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천주교에도 서로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사제라면 누구나, 아무 때나 교구장 주교를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교구장이 그렇게 하릴없이 한가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계통을 밟아 면담을 신청하고 시간 맞춰 찾아가서 굳이 쓴소리 하려는 사제는 별로 없다. 그럴 정도로 교회와 교구에 대해 애정과 열정이 절절하지도 않고, 언제부턴가 해 봤자 소용없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기회만 되면 주교와 사제 간의 일치와 사랑을 주문해도 현실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일반 신자와 본당신부 사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교와 사제의 해명은 늘 판박이다. “네가 만나자고 하는데 거절한 적 없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나는 너희가 뽑은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깊이 공부하고 묵상한 사목자의 판단을 존중하라.” 그런가 하면 “직접 대면이 어렵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애써 만나야 할 만큼 한가하거나 절실하지 않다.”는 게 대부분 신자의 공통된 불만이요 핑계다. 성직자의 권위주의가 유별난 한국 천주교회가 주교에 대한 사제, 사제에 대한 신자의 순명을 강조해 온 서글픈 결과다.

한마디로 소통이 안 된다. 자유로운 왕래가 없고 명령과 복종만 남은 사회나 조직은 희망이 없다. 사목자에 대한 신자들의 상시적인 평가를 제도화하자는 이유다. 소통을 위해서다. 흐르지 못해 죽은 4대강을 살려야 하듯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 사목자에 대한 평가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제에 대한 주교의 평가는 엄연히 상존해 왔다. (객관적인 자료가 될 만한 평가서는 물론 아니다) 당연히 주교의 개인적 성향이나 관점이 판단의 잣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평가는 허용되지 않는다. 교구나 본당의 당면한 현안이나 구체적인 사업에 대해 사제와 신자들의 의견은 막무가내인 아이들의 투정쯤으로 묵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령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는 저 오랜 세습통치 사회가 연상된다.

신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사목자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임기가 없는 교구장 주교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씩 자신에 대해 사제와 신자들의 의견을 묻고, 사제는 2-3년에 한 번씩 신자들의 평가를 받도록 내규로 정하는 것은 어떨까? 정례적인 여론조사나 설문지의 배부 등이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응답자의 범위나 설문지 양식은 교회 안팎의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의뢰하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당분간 긴장을 풀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목자가 자신의 실수나 과오를 성찰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충고나 조언이 있을까? 계속해서 사목자들이 외부의 비판이나 평가를 거부한다면 과연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엉뚱한 길을 가는지 몰라 오판을 거듭할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사제들끼리 형제적 사랑으로....’는 실제로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우리나라에서 기성 종교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도 천주교는 아직....’은 너무 초라하고 구차하다. 결연한 의지가 요구된다.

호인수 신부의 '열린 교회로 가는 길' 시리즈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빛두레>에 실린 다음 주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전재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