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의 날', '4.3 70주년', 농어촌 이주민 지원 등

천주교 주교회의가 올해 11월 19일에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내고 내년은 '평신도 희년'을 선포하기로 했다.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에서 열린 2017년 추계 정기총회의 주요 결정사항은 “연중 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정, 2018년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50주년 기념 ‘평신도 희년’ 선포, 매년 우선적으로 선택할 사회적 약자 선정과 적극적 사회참여, 제주 4.3사건 70주년 기념 프로그램 진행, 주교회의 위원회 명칭 변경 및 개편” 등이다.

주교회의는 먼저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한국 교회는 올해부터 연중 제33주일에 지내고, 구체적 사목 방안은 각 교구장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33주일에 지내던 ‘평신도 주일’은 2018년부터는 제32주일로 옮겨 지낸다. 대림 3주일에 지내던 ‘자선 주일’은 유지된다.

이와 관련해 주교회의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제정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한 이들을 수혜자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을 강조하고 단지 하루의 행사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한국평협이 내년에 설립 50주년을 맞아 ‘평신도 희년’을 선포해 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주교회의는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를 위해 평신도 희년의 전국적 거행 계획을 승인하고, 교황청에 전대사 수여를 청원하기로 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에 대해 “한국 교회는 평신도로부터 시작됐고, 지금까지 평신도의 힘으로 성장, 발전해 왔다”며, “평신도들을 깊이 격려하고 기운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고 적극 승인과 추진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 교회가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그 대상을 해마다 선정해 구체적 사회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평위는 올해는 그 대상을 ‘농어촌 이주민 노동자’로 선정했다.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에서 2017년 추계 정기총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대주교는 이에 대해 “매년 우리 사회에서 배려받아야 할 이들이 누구일까를 논의해서 시기 별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평위는 ‘농어촌 이주민 노동자’가 처한 제도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특히 근로기준법 63조 폐기를 위한 활동을 제안했다. 63조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 시간과 휴게, 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를 규정하는데,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농림, 축산, 어업이 주 대상이다. 

또한 이번 총회에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1948년 발생한 제주 4.3사건 70주년을 계기로 분단의 종식과 민족 화합을 위한 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했으며, 주교회의는 이를 받아들여, 2018년 4월 3일을 전후해 기념 주간을 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또 이번 회기로 임기가 끝나는 임원을 새로 선출했으며 일부 전국위원회의 명칭과 조직 개편과 위원장 선출을 진행했다.

먼저 주교회의 의장, 부의장, 서기는 각각 김희중 대주교, 장봉훈 주교, 이용훈 주교가 연임됐다.

조직개편으로는 그동안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노동소모임이 ‘노동사목소위원회’로 승격됐고, 가정사목위원회와 생명운동본부가 ‘가정과 생명위원회’로 통합돼, 이성효 주교가 위원장을 맡았다. 이는 교황청 기구변경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또 매스컴위원회는 사회홍보위원회, 문화위원회는 문화예술위원회, 복음화위원회는 복음선교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산하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는 ‘순교자 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로 분리, 신설돼 김선태 주교가 위원장을 맡았다. 또 서울대교구 구요비 보좌주교는 수도회를 담당하게 됐다.

이같은 변경에 대해 주교회의는 “각 위원회 활동의 효율과 시너지 효과를 위한 결정이며,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다 폭넓고 구체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하고, “특히 노동소위가 신설된 것은 노동사목에 대해서도 교회가 더 챙기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이 밖에 주교회의는 교리교육위원회가 신자 재교육 교리교재 필요에 따라 마련한 ‘신자 재교육 교리 상식 2권 – 성사편’을 승인했고, 전례위원회가 제출한 ‘가톨릭 기도서’ 개정안을 승인했다. 승인된 ‘가톨릭 기도서’에는 한국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구원을 비는 기도’가 그대로 실리며, ‘로마 미사 경본’ 출간 뒤 발행된다. 새로 출판 예정인 혼인예식과 장례 예식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또 2018년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한국청년대회 참가 대상을 만 16살(고등학교 1학년)부터 39살로 넓히기로 했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세계 자비의 사도직 대회를 위한 연락 담당 주교로 복음선교위원장 배기현 주교를 선출했으며, 2020년 헝가리에서 열리는 세계성체대회 참가자로 장신호 주교가 선출됐다.

주교회의 의장에 연임된 김희중 대주교는 19일, 정기 총회 결과와 교회 안팎의 사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정현진 기자

주교회의 의장에 연임된 김희중 대주교는 결과 발표 자리에서 지난 대선 이후 변화된 정치,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른 교회의 소임에 대해, “지금까지 사회적 병리현상이나 정치적 혼란 등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혀 왔다. 변화가 있는 만큼 앞으로는 보다 영성적이고 정신적 측면에서 문화적 순기능을 고양할 수 있고, 특히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희망을 찾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회 내 울타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교회의 소명은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회적으로는 시민들이 문화의 순기능을 만끽하도록 교회가 문을 열고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교회의 소임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 아조르나멘토(적응)는 여전히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사회적 현안과 관련 특히 북핵과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먼저 핵에너지 개발로 유익한 점도 있겠지만 위험요소가 훨씬 많다고 판단하며, 에너지 정책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삶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남북 관계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조건을 달지 않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신뢰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하면서, “핵포기 선언을 전제한 대화 제의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대화는 전제나 목표 없이 신뢰를 바탕으로 충분히 한 뒤에,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이뤄 가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또, 일각의 “전쟁도 불사한다”는 목소리를 크게 걱정하며, “너무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전쟁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생존과 승리가 절대선인 전쟁은 인간의 윤리, 품위, 존엄을 의미 없게 만들며, 어떤 승리도 승리가 아니라 공멸이다. 전쟁 불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희중 대주교는 교회의 현안에 대해서, “(쇄신의 기준은) 초대 교회의 정신과 공동체의 모습이 필요하다”며, “한국교회의 쇄신과 영적인 성장을 위해 가진 것을 서로 내놓고 필요한 것을 함께 쓰는 공동체,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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