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가톨릭 신자분들 중에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양립불가하다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나 봅니다. 창조론 지지자들은 도저히 인간은 유인원의 자손(진화론)일 수 없고 첫 인간 아담의 후손(창조론)이 옳다고 믿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화론이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찰스 다윈이 제시했던 ‘진화론’인 경우라면 그럴 만합니다. 그의 말이 맞는 것이라면 오늘날에는 원숭이가 보이질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진화론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 어떠한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어서 오늘 속풀이에서는 이 주제를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가톨릭 교회가 매우 고루한 입장을 가지고 다윈을 단죄하고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톨릭 교회는, 다윈이라는 과학자가 제기한 문제 앞에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비오 12세의 회칙 Humani Generis("인류의 기원-가톨릭 교리의 기초를 위협하는 잘못된 견해들에 관한 회칙", 1950)에서 교회가 이미 확인한 내용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 찰스 로버트 다윈.(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기원과 그 진화에 관한 연구와 교회'(1996)라는 담화를 통해, "저의 선임자 비오 12세는 회칙 Humani Generis에서, 몇 가지 분명한 점만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다고 이미 언명하였습니다."(사도좌 관보 42(1950), 575-576쪽 참조)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가톨릭 교회와 진화론은 서로 양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에 따르면 단순히 진화론이라하기 보다는 '진화에 관한 이론'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습니다. 다윈이 제기한 진화론이 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는 있지만, 진화라는 개념 자체가 거부될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선이나 완성을 향한 여정을 머리에 그려 본다면, 그 개념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기억하건대, 같은 수도회의 선배셨던 피에르 테야르 드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고생물학자, 철학자, 신학자) 신부님은 진화라는 개념을 신학에 도입해, 사실상 오늘날의 문화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놀라운 시각을 제공해 주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주를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 가신다는 입장을 가지고 우주가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이런 입장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진화’라는 개념 때문에 신부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교회와 불편한 관계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드샤르댕 신부님과 같이, 우주를 바라보는 새롭고 원대한 지평을 열어 주신 분들의 전망을 통해 교회는, 현대 문명과 과학을 통해 어떻게 신앙을 이해할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진리를 공고히 하는데 그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된 셈입니다.

과학적 탐구를 위해 필수적 능력인 이성은, 인간이 진리를 찾고 검증하는 데 중요한 정신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결국 이성은 진리를 찾으라고 하느님이 심어 놓은 능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사람들이 제대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맹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윈이 괘씸하다고 여기고 계셨던 분들이 있다면, 마음 누그러뜨려도 좋겠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원숭이 정도의 외모를 지니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지적능력도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상태였다고 해도 출발선상에서 얼마나 대단한 수준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함 많은 존재가 하느님의 손길에 이끌려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음을 진화이론을 통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드샤르댕 신부님의 중요 개념인 '오메가 포인트'를 빌려 말하면, 우주적 차원에서 세계는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를, 개인적인 범위에서 나는 완성된 인간인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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