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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사노동자도 근로계약서 써야 한다국제 가사노동자연맹, 지학순 상 수상
배선영 기자  |  daria20120527@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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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4  17: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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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정부는 노동자가 아닌가?”

미르틀은 물었다. 왜 나는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착취당해야 하나? 그의 고용주는 “그게 법”이라고 답했다.

이 답에 만족하지 않고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미르틀 위트부이(70). 그가 위원장인 국제 가사노동자연맹(IDWF)이 제20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받는다. 한국을 찾은 미르틀과 포브숙 가싱(타이 이주노동자조합 홍콩위원장)을 만났다.

미르틀의 삶은 곧 가사노동자 노동운동의 산 역사였다.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르틀은 20살부터 백인 유대교 집안에서 가사노동자가 되었다. 주 7일을 일해야 했고, 집에는 일 년에 한 번 갈 수 있었다. 6시 이후에는 통행금지가 있었으며, 가사노동자증을 꼭 가지고 다녀야 했다. “마치 유색인종이 바다에 들어가면 물의 색이 변한다는 듯이” 백인과 같은 바다에서 수영할 수 없는 시대였다.

가장 힘든 것은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첫딸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이를 친정에 보내야 했다. 자신의 딸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했던 고용주는 미르틀이 딸과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미르틀은 11달간 딸을 보지 못했다.

당시 법은 가사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미르틀은 이 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나의 법이 아니다. 가사노동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법뿐 아니라 당시 사회 분위기는 인종차별, 여성차별이 일반적이었고, 가사노동자 스스로도 열등하고 무식한 존재라고 자기비하를 했다. 미르틀은 교육이 절실하다고 여겼고,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 오후 3-4시에 가사노동자들을 모아 읽고, 쓰기 등 공부를 가르쳤다. 이때 가톨릭 사제들도 교육에 도움을 줬다.

당장 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사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의 경험을 나눴다. 이런 결속으로 가사노동자 모임도 커졌다.

“가사노동자는 부잣집에서 일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노동자다.”

   
▲ (왼쪽부터) 국제 가사노동자연맹의 팽(지역 코디네이터), 포브숙 가싱(태국 이주노동자 조합 홍콩 위원장), 미르틀 위트부이. ⓒ배선영 기자

1994년 넬슨 만델라의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가사노동자는 여전히 주 7일 일했고, 가난했다. 인종차별 금지를 위해 함께 싸웠던 정부지만, 정부를 상대로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미르틀 위트부이가 가사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한 지 50여 년, 그는 지금 남아프리카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가사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장된다고 자부한다.

현재 남아프리카에서 가사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법적으로 같은 권리를 가진다. 주 5일 노동, 추가수당, 병가와 경조사 휴가, 실업수당을 보장받는다. 5시간 일하면 쉬고, 매년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그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남아프리카 가사서비스와 협력노동자조합’(SADSAWU)은 남아공 최대 노동조합 중 하나다. 다만 고용주가 보험료를 내길 거부해 산재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SADSAWU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미르틀은 곧 산재보험 적용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성취는 투쟁으로 얻어 낸 것이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다. 미르틀은 이때를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한다. ILO 안에서도 가사노동자는 가장 무식한 이들로 인식되었으며, 발언권도 없었다. 3년간 공을 들였고, ILO에서 처음으로 가사노동자의 이야기가 퍼졌다.

이때 이미 60대 중반인 미르틀은 은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ILO의 협약에 비준한다고 해도, 국내법에 적용하도록 해야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기에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 현재 23개 나라가 이 협약에 비준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이 유일하다.

그가 평생 애써 온 가사노동자의 권리와 연대는 국제 가사노동자연맹(IDWF)이라는 국제 연대로 결실을 맺었다. 처음 연맹을 만들 때 여자들이 무슨 연맹이냐며 무시도 받았다. 그러나 여자가 주도한 IDWF는 현재 47개 나라가 회원으로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속해 있다.

미르틀은 IDWF가 법이나 노동권 측면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가사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밤중에 도와 달라는 전화에 도와줄 수 있는 “가사노동자의 가정”이 되고 싶다고 했다.

   
▲ 홍콩에서 가사노동자가 창문을 닦다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IDWF는 이에 대해 주의하는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만들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배선영 기자

한편, 현재 IDWF는 이주 가사노동자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이주노동자가 서비스영역에서 일할 수 없지만, 이주 가사노동자는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홍콩에서 타이 이주 가사노동자 조합을 맡고 있는 포브숙 가싱은 이들이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열악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 때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어서 조직하기도 어렵다. 임금의 대부분을 중개수수료로 주고 정작 자신에게 남는 게 없는데도 방법이 없다.

가싱은 중동 국가에서 이주 가사노동자의 인권침해 상황이 가장 심각하며, IDWF가 직접 방문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사노동자도 당당한 노동자이며, 표준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사노동자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적용범위를 규정한 조항에 가사노동자를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근로기준법 적용범위에서 가사노동자를 배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ILO 가사노동자 협약을 비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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