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온 나라를 강타하고 권력이 구조화한 곳에서는 여지없이 ‘나도 말한다’며 고소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가톨릭 교회에서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와중에 최근 두 교구에서는 사제의 정직 문제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회자되고 있으니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잘 알려진 탐사보도에 실컷 얻어 터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봄부터 술렁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얼핏 보면 사제직을 잠시 그만두게 했다는 것은 ‘내부’ 문제이고 밖에서 왈가불가할 일이 아닐 것 같은데 파장이 교회 담을 넘어가는 것은 그만큼 사회와의 연관성이 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두 인사발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라 보인다.

한 교구에서는 “교구 쇄신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A4 14쪽 분량의 문건을 쓰고 이를 공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징계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한편 또 다른 교구에서는 해당 교구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실세로 12년 동안 병원을 운영해 오면서 이 사제가 저지른 각종 불법영리행위, 배임, 세금 탈루의혹 등을 들어 정직으로 인사발령을 냈다가 얼마 뒤 아예 사제 옷을 벗겨 버리는 면직을 결정했다. 그동안 무수한 시민단체가 병원의 실질적 대표인 주교와의 면담을 요구해 왔음에도 전혀 반응이 없다가 언론에 회자되자 부랴부랴 정직 2달 만에 면직까지 일사천리로 치달았다. 과연 이 두 교구의 인사는 만사인가?

두 교구의 사안은 이렇게 다른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인사권자가 주교라는 점이다. 교구쇄신을 요청한 정은규 몬시뇰은 문건에서 어떻게 교구를 쇄신할 것인가에 대해 자세하고도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에 못지않게,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현 대교구장의 리더십에 대한 신랄하고 통렬한 비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정 몬시뇰은 “교구내 모든 문제들의 근원은 바로 대주교님의 영도력 부족이라는 사실”이라고 돌려 말함 없이 직접 조준했다. 이어 “주교의 영도력, 리더십은 인간적인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주교의 영성적 깊이, 도덕적 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출발하고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이 세 가지 근본 문제가 모든 지엽적인 문제의 근원지라고 비판했다. 그가 지적한 문제들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본 칼럼에서 논의한 교회쇄신의 내용과 비슷하므로 이미 매체들에 보도된 언론자료를 참고하라고 권한다. 다만 여기서는 앞서 말한 세 가지 근본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하는 데 만족하기로 한다.

정 몬시뇰은 “교구 곳곳에서 드러난 대주교님의 무능과 판단력 및 식별력 부족, 의사결정 능력의 결함과 그것들을 감추시려는 권위주의의 발로 및 대주교님의 성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고 보았다. 또 “교구에 수많은 비복음적 문제들이 있고, 인사쇄신을 요청했지만 거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문건을 가지고 대주교와 면담까지 했으나 대교구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기사1)에 따르면, 정 몬시뇰은 면담 이후 대구 희망원사태 등을 처리하는 과정 등을 보며 대주교에게 쇄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교구는 그에게 정직 처분을 내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공지문을 내 입장을 밝혔다. 정직의 이유는 이렇다. “정직은 (그가) 4년 전 올린 진정서 때문만이 아니라 이번에 (정 몬시뇰이 그) 문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발신인을 숨긴 채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위 기사 참조) 4년 전 올린 진정서는 앞서 말한 14쪽짜리 교구쇄신 요청문건(2014.04.23)을 말한다. 내가 이탤릭체로 강조한 ‘진정서 때문만이 아니라’는 대교구가 이 ‘문건이 사실이 아닌 허위’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며 이를 유포해 “교구 안팎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원인”과 더불어 정직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인천성모병원. ⓒ강한 기자

인천성모병원은 시민단체에 ‘환영’을 받기까지 한 점에서 정 몬시뇰 경우와는 달라 보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로 줄임)은 지난 2월 23일 “박문서 신부의 신부직을 박탈하는 면직 처분은 사필귀정”이라는 제목의 논평문을 내고 “이를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논평문이 지적한 주요 문제를 짚어 보면 이렇다. 국제성모병원과 인천성모병원의 부원장이었던 박문서 신부는 위법적 환자유치활동, 업무시간 외 병원홍보활동 등 공격적인 돈벌이 경영 추구, 그 과정에서 건강보험 부당청구 의혹, 또 ‘엠에스피'(MSP)라는 개인회사를 만들어 병원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한 의혹, 뿐만 아니라 갖가지 형태의 ‘갑질경영’ 또 이를 문제삼는 노조에 대한 활동 방해 및 탈퇴 강요, 집단괴롭힘과 강제 해고 등 각종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주도해 왔다.2)

문제를 적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보건노조는 “국제성모병원과 인천성모병원의 비정상적인 문제 해결 없이 박문서 신부의 신부직을 박탈하는 면직 조치로 그친다면 꼬리 자르기가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박 신부의 면직은 인천성모병원 정상화의 시작점이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당연하며 옳은 지적이다. 이어 “인천교구와 인천성모병원, 국제성모병원이 박문서 신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직에서 면직까지 2달이 채 안 되는 짧다면 짧은 시간에 그러한 판단을 한 주교의 판단력은 대구대교구와는 얼핏 달라 보인다. 그러나 지난 4년여 동안 보건노조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인천교구장과의 대화를 요청해 왔지만 ‘모르쇠’와 침묵, 심지어 보건노조를 고발까지 했다가 취하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는 인사권자의 인사는 만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그 리더를 정할 때 다수인 평신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데에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동합의성’(synodality), 곧 교회의 민주화와 합리화가 시급히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다.

1) '대구대교구 정은규 몬시뇰 정직, 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8.03.06.
2) 자세한 내용은 보건노조 홈페이지 참고. http://bogun.nodong.org/xe/index.php?document_srl=484836&mid=khmwu_5_4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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