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동, 서 교회는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교회임에도 부활절을 같은 날짜에 거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날짜가 다른 동방 지역 교회도 있고요. 고백건대 저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지요. 뭐.... 몰랐다기 보다는 그냥 제가 머물러 온 가톨릭 교회의 전통만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제 상식 범위가 확장된 것은 파리에서 사제품을 준비하던 신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머무는 공동체 근처에 서유럽으로 이주한 러시아 이민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봉헌되는 성탄절과 부활절 미사가 로마 교회의 날짜와 다르다는 것을, 그 앞을 오가며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 성탄 무렵의 동방정교회.(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때 전례학 교수님께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답이 의외로 간단명료했지요. 달력이 달라서였습니다. 결국 문제는 다른 달력을 사용하는 이유를 알아야 해결될 것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상하게는 전통, 쉽게는 고집 때문에 생겨난 차이로 보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흥미로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동방교회와 대화하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로서 지속적으로 서로의 일치감을 강화하기를 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동, 서 교회가 같은 날에 부활절을 기념할 수 있는지를 적극 검토해 보려는 뜻을 비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성사된다면, 430여 년 전에 견해차로 달라졌던 축제를 같은 날 동, 서 교회 신자들이 다 함께 기념하는 뜻깊은 사건이 벌어질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한 전례력(혹은 교회력)의 차이는 각 지역교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거론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부활절과 성탄절에 관한 것은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보는 것이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부활절의 날짜를 정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고 합니다. 아주 다양한 의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크게 두 갈래였지요. 그리스도의 부활 날짜는 유대교의 파스카(과월절 혹은 유월절) 축일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의견과 파스카 축일에 이어서 오는 첫 일요일(주일)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던 것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났냐면, 신학적 의미부여에서 견해차가 났기 때문입니다.

유대력으로 파스카 축일은 히브리력 1월인 니산(Nisan) 달 14일입니다. 춘분 이후 첫 보름달('파스카 보름')이 뜨는 날이라고 합니다. 소아시아 지역(그러니까 요즘의 터키 지역) 교회는 이 날을 부활 축일로 지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간 날(파스카)을 기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니산 달 14일(첫 보름)을 지나서 처음으로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주장하는 의견은 예수님이 이 주간의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일요일이 신앙인들에게는 주님의 날(주일)이 된 것이고요.

이런 연고로, 교회 초기부터 각 지역 교회는 두 날짜를 알아서 기념해 왔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대교의 파스카 축일에 맞춰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파스카 축일을 지난 일요일에 맞춰서 말입니다. (혹시나 이 교회들의 이름은 뭐지...? 하시는 분들은,“가톨릭 전례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두 날짜에 부활절을 기념하다가 날짜에 합의를 본 것이 니케아공의회(325년) 때였습니다. 이때 결정된 것이 앞서 설명했던 두 날짜 중 후자였습니다. 그러니까 '파스카 보름' 지나서 처음으로 오는 일요일로 정해진 것이지요. 혹시 혹시 공교롭게도 파스카 보름이 일요일이면, 이날을 부활절로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 뒤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합니다. 이리하여, 히브리력에 맞춘 유대교 축일과 겹치는 것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오늘날까지 여파를 미치는 불일치가 생긴 것이 그레고리오력(그레고리오 13세가 주도해서 붙여진 이름)이 선포된 1582년입니다. 그전까지 사용하던 율리오력(로마의 율리오 황제가 만든 달력)이 누적되다 보니 춘분 날짜에 오차가 심하게 생겼던 것입니다. 실제로 1582년에 율리오력으로 춘분이 3월 11일이었고, 그레고리오력으로는 3월 21일이었다고 합니다.

춘분 날짜가 조정되었으니 이걸 따르는 게 합리적일 듯한데, 로마 교회(서방교회)를 뺀 동방정교회 계열 교회들은 율리오력을 고집하면서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뭐... 그도 그럴 것이, 1054년 동, 서 교회는 다양한 문제로 이미 갈려 있었으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제 기억엔 동방정교회의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로마 가톨릭보다는 늦었습니다. 참고로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간 개신교는 부활절 날짜가 그레고리오력에 기준을 두고 있어서, 로마 교회와 같습니다.

동, 서 교회가 성탄절(Christmas,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의 날짜에 차이가 나는 것도, 달력이 달라서 입니다. 그러니까 율리오력과 그레고리오력의 시차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동방정교회가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이 아닌 다른 날에 기념하지는 않습니다. 동방 정교회 중에서도 러시아와 세르비아 정교회만 1월 7일에 기념하고 있고, 동방 가톨릭 중에서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1월 6일에 축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4세기부터 율리오력으로 정해진 날짜는 12월 25일이었다고 하니, 앞의 세 지역교회만 빼고는 지금까지 12월 25일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교회 초기에는 더 많은 동방교회가 다른 날짜에 성탄을 기념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의 지역에서는 380년부터 1월 6일에 성탄절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이 해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해인데, 시기적으로 황제의 칙령이 발표된 2월 28일 보다 1월 6일이 먼저니까 직접적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성탄과 주님공현이라는 사건이 중첩이 되어 있기에, 유럽에서는 1월 6일을 ‘작은 성탄절’ 혹은 ‘옛 성탄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식체계에서도 두 사건을 구분하여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목자 및 동방박사들의 방문이 사실상 시차 없이 어우러져 있는 상태인지라, 성탄절 구유 장식을 보면, 보통 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탄과 주님 공현이 사실상 동시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지요. 게다가, 주님이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낸 사건으로 치자면, 주님의 세례 사건도 잇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탄, 공현, 세례가 전례력에서는 연작 세트로 묶여 있습니다.

예수님도 정확히 알고 계실 거라 말할 수 없는, 그분의 생일이 이 날짜로 정해진 배경에는 과학적인 추정이 아니라 로마인들의 전통 축제를 로마제국 안에서 힘을 얻게 된 그리스도교가 대체해 들어간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이전에는 12월 25일이 로마인들이 전통적으로 벌이던 동지절 축제날이었던 것이지요. 동지를 넘어서는 시기인 만큼, 이제 다시 태양이 지배하는 시기로 넘어가는 태양숭배 축제가 있었던 자리인데, 그리스도교가 그 축제를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대치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을 기념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동서 교회의 전례력에 대해서 설명하다 보니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정확지 않은 날짜들은 합의하면 될 사안들이었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 사건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에서 실천할 것들을 행하는 데 있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신앙을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테니 말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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