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과 생태적 가치 지킬 수 있는 방법 선택한 것
이제부터 진짜 싸움 시작될 것, 시민들의 참여 절실..

지난 8월 14일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와 두물머리 농민들은 이용훈 주교(천주교 수원교구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의 중재안에 합의했다. 2009년에 시작된 기나긴 싸움이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 것이다.

호주 세레스, 영국 리턴 생태공원을 본보기로 삼아, 두물머리를 '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기로 한 이번 협의안에 따라 구체적인 추진은 천주교, 두물머리 농민, 경기도와 양평군 추천에 따라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협의는 국토부와 두물머리 농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물리적인 충돌을 피했다는 점, 국책사업과 관련해 처음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는 점 등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한강유역 1공구에 해당하는 두물머리에 자전거 도로가 들어서 4대강 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두물머리 농민과 천주교측 역시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농민들의 요구가 100%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애초 '두물머리 대안 모델' 등을 제시해 보존하려던 것은 유기농이 표방하는 '가치'였음을 상기시키며, "만족스럽지 않지만 앞으로 협의안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추구하던 바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8월 17일 912번째 미사가 어김없이 봉헌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두물머리 농민들, 이미 작년 7월부터 '두물머리 대안 모델' 제안
"국토부 거부로 행정대집행만이 남은 상황에서 '제2의 용산참사' 막아야 했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그동안 '시민참여형 두물머리 대안 모델'을 연구해 두물머리 일대를 지속 가능한 농업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시민 참여로 이뤄지는 대안 농장, 유기농 학교 등을 통해 자연과 농업을 체험하는 장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여전히 하천 농업이 지속되고, 4대강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는다는 이유로 농민들의 제안을 거부해 행정대집행의 수순만 남은 상황이었다.

팔당생명살림 유영훈 대표는 "하천 영농은 안 된다고 하는 국토부의 입장이 너무나 강경해, 결국 행정대집행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너무나 큰 고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서 그는 "모두가 제2의 용산참사와 같은 참혹한 결과를 막아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을 낼 수 밖에 없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유영훈 대표는 "지난 3년간 투쟁을 하면서 대통령의 판단이 가장 결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국토부를 비롯한 관료들의 철학과 구조의 문제였다"면서 "구조와 철학의 변화가 또 다른 투쟁의 영역이라면, 첫 번째로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향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 '생태학습장' 협의체 구성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농민들, 모든 역량 모아 '생태적 가치' 지켜낼 것
두물머리 싸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일

국토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하천 영농지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면서, 그 외 지역은 자연 녹지로 남겨두겠다는 입장이었다. 농민들의 대안은 자전거 도로마저 생태 탐방로로 만들자는 내용이었지만, 이번 합의안으로 생태학습장 조성을 통해 유기농업과 생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다.

농민들과 함께 싸움의 시작부터 줄곧 두물머리를 지키고 있는 김재욱 사무국장(수원교구 공동선실현사제연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생태학습장'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경기도, 양평군과 지난한 줄다리기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호소다.

합의안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고, 생태학습장의 역할과 모습을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생태학습장이라는 가능성을 받아 냈지만, 농민들의 얼굴은 마냥 밝지 않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것과 협의 과정에서 겪을 어려움에 대한 부담과 걱정 때문이다. 유영훈 대표는 "'생태학습장'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뤄졌고,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므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힘이 절대적이다. 끝까지 지켜봐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유영훈 대표는 "앞으로 이뤄 내야 할 일들 또한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고, 이것은 또 다른 싸움이며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지금까지 각계각층의 마음이 모여 3년을 버텨 온 만큼, 앞으로도 그 마음이 함께 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그는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서로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마지막까지 격려하고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논의에 참여한 농민 김병인 씨, 유영훈 대표, 임인환 씨(왼쪽부터). 유영훈 대표는 "우리는 농사만을 고집하는 것도, 보상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땅에 유기농을 비롯한 생명의 가치가 보존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협의체 구성 위한 논의 시작 … 구체화 될 때까지 변화 없을 것
생명평화 미사는 계속된다

두물머리 농민들과 지킴이들, 천주교측은 협의체 구성을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협의체가 꾸려지고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때까지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명평화 미사 역시 당분간 지속될 예정이다.

생태학습장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면, 두물머리를 지키는 농민들은 비닐하우스를 스스로 철거하고 인근 농토에서 다시 유기농지를 마련할 예정이다.

두물머리 농민들은 지난 시간 함께 싸웠던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앞으로 이뤄질 상황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과 공유하고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들은 "장렬히 전사할 것인가, 아름다운 패배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향후 새로운 시작을 위해 선택한 길을 제대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 두물머리를 지켰던 나무 십자가는 양평 꼰벤뚜알 수도회로 옮겨졌다가, 생태학습장이 완성되면 적당한 공간에 다시 자리잡을 계획이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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