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평화협정은 통치 아닌 삶의 문제

정전협정 64년 만에 정부가 처음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노력’을 선언했다.

평화협정을 위해서는 남북과 북미 관계, 남한 내부의 갈등, 한미동맹, 북핵 등을 동시에 풀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한 해법은 무엇이며, 정치, 외교, 군사적 차원의 절차와 정책 외에 평화협정이 왜 중요하고 어렵더라도 이뤄야 하는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공감대 형성에는 ‘평화’와 ‘화해’, ‘일치’를 가르치는 종교 특히 가톨릭 교회에 큰 몫이 있다.

평화협정 해결경로는 결국 6자 회담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진행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인 백장현 교수(한신대)는 평화협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요구가 해결되고, 안보와 이념문제에 따른 한국 내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과제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협정은 법적 조치일 뿐, 협정만 가지고 평화 체제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며, “협정 이후 당사자 간의 신뢰 관계가 법적으로 미흡하거나 담지 못한 민감한 쟁점을 채우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백 교수는 “평화협정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평화협정 자체에만 매달리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며, “협정은 북핵해결과 북미 간 국교 정상화 등이 해결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협정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북한 핵문제로 대표되는 최대 현안 자체가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며, 결국 북핵문제를 푸는 과정이 평화협정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협정의 가장 주요한 당사자 변수는 미국이다. 평화협정을 맺으려면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해결경로는 6자회담과 그 후 9.19공동성명 정신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회담 재개 조건은 북한 참석인데, 북한이 참석하려면 핵심 요구 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해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 ‘쌍궤 병행’”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동시에 한국과 미국은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쌍중단, 쌍궤 병행은 북핵 해결의 입구다. 중국의 적극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북핵폐기와 평화 체제 구축을 함께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평화협정이 주한미군 철수와 맞물리고 이것이 국내 보수층의 반발을 사는 것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먼저 평화협정을 제안하고 주도한 것과 주한미군철수를 그 전제로 뒀기 때문에 한국 보수층은 북한이 미군 철수 뒤 남침하려는 의도라고 아직도 생각한다”며, “미국의 입장도 평화협정을 맺으면 군사 동맹인 한미동맹이 깨지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 전 한미간 굳건한 동맹 관계, 공감대를 갖고 싶어 한다. 이런 미국의 우려를 고민해야 실제로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협정에 대해 방향을 잘 잡고 있지만, 한미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전이 평화협정의 골든타임이라면서, “다만 정부가 발표한 것처럼 군사회담이나 이산가족상봉으로는 북한을 끌어들이기 어렵다. 중국의 제안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평화협정은 다름 아닌 ‘민족의 화해와 일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새정부 들어 높아지고, 관련 시민단체에서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을 발빠르게 시작하고 있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응답해 지난달 추기경으로 서임된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에 나서도록 했다.

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지난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담화문을 내고 비정상적 분단 구조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요청했다. 앞서 2016년 춘계 주교회의에서는 전국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하도록 결정해 각 교구가 이를 실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도 지난 5월 바티칸 특사로 교황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서명운동, 한국 교회 차원의 방북 등 민간 교류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전협정은 곧 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다. 정전협정조차도 사문화된 상황이 유지된다면 늘 전쟁의 위험 속에 사는 것이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평화협정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행하지 못한 것을 마치기 위한 것이다.”

의정부교구 맹제영 신부는, 그동안 정치지형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평화협정에 적극 나설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회도 여의치 않았다면서, “올해 한국교회는 평화협정과 평화구축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한 책임도 있지만 평화체제를 위한 원년으로 보고 본격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맹 신부는, “각 교회 유관 단위에서 평화협정이나 평화 체제에 대한 담론을 교육, 홍보를 통해 신자들에게 소개하고 여론을 확산시키면서 교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 7월 26일 원불교 성주성지 대각전 앞 종교연합 평화기도회에 참석한 천주교 주교들이 사드 반대 단체 회원, 이웃 종교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강한 기자

“이제 평화협정은 통치, 안보의 문제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확산되어야 한다”

변진흥 전 한국평협 평화위원장은 그동안 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말을 써 왔지만 실제로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다며, “평화협정으로 남북한 상생과 협력 구조가 창출되면 교회는 그것을 뒷받침하고 복음정신으로 결실을 맺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전 위원장은 “통일은 삶이다. 결국은 우리 신자들이 통일의 삶을 살아야 하고, 평신도들이 남과 북의 구체적 삶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교회가 인도해 줘야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통일 사목보다는 통일 사도직 또는 평화사도직이라는 인식을 갖고, 각자가 사도로서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남한의 각 교구와 북한 행정구역이 연계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평신도들이 사도직 차원에서 구체적 계획을 만들고 실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어떤 이윤추구가 아니라 민족의 화해, 북한 지역의 복음화와 구원을 위한 접근이며, 복음적 관점에서 신뢰를 쌓고 함께 남과 북이 하느님나라를 만들어 가는 공동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이를 실천하려면 먼저 한국 교회의 구성원들이 성숙해져야 하고 복음화와 선교, 구원이 단지 신자 만들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그 과정 자체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고, 통일은 공통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적 가치의 실현이며, 복음적 접근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 전 위원장은 “통일이나 평화협정은 이전에는 통치의 문제로 일반 국민들과 동떨어진 일이었고, 삶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평화협정은 안보 위기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 삶으로 평화와 통일이 들어와 확산되는 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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