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인천성모병원, 대구 희망원, 성가정입양원, 대구 파티마병원, 청주 사제 폭행사건, 충주성심맹아원 등 교회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며, 요즘은 천주교 신자임을 떳떳이 드러내는 것조차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하다.... 교회로 인해 상처받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에도 귀기울여 주시고 소통해 달라”(“김은순 씨의 1인 시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 08. 31.) 전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김은순 씨가 청주교구장 주교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는 현재 세월호 충북대책위원, 핵없는 사회를 위한 충북행동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교회 안팎에서 정의평화, 인권 활동을 활발하게 해 오고 있다. 이번에는 그의 공동선을 위한 관심과 비판이 교회를 향하는 듯하다. 그는 지난 8월 25일부터 청주교구청 앞에서 대형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해 왔다. 피켓에는 청주교구가 운영하는 충주성심맹아원에서 2012년 11월 8일 “11살 김주희 양이 학대, 구타, 타살의 흔적을 남기고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며 “장애인 인권 보장,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지금여기>에 따르면 청주교구에 김은순 씨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이 없었고, 교구청 한 관계자에게서 현재 교구는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교구장 주교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배상하여 그 실수를 통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성숙한 교회의 모습”을 요구했다.

최근 천주교회가 운영하는 사업장과 관련한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중매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김 씨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사실 그가 요구하는 소통과 대화는 청주교구 산하 ‘충주성심맹아원 김주희 양 사망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편지에서 보듯이 그가 열거한 사건들은 대구, 인천, 청주 등 여러 교구에서 일어난 것이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대구 희망원; 2016. 10. 09, 충주맹아원; 2017. 08. 12.)라는 잘 알려진 탐사보도방송에도 나올 만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교구에서도 교구장이 피해자나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들과 대화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대화나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나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8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충주맹아원 김주희 양 사망 사건 가운데 한 장면. (사진 출처 = SBSNOW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노조와 시민사회에서 교구장과의 소통과 대화를 몇 년째 요구해 오고 있는 인천성모병원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2014년 7월 인천성모병원은 노조지부장을 국제성모병원의 의료급여 부당청구를 제보한 것으로 지목해 압박했고, 이 일은 노조탄압 문제로 이어져 노조와 병원, 인천교구 간의 갈등으로 불거졌다. 그 과정에서 지부장은 병원관리자들의 ‘괴롭힘’에 실신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했으며, 결국 법원에 ‘집단괴롭힘’ 소송을 냈다. 법원은 2017년 1월 노조지부장에 대한 병원관리자들의 ‘집단괴롭힘’ 혐의를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노조지부장에 대한 집단괴롭힘이 ‘상부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위법행위’라며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장(염수정 추기경)과 병원장(이학노 신부), 또 괴롭힘에 연관된 병원관계자 2명에게 책임을 물어 99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인천성모병원 노조탄압 집단 괴롭힘, 유죄 판결”, <가톨릭 프레스> 2017. 01. 24.)

<가톨릭 프레스>에 따르면, 이 일이 있기 전 노조와 시민대책위는 인천교구 답동주교좌 성당 입구에서 단식 농성, 병원 앞 1인 시위, 촛불 집회, 바티칸 원정 투쟁 등을 하고, 수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교구는 이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해 5월에 대법원은 병원 측이 ‘성모병원 시민대책위’ 대표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시민단체들은 병원 측이 무리한 법정소송으로 성모병원 사태를 무마하려는 꼼수가 철퇴를 맞았다며, 병원운영주체인 인천교구가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임 교구장도 아직 시민사회나 노조와의 대화나 소통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어려운 것일까?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친교의 공동체’로서 그 안에서는 누구나가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평등한 공동체’라고, 그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이라고 배웠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론과 실제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는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주교와 만나기가 어려워진 것일까?

언제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권위주의적으로 바뀐 걸까? (사진 출처 = 굿뉴스 홈페이지)

한국 천주교회가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한 것은 오랜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대 주교회의가 교회 내 사회운동 단체를 대한 태도에서 결정적이고 여실하게 드러난다. 1987년 춘계 주교회의 총회에서는 한국천주교평신도 사도직협의회와 한국가톨릭농민회의 회칙 승인의 취소 및 잠정적 활동정지를 명령하고 또 전국 가톨릭대학생총연맹에 대해서는 주교회의가 인정한 바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교회 내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사회운동 조직과 ‘비공인’ 단체를 거의 ‘무장해제’ 수준으로 몰아갔다. 이어 같은 해 추계 총회에서는 평신도 중심체제로 운영되어 온 정의평화위원회 대표를 주교로 바꾸고, 평신도가 맡아 왔던 사무국장을 사제로 전격 교체했다. 1987년 한국판 ‘피플 파워’라 할 수 있는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를 축하하고 있을 때,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권위주의적 체제가 재정비되어 마치 견고한 요새처럼 소통과는 거리가 먼 체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강인철, "종교권력과 한국천주교회",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8, 330-348)

아마도 그 뒤부터 이 ‘소통 장벽’이 지극히 높아진 듯하다. 평신도 개인 또는 단체가 급박한 사정으로 주교를 만나거나 소통해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총무 사제를 거쳐야 하는 관료주의적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 과정은 마치 봉건시대 영주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목자이기 위해서는 이런 권위적 구조에 기대어 대화와 소통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대화와 소통에 나서는 자비로운 지도자여야 하지 않겠는가.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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