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정의평화상 20년 맞아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고 인권을 증진할 수 있는 것은 오르지 단결된 투쟁뿐이다.”

1974년 3월 10일 노동절, 지학순 주교는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3월 10일이 노동절이었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투쟁으로 얻은 것이다. 가만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학순 정의평화상 20번째 수상자 미르틀 위트부이(국제 가사노동자연맹 위원장)의 말에 지학순 주교가 겹친다. 지 주교의 말대로 가사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이끈 위트부이 위원장이 이 상을 받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지학순기념사업회가 지 주교의 뜻을 따라 정의와 평화에 헌신하는 이들을 찾아 상을 준 지 20년을 맞았다.

3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회 시상식에서 지학순정의평화기금 상임이사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전담)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지 주교의 공감이 지금 시대에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 버스 차장이 어머니의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 때문에 하루 300원씩 ‘삥땅’을 해 온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고백했다. 지 주교는 ‘버스 차장의 삥땅은 죄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 신부는 이에 대해 “당시 버스 차장은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했기에 삥땅은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며, 동시에 기업주의 불합리한 운영에 일침을 놓으신 것”이라고 말했다.

▲ 3월 14일 저녁 제20회 지학순 정의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배선영 기자

1997년 첫 회에는 민주노총이 상을 받았다. 그 뒤 여성 노동운동가였던 인도네시아의 이부 술라미, 파키스탄 정의평화위원회, 캄보디아 지뢰금지운동, 타이 노동운동의 리더 윌래완 새티에 등이 상을 받았다. 11회 때 상을 받은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는 이날 시상식에도 참석해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했다.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는 상을 받은 지 1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법률자문, 노동자교육, 실태 조사 등을 하며, 현재는 산업안전 보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필리핀에는 삼성 같은 한국의 대기업 하청 공장이 많다. 삼성 반도체노동자 문제의 문제는 곧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여겨 연대할 방법을 찾고 있다.

▲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75년, 석방되는 지학순 주교. 바로 뒤의 안경 쓴 이는 김수환 추기경. (사진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날 행사에 오진 않았지만,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은 “지학순 정의평화상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 증진시키며 우리가 사는 터전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사람을 격려하고 연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20년간 이 상을 받은 사람들은 오늘도 인권과 평화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며 그들의 땀이 정의로운 강물이 되어 세상에 넘쳐흐르길 바란다고 했다.

지학순 주교는 초대 원주교구장으로, 1971년 원주교구 평신도, 수도자, 사제를 이끌고 원주 원동 성당에서 3일간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 대회’를 여는 등 독재에 맞섰다. 교회 내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가 박정희 유신독재 하에서 15년 형을 선고 받은 것이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들어진 계기다. 평생 노동자와 농민 운동을 지원했으며, 원주교구에서 사회복지, 협동조합이 활성화된 데도 지 주교의 역할이 컸다.

지학순 정의평화상은 각 나라의 억압적 사회구조에서 자유, 평등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상금으로 2만 달러를 지원한다. 20년을 지속하면서 아시아에서 인권 평화운동에 관한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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