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어떤 분들은 바티칸이 이탈리아 로마의 한 부분이면서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나라라고 보시는 듯합니다. 물리적 넓이로 봐도 나라가 너무 작고, 그나마 그것도 로마를 지나는 테베르 강 옆에 있어서 영락없이 로마의 한 부분으로 보일 뿐입니다. 게다가 바티칸의 대표자인 교황이 가지는 직분명 중 하나가 ‘로마의 주교’니 만큼 바티칸은 나라라기보다는 전세계 가톨릭의 총본부로 이해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티칸은 ‘바티칸 시국’(라틴어로 Status Civitatis Vaticanae)이라는 공식명칭이 있는 독립국가가 맞습니다. 담장과 성 베드로 광장의 기둥 등을 통해 로마 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 바티칸 시국의 전체 지도. 왼쪽의 녹색 지역은 정원으로서 영토의 절반이 넘는다. 오른쪽 아래 붉은 색이 성 베드로 대성전과 광장이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그레고리 펙(1916-2003) 주연의 ‘바티칸의 철십자’(원제:‘The Scarlet and the Black’, 제리 런던 감독, 1983)라는 영화를 보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과 로마 시의 경계선 위에서 독일군 장교를 약 올리는 주인공을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오 12세 교황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로마를 점령한 독일군을 따돌리면서 유대인들과 전쟁 포로들을 구출한 실제 인물(휴 오플래허티 몬시뇰)의 삶을 바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몬시뇰에게 바티칸의 경계를 벗어나면 바로 사살하겠다고 경고했고, 몬시뇰은 이를 비웃듯이 바티칸과 로마의 경계선 위에서 거닙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독일군 장교는 총을 조준하였으나 경계선을 넘어오지 않은 몬시뇰을 쏘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의 경계를 설정한 사건은 1929년에 이루어진 라테라노 조약이었습니다. 이 조약은 교황 비오 11세와 파시스트 독재자인 무솔리니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사이에 조정해야 할 사안들을 다뤘습니다. 조약 체결이 로마 시내의 라테라노 궁전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라테라노 조약이라고 합니다.

▲ 바티칸 시국의 국기.(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1870년 이탈리아에 의해 현재의 바티칸을 제외한 교황령 대부분이 장악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에 교황들은 이탈리아의 이런 무력을 부당하다고 항의하였으나 이탈리아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수습함으로써 무솔리니는 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인 국민들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비오 11세는 잠식되어 가는 교황령을 법적으로 확인하여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조약은 전문과 27개 항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바티칸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오랜 문제들에 대해 최종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이탈리아는 바티칸 시가 일정한 영토와 국민 및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로써 바티칸 교황청은 화폐와 우표를 발행하고 국민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외교사절(예를 들어 교황대사)을 파견하여 국제관계에서까지도 교황청 독자적으로 절대 독립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는 다른 종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지는 않으면서 가톨릭을 이탈리아의 국교로 인정하였으며, 43만 9893제곱미터의 이 작은 국가에 상수도 시설, 이탈리아 철도와의 연결점, 방송국 등을 설치하고, 외부와 전보, 전화, 우편시설을 연결시키는 등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 사이의 여러 가지 세부적 관계 사항들을 정하였습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교황의 존엄은 신성불가침으로 언행에 있어서의 교황에 대한 모독은 국왕에 대한 것과 같은 비중으로 이탈리아 법에 의해 처벌받으며 교회의 주요 법인 조직체는 정부의 어떤 간섭도 받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시국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교회 부동산, 즉, 라테라노 대성전과 성모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등의 주교좌 성당들과 로마 내의 다른 교회 및 건축물과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별장에 대한 교황청의 소유권을 인정하였습니다.

반면 교황청은 로마를 수도로 한 사보이 왕조의 이탈리아 왕국을 정식으로 인정하였습니다.(가톨릭 대사전 참조) 이리하여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스위스 근위병들이 군사업무를 맡고 있고, 형사사건들은 로마 경찰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작지만, 전세계 약 12억 명의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곳이며, 예술작품들이 온 나라에 그득한 곳입니다. 물리적인 크기를 가지고 바티칸이 가진 유구한 문화와 신앙의 정신을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내막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점심을 거르고서라도 시스티나 성당 앞에 줄 좀 서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것이 바티칸이 세속 권력에 맞서 어렵게 지켜낸 문화유산의 하나란 사실을 예전엔 삼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바티칸을 감상하시면서, 교회가 돈도 많았다.... 라는 해석 정도에만 머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창조성이 하느님을 닮아 있음에 경탄하시고, 결국 거기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라는 사실을 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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