다. 본질에 충실하기도 바쁘니 말이다.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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